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세계 최경량차 맥라렌 '세나'…연구소는 英정부가 지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위기의 한국 자동차 산업 <상> 

맥라렌은 영국 정부가 추진하는 13개의 정부 연구개발(R&D) 프로젝트에 참여해 세계 최고 수준의 탄소섬유 복합체 제조·가공 기술을 확보했다. 사진은 영국 서리주 맥라렌기술센터. [사진 맥라렌]

맥라렌은 영국 정부가 추진하는 13개의 정부 연구개발(R&D) 프로젝트에 참여해 세계 최고 수준의 탄소섬유 복합체 제조·가공 기술을 확보했다. 사진은 영국 서리주 맥라렌기술센터. [사진 맥라렌]

‘자동차 섀시 75㎏, 시트 완제품 4㎏, 휠 1㎏ 미만.’

미래차로 ‘판 바꾼’ 비결 #핵심기술은 자국 땅에서 직접 키워 #“한국 부품기업, 영국 오면 기술 준다” #지원금 줄 때도 기업 국적 안 따져 #22년간 국내 공장 못지은 한국과 대비

영국의 고성능 자동차 제조사 맥라렌이 지난 6일 출시한 2019년형 스포츠카 ‘세나’의 주요 부품 무게다. 자동차 무게는 1198㎏으로 제네시스 G80 스포츠 무게(2090㎏)의 절반 정도다.

맥라렌이 세계 최고의 경량화 기술을 확보한 건 영국 자동차산업 시스템 덕분이다. 영국 정부는 차량용 복합소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국책연구소만 3개를 운영한다. 맥라렌이 탄소섬유 섀시를 제조하겠다고 나서자 아예 정부가 5000만 파운드(750억원)를 투입해 복합소재기술센터를 별도로 설립했다.

댄 윌리엄스

댄 윌리엄스

관련기사

댄 윌리엄스 맥라렌 공학디자인부문 수석디렉터는 “맥라렌은 13개의 정부 연구개발(R&D) 프로젝트에 참여해 세계 최고 수준의 탄소섬유 복합체 제조·가공 기술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영국 자동차산업에서 한국이 배울 점은 ‘시스템’이다. 지난 10여 년간 영국은 자동차 기술을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체계를 완성했다. 우선 2009년 정부 차원에서 민관 합동 자동차위원회와 저탄소자동차청을 세웠다. 이들은 미래형 차량의 공통점으로 ‘탄소 배출량 저감’을 꼽았다. 따라서 이들의 목표도 이동수단의 배출량 저감 기술 확보였다.

10년 동안 핵심기술 발굴→기술육성→자금지원→기술상업화의 체계를 갖췄다. 1단계인 차세대 동력전달장치 개발에 필요한 핵심기술은 고급기술추진센터(APC)가 선정한다. APC는 지금까지 전기동력장치·에너지저장장치(ESS)·경량화 등을 핵심기술로 선정했다.

맥라렌 세나

맥라렌 세나

핵심기술은 영국 땅에서 정부가 직접 키운다. 10개의 고부가가치 제조업 연구센터를 세웠다. 예컨대 전기차 배터리 기술은 영국 워릭 소재 워릭제조그룹이, 금속성형 기술은 스코틀랜드 스트래스클라이드 소재 선진성형연구센터가 맡는 식이다.

자금도 지원한다. 민간 기업 기술을 키우기 위해서다. ▶저탄소·경량화 기술은 고급기술추진센터에서 ▶자율주행 기술은 자율주행·커넥티드카센터에서 ▶차량용 소재 기술은 이노베이트UK에서 자금을 댄다. 별도로 해외 투자를 유치하는 업무는 영국 국제무역부 산하 자동차투자청(AIO)이 담당한다.

보조금 지원 대상을 결정할 때 자본의 국적을 따지지 않는다. 차세대 차량용 핵심기술이라는 점을 증명하고 영국 내 중소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한다고 약속하면 외국 기업에도 R&D 예산의 절반을 준다.

이언 포브스

이언 포브스

영국 정부는 한국 부품 기업에 ‘영국에 공장을 세우면 기술을 준다’고 홍보한다. 이언 포브스 영국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 자율주행·커넥티드카센터 국장은 “영국 정부가 민간 기업과 함께 선정한 ‘밀착 기술(sticky technology)’ 개발 기업이 자금 지원 우선순위”라고 설명했다.

기술상업화는 이노베이트UK 담당이다. 이노베이트UK는 대부분 민간 기업 출신으로 꾸린 정부 기관이다. 이 밖에 연구소 시설·장비가 부족하면 정부 차원에서 건물을 빌려준다. 정부가 넌이턴·밀브룩에서 대규모 테크놀로지파크를 운영한다. 특정 기술이 필요할 때 대학·연구소를 소개하는 것도 정부 역할이다. 실제로 맥라렌은 이 제도를 활용해 영국 케임브리지대·셰필드대학과 섀시·부품을 공동 개발했다.

맥라렌기술센터 내부 자동차 생산 라인. 조립공장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깨끗하다. [사진 맥라렌]

맥라렌기술센터 내부 자동차 생산 라인. 조립공장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깨끗하다. [사진 맥라렌]

체계적인 자동차산업 지원 시스템은 산업 체질을 바꾸고 있다. 민간 기업이 지갑을 열고 있다. 영국 제조기업 중 최대 R&D 투자사(재규어랜드로버·35억 파운드·5조2000억원)를 제외하고도 포드·닛산 등 16개 영국 소재 자동차 제조사·부품사가 2016년 영국에서 지출한 R&D 투자비는 27억 파운드(4조1000억원)에 달한다. 1996년(현대차 아산공장) 이후 자동차 제조 공장이 세워진 적이 없는 한국과 대조적이다.

한국에서 자동차산업은 ‘혁신’과 거리가 있다. 현대차가 국내 혁신 벤처를 인수한 사례는 드물다. 반면 영국에선 자동차 분야 혁신기업이 종종 튀어나온다. 임페리얼칼리지런던 교통환경분석연구실의 연구 아이디어가 창업으로 이어진 이멘스 시뮬레이션이 대표적 사례다.

로빈 노스

로빈 노스

이멘스 시뮬레이션의 로빈 노스 최고경영자(CEO)는 “정부의 법적·행정적 지원 덕분에 창업 7주 만에 이멘스는 영국도로공사가 발주한 37만6000파운드(5억6000만원) 규모의 계약을 따낼 수 있었다”며 “덕분에 창업 초기 안착했다”고 설명했다.

로버트 고울드

로버트 고울드

한국의 자동차산업이 ‘사양산업화’로 추락할 때 영국 정부는 신기술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로버트 고울드 영국 교통부 저탄소자동차청 프로그램오피스 국장은 “재규어 최초의 고성능 전기차 I페이스도 개발 초기 이노베이션UK와 고급기술추진센터 자금이 투입됐다”고 말했다.

오킹·런던·밀턴킨스(영국)=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