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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의 ‘조삼모삼’ … 금융시장 쇼크는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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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21일(현지시간)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결정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21일(현지시간)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결정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한국과 미국의 금리 역전은 가뒀던 수문이 열리는 것과 같다. 국내에 유입된 외국인 투자자금이 높은 금리를 찾아 떠나는 속도를 가속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미 금리 역전에도 차분한 시장 #Fed 기준금리 1.50~1.75%로 올려 #올해 인상 횟수는 세 차례로 유지 #내년 2 → 3회로 늘려 절묘한 절충 #코스피 11포인트 상승 ‘안도 랠리’ #원화 가치·국고채 금리 소폭 하락

한국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한 외국인은 높은 미국 금리를 노리고 국내 시장에서 돈을 뺀다. 이럴 경우 국내 주가는 떨어지고, 채권값도 하락한다(금리 상승).

통화 가치에도 영향을 준다. 원화를 팔고 달러를 들고 나가는 수요가 늘면서 원화 가치가 떨어진다. 교과서 속 경제 이론에 따르면 그렇다.

한국과 미국의 정책금리가 뒤집힌 22일 시장은 다르게 움직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21일(현지시간) 연방기금 금리를 0.25%포인트 올려 연 1.50~1.75%로 조정했다. 한국의 기준금리는 연 1.5%다. 10년7개월 만에 정책금리가 역전됐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11.05포인트(0.44%) 오른 2496.02에 거래를 마쳤다. 국고채 3년물은 전날보다 0.035%포인트 하락(가격 상승)한 2.256%에 장을 마감했다. 원화 가치는 전날보다 0.4원 내린 1072.70원을 기록하며 그나마 약세로 돌아섰지만 장 초반에는 강세 행진을 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른바 ‘안도 랠리’다. 우려했던 ‘금리 역전 쇼크’는 없었다. 시장의 반응이 차분했던 건 전날 데뷔전을 치른 제롬 파월 Fed 의장이 연착륙에 성공한 덕이다.

금융시장은 미국 기준금리 인상을 당연시했다. 촉각을 곤두세운 건 향후 금리 인상의 속도와 폭이었다. 파월은 절충안을 내놨다. 올해 금리 인상 전망을 종전대로 3회로 유지하되 내년 인상 전망을 기존 2회에서 3회로 높여 잡았다.

점진적인 통화 정책을 유지하면서도 금리 인상의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신호를 시장에 줬다. 이승훈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Fed가 올해 금리 인상 전망을 기존의 세 번으로 유지하면서 ‘안도감 장세’가 펼쳐졌다”고 말했다.

금융시장이 이론과 달리 움직이는 데는 미국과 각국 중앙은행의 ‘비동조화’ 양상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동안은 Fed의 금리 정책에 각국 중앙은행이 발맞춰 움직였지만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블룸버그는 “한국과 일본 등 주요 아시아 국가는 물가가 가라앉은 데다 외환보유액을 충분히 확보해 이들 국가 중앙은행이 Fed의 금리 인상을 따라갈 필요성이 줄었다”고 전했다.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이 튼튼해진 것도 ‘금리 역전 쇼크’가 없었던 이유로 꼽힌다.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한국은 경상수지 흑자국인 데다 기업 이익 전망치 등을 감안하면 세계 경제가 회복되는 국면에서 투자 매력이 높아 외국인 투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경제 이론과 동떨어져 움직이는 것은 시장만이 아니다. 경제학 전공자가 아닌 첫 Fed 의장인 파월도 이론에 얽매이지 않는 행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블룸버그는 “파월 의장이 특정 이론이나 모델보다 실물경제지표를 근거로 통화 정책을 운용할 방침임을 시사했다”고 보도했다.

파월은 21일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인플레이션이 가속화하는 시점에 있다는 지표는 의미가 없다. 임금과 물가의 적당한 상승을 봐 왔는데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화 정책의 중요한 이론으로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의 반비례 관계를 나타내는 ‘필립스 곡선’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의 실업률은 4.1%로 최근 17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Fed는 실업률이 올해 3.8%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물가는 여전히 목표치(2.0%)에 못 미치고 있다.

파월이 필립스 곡선에 얽매이지 않으면 좀 더 자유롭게 금리 인상 정책을 펼칠 수 있다. 김동원 SK증권 연구원은 “금리 인상 전망치를 보여 주는 점도표가 지난해 12월보다 올라간 만큼 경기상황이 개선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긴장감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미국의 CNBC 등은 “Fed가 이번 결정을 통해 비둘기(통화 완화 중시)인지 매(통화 긴축 중시)인지 분명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 시장 참여자는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됐다”고 전했다.

하현옥·조현숙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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