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이 폐쇄하려다 살린 복스홀 공장 … 그 뒤엔 노·사·정 ‘팀영국’ 있었다

중앙일보

입력 2018.03.23 01:09

업데이트 2018.03.23 07:59

지면보기

종합 04면

위기의 한국 자동차 산업 <하> 

1991년 이후 27년 만에 최강 한파가 닥친 지난 1일(현지시간) 영국 베드퍼드셔주(州) 루톤. 이곳에서 ‘동쪽에서 온 야수(beast from the east)’라는 시베리아 눈보라가 매서웠다.

노, 스스로 임금 깎고 복지 줄여
사 “닛산보다 생산성 높다” 증명
정, 장관이 GM 본사 찾아 설득

루톤엔 복스홀자동차의 본사와 생산공장이 있다. 복스홀은 한국GM과 닮은꼴이다. 오는 5월 군산 공장이 문을 닫는 것처럼 GM은 한때 복스홀 영국 공장의 폐쇄를 결정했었다.

한국GM처럼 복스홀자동차도 1925년부터 100년 가까이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손자 기업이었다. GM의 유럽 자회사 오펠 산하에서 2개 완성차 공장(루톤·엘스미어포트)을 보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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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은 BMW·메르세데스-벤츠·아우디 등 독일차에 밀려 유럽 실적이 좋지 않았다. 99년 이후 매년 적자였다. 2012년 GM은 독일 보훔 공장과 함께 복스홀자동차 공장 폐쇄를 공식 발표했다. 영국공장에서 생산하던 오펠의 왜건형 차량 아스트라를 폴란드 공장에서 생산하기로 했다.

공장 폐쇄를 천명했지만 복스홀 노사와 영국 정부는 포기하지 않았다.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일단 사측은 모기업(오펠)과 별개로 복스홀 생산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본사에 강조했다. 실제로 당시 복스홀자동차의 근로자 1인당 매출액(23억7900만원·2013년 기준)은 같은 내수 시장에서 경쟁하는 재규어랜드로버(11억6200만원)·닛산(11억9500만원)보다 배나 높았다.

노동조합도 한뜻이었다. 해고를 막으려고 기득권을 내려놨다. 임직원 94%가 자발적으로 임금을 삭감하고 복리후생을 축소하는 내용을 담은 임금단체협상에 동의했다.

영국 정부도 나섰다. 국제무역부를 중심으로 로비를 시작했다. 관련 부처 장관은 직접 미국 디트로이트 GM 본사를 찾았다. 영국 정부가 가진 모든 데이터를 활용해 영국 공장이 경쟁국보다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높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결국 GM은 영국 공장 폐쇄 결정을 철회했고, 영국은 2400개의 일자리를 지켰다(2012년·직접고용 기준).

이언 헨리 오토어낼러시스 대표는 “팀영국(Team UK)이 한마음으로 공장을 살려냈다”며 “개인적으로 영국 정부 팬은 아니지만 당시 발 벗고 GM을 설득했던 영국 정부는 높게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반전이 가능했던 건 근본적으로 복스홀자동차의 생산성이 다른 GM 유럽 공장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또 영국은 노사정이 1인 3각처럼 움직였다.

이는 노사정이 여전히 반목하는 한국GM에 많은 점을 시사한다. 한국GM 노사협상은 지지부진하고, 한국 정부는 GM과 재무실사에 합의한 이후 실제 착수까지 19일을 허비했다.

지난해 GM은 유럽 사업을 22억 유로(약 2조9000억원)에 프랑스 PSA그룹에 매각했다. PSA그룹은 푸조·시트로앵 브랜드로 유명한 자동차 기업이다. 주인은 바뀌어도 복스홀자동차 영국 공장은 여전히 돌아간다.

복스홀자동차에서 만난 한 디렉터는 “모기업이 바뀌었지만 복스홀은 여전히 영국인들이 영국에서 생산한 부품을 조립하는,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브랜드”라고 자부했다.

루톤(영국)=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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