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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대학 길들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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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남중 기자 중앙일보
김남중 논설위원

김남중 논설위원

2012년 6월 부산의 한 사립대에 교육부 고위 관료 출신 총장이 취임했다. 취임 일성이 ‘대학 교육 혁명’이었다. 그는 교직원과의 첫 대면 자리에 일부러 지각했다. 교직원들이 기다리면서 침몰 중인 타이태닉호 영상을 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우리 대학 현실이 딱 타이태닉호 처지다. 팔짱 끼고 가만히 있으면 저렇게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혁신을 해야만 떠서 순항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취임 이듬해부터 혁신 작업이 가시화됐다. 취재차 학교를 방문했다가 그 한 대목을 지켜봤다. 총장실 옆 대형 회의실. 심사위원석에 앉은 총장과 보직교수들 앞에서 학과별 발표가 진행됐다. ‘교수학습 강화 방안’ ‘특성화 방안’ 같은 혁신 주제를 놓고 학과별 장·단기 계획을 설명하는 ‘경쟁 프레젠테이션’이었다. 발표자들은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심사 결과에 따라 학과 운영비 지원 규모가 달라지고 정원이 줄어들 판이니 그럴 만했다. 그런데 이런 ‘선택과 집중’은 데자뷔다. 바로 교육부 대학재정지원사업 방식의 축소판이다.

‘ACE+’ ‘CK’ ‘PRIME’ ‘CORE’ ‘WE-UP’. 대학재정지원사업의 목적별 종류다. 암호 같기도 한 이 용어들을 대학 사람들은 신줏단지 모시듯 입에 달고 산다. 지난 10여 년간 등록금이 동결되고 올해부터는 입학금도 없어지면서 상당수 대학이 재정 지원에 기댈 수밖에 없어서다. 사업에 응모해 심사를 거쳐 선정만 되면 3~5년간 최대 수백억원을 지원받는 식이다. 응모 시즌이 되면 대학가에서 ‘TF 집단합숙’ ‘보고서·브리핑의 귀재 모시기’ 같은 진풍경이 벌어지는 까닭이다.

문제는 돈으로 ‘대학 길들이기’를 한다는 비난이 따라다닌다는 점이다. 지원을 따내려면 정원을 감축하거나 정부 입맛에 맞춰 대학 운영을 바꿔야 해서다. 대학 자체 발전 계획과는 동떨어진 사업에도 울며 겨자 먹기로 응모하기도 한다. 지원금을 받아도 정해진 용도에만 써야 하니 경쟁력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지원이 끊기면 유야무야되기 일쑤다. 5년간 정부 돈 160억원을 받은 포스텍 엔지니어링대학원이 올해 문을 닫은 것도 그래서다.

정부가 대학 길들이기 대신 자율성 확대로 방향을 틀 모양이다. 목적이 세분화된 재정 지원을 하나로 통합하는 개선안을 그제 내놨다. 대학이 발전 계획에 맞춰 지원금을 알아서 쓰도록 하겠다는 거다. 백번 옳은 방향이다. 이제 ‘타이태닉호’ 꼴을 피하는 건 대학 손에 달렸다. 올해 대학 지원 예산이 1조5000억원이다. 피 같은 국민 세금이다.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