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내셔널] 거중기도 없던 고려시대, 377t 거대 불상 어떻게 세웠을까

중앙일보

입력 2018.03.23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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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충남 논산시 은진면 관촉사(灌燭寺)에 있는 은진미륵(恩津彌勒)이 국보로 승격한다. 1963년 보물(제218호)로 지정된 지 55년 만이다. 문화재청은 은진미륵을 오는 4월께 국보로 정식 지정할 계획이다. 은진미륵은 국보 지정 소식에 더욱 주목받고 있다.

국보 되는 논산 관촉사 ‘은진미륵’
보물 지정 55년 만에 내달 승격 앞둬
화강암 재질 높이 18.12m 국내 최대
흙 이용 제조 비밀 법당 벽화에 묘사

지난 10일 관촉사를 찾았다. 논산 시내에서 자동차를 타고 643번 지방도를 따라 10분 정도 가니 도착했다. 관촉사란 이름은 은진미륵 이마의 백호에서 나는 빛이 밝아 송나라 지안대사가 빛을 따라 찾아와 예배하면서 지어졌다고 한다.

이날 관촉사에는 500여명이 찾았다. 주지인 혜광 스님은 “국보 지정 소식이 알려지면서 관람객이 10%이상 늘었다”며 “은진미륵을 보기 위해 찾는 관람객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관람객 권애훈(58·충남 부여군)씨는 “은진미륵은 역사적 가치로 볼 때 훨씬 더 일찍 국보가 돼야 했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석불인 충남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이 국보로 승격된다. [프리랜서 김성태]

국내 최대 석불인 충남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이 국보로 승격된다. [프리랜서 김성태]

은진미륵의 공식 이름은 석조미륵보살입상(石造彌勒菩薩立像)이다. 은진면에 있어 ‘은진미륵’으로 불린다. 화강암으로 만든 불상은 높이가 18.12m(폭 9.9m)로 국내에서 가장 크다. 은진 미륵은 몸통·팔 등 7개 돌조각으로 만들었다. 전체 무게는 부피와 재질 등을 감안해 추산하면 377t쯤 된다는 게 관촉사측의 설명이다.

미륵보살(彌勒菩薩)은 석가에 이어 미래에 출현하는 부처를 말한다. 한국에서는 미륵신앙이 현세를 구원하는 희망의 신앙으로 수용돼 유행했다.

은진미륵이 세워진 것은 1006년이다. 고려 말 승려 무외(無畏)가 쓴 ‘용화회소(龍華會)’와 조선 시대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년)’, 고려 문인 이색(李穡·1328∼1396)의 ‘목은집(牧隱集)’ 등에 기록이 나온다. 고려 광종(949∼975)의 명에 따라 승려 조각장 혜명(慧命)이 만들기 시작해 37년 만에 완성했다.

당시는 거중기 같은 장비가 없었는데 어떻게 거대한 불상을 올렸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은진미륵 바로 앞에 있는 미륵전(법당) 벽을 보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미륵전엔 은진미륵 조성 과정을 묘사한 4개의 벽화가 있다. 그림 내용은 이렇다. 혜명스님이 돌덩이를 쌓을 방법을 찾아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동자 스님들이 냇가에서 놀고 있었다. 동자스님은 돌 하나를 세워놓고 돌 위와 주변을 흙으로 덮은 뒤 다른 돌을 그 위로 끌어올리는 놀이를 했다. 혜명 스님은 이 놀이에 착안해 흙을 쌓고 불상 조각을 차례로 올리는 방식으로 은진미륵을 세웠다고 한다.

은진미륵은 불교가 귀족 중심에서 민중 신앙으로 진화한 선종불교(고려시대)의 대표 불상이다. 통일신라 시대까지 불상은 아름답고 정교하게 다듬어 만든 게 특징이었다. 이후에는 은진미륵처럼 규모가 크면서 투박한 모습을 하고 있다.

관촉사 석등(보물 제232호)도 은진미륵만큼 큰 규모를 자랑한다. 전남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다음으로 크다.

관촉사 문화관광해설사 유유철(63)씨는 “은진미륵은 한국의 불교 신앙과 조각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문화유산”이라고 말했다.

김방현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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