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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폭탄' 서명…무역전쟁 선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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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에 불이 붙었다.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 중 500억 달러(약 54조 원) 규모의 수입품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의 대미 투자도 제한하는 초강경 조치를 단행하면서다. 당연히 중국의 반발이 거세다. G2 간 무역전쟁 기류에 놀란 뉴욕증시는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1300개 품목에 수퍼 301조 적용 #지식재산 침해 따른 손해배상 차원 #중국도 미 농산물에 보복관세 경고 #뉴욕 다우지수 724 포인트 급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비즈니스 리더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중국산 수입품에 500억 달러의 관세를 매기는 행정명령을 설명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비즈니스 리더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중국산 수입품에 500억 달러의 관세를 매기는 행정명령을 설명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연 5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중국의 경제침략을 표적으로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는 서명식에서 “일부에서는 대중 무역적자가 연 3750억 달러라고도 하는데, 우리는 지금 5040억 달러로 보고 있다”며 “이는 미국의 연간 총 무역적자 8000억 달러의 절반을 넘는 규모”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이를 개선해야 한다. 무역법 301조에 따른 이번 조치를 통해서 대중 무역적자를 지금의 25% 수준으로, 즉 1000억 달러로까지 줄이겠다”며 핏대를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중국 측에 대미 무역흑자를 1000억달러 줄이는 방안을 서면으로 요구했는데, 중국에 대한 미국의 무역흑자 타깃이 점점 ‘제로(0)’에 가까워지고 있다.

무역전쟁을 예고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무역전쟁을 예고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부과 수입품을 표면적으로 500억 달러 규모로 결정했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많은 600억 달러(65조원)에 달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장담했다. 이미 미 무역대표부(USTR)는 1300개에 달하는 관세 대상 품목 후보군을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USTR은 앞으로 보름 동안 의견 수렴을 거친 뒤 최종 관세 부과 품목을 결정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호혜적인 거울(reciprocal mirror)’을 원한다”며 중국이 미국산 제품에 매기는 만큼의 높은 관세를 중국산 수입품에도 부과할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미ㆍ중 무역전쟁에 대한 부담을 느낀 듯 “나는 그들을 친구로 본다. 시진핑 주석을 매우 존경한다. 중국은 북한 문제에서 우리를 돕는다”라고 치켜세웠다.

그는 이번 조치가 “많은 조치 중에서 첫 번째”라고 거듭 강조해, 앞으로 대중 무역 관련 조치가 잇따를 것을 예고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재무부에 중국의 대미 투자 제한과 관리ㆍ감독 규정 신설하도록 했다. 이미 싱가포르 기업인 브로드컴이 미국의 통신칩 기업 퀄컴을 인수하는 과정을 가록막았다. 중국 통신기업 화웨이를 의식한 선제적 조치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이 미국 기업에게 중국기업과 조인트벤처를 세우게한 뒤 핵심 기술을 중국 측 파트너에 넘길 것을 강요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NYT는 인공지능(AI)을 포함한 최첨단 분야를 지배하려는 중국의 야망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이 미국의 정보기술(IT) 기업에 투자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려는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 센양 철강도매시장의 한 직원이 제품더미 사이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중국의 과잉생산 구조가 철강 무역전쟁을 야기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EPA=연합뉴스]

중국 센양 철강도매시장의 한 직원이 제품더미 사이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중국의 과잉생산 구조가 철강 무역전쟁을 야기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EPA=연합뉴스]

중국도 당장 미국에 보복관세를 경고하고 있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많은 지역에서 주로 생산되는 미국산 대두(메주콩)와 수수, 돼지 등이 대상이다. 보복 관세를 통해 트럼프에 정치적 타격을 가하겠다는 포석이다. 연 140억 달러(약 15조 원) 규모에 이르는 미국산 대두는 3분의 1이 중국으로 수출된다.

이밖에 미국산 항공기와 항공기 부품에 대한 관세 부과도 고려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미국을 제외하면 미 국채 최대 보유국이라는 점을 활용해 미 국채 매각 확대 카드 사용을 저울질하고 있다. 중국이 시장에 미 국채를 대량으로 내던지면 국채 가격이 폭락하면서 미국의 금융 패권이 상처를 입게 된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이번 조치는 중국과 미국 기업들 모두의 강력한 반대 속에서 나온 것”이라며 “보호무역주의를 추구하기 위해 시대에 뒤떨어진 법을 남용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미ㆍ중 무역전쟁은 미국 증시의 주가와 달러화 가치는 물론 멕시코 페소, 호주 달러 등 세계 각국의 환율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월마트와 아마존 등 미국 기업들은 중국에 대한 광범위한 제재가 소비자 물가를 끌어올리고 주식시장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미소매업연합회(NRF)의 매튜 셰이 회장은 “중국이 국제 무역 질서를 지키도록 만드는 일은 중요하고 필요하다”면서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는 중국 기업 대신 미국의 서민에게 벌을 내리는 효과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글로벌 경제의 견인차인 미국과 중국의 정면충돌로 무역이 위축되면 세계 각국의 경제 성장은 주춤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최대 피해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도 전날 기자회견에서 “현재 무역 법안과 관련해 우려섞인 목소리가 올라오고 있으며, 경기 전망에 ‘뚜렷한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미ㆍ중 양국의 무역 대결엔 특별한 브레이크가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층 결집이 필요하고, 마오쩌둥(毛澤東) 이후 최대 권력을 거머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미국에 밀리는 것을 용인할 수 없는 처지다.

게다가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의 사임으로 백악관 내 자유무역 옹호 진영이 크게 위축된 점, 시진핑 주석의 '경제 책사'인 류허(劉鶴) 부총리의 지난달 워싱턴 방문이 별다른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한 점 등도 미·중 양국이 절충점을 찾을 것이란 전망을 어둡게 한다.

양국의 충돌은 북핵 문제 해결에도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핵 프로그램을 억제하기 위해 중국의 지지를 필요로 하는 시점에서 이번 관세폭탄이 중국과의 갈등을 높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날 뉴욕증시는 무역전쟁 우려에 급락했다.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724.42포인트(2.93%) 하락한 2만3957.89에 거래됐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전장보다 68.24포인트(2.52%) 내린 2643.69를 기록했고,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178.61포인트(2.43%) 낮은 7166.68로 움직였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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