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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정부 스스로 만든 ‘헤테로토피아 강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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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함인선 건축가·한양대 건축학부 특임교수

함인선 건축가·한양대 건축학부 특임교수

‘10만 청약설’. 불길한 예언이 현실화될 조짐이 보인다. 이른바 ‘로또 아파트’라는 서울 강남 개포 주공 8단지 재건축 얘기다. 특별공급분 중 97%가 바로 소진됐다. 분양가가 10억원이 넘는데도 시세차익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이 광풍의 원인은 하나다. 강남이 희소하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채굴이 어려워 희소하고, 강남은 대체재가 없기에 희소하다. 분당·여의도의 도시 인프라가 강남 못지않지만 강남의 희소함은 다른 데서 온다. 지난 정부에서는 장관 17명 중 11명이, 이번 정부는 1급 이상 655명 중 275명이 강남에 집을 갖고 있다. 이런 것이 희소성의 원천이다.

로또 아파트 된 강남 재건축 #압구정·대치동은 정부 작품 #희소성은 사회관계가 결정 #더 많은 강남 만드는 게 해법

정부는 대출 규제 강화, 재건축부담금 부과, 안전진단 기준 강화 등으로 강남을 옥죄고 있다. 그러나 강남의 희소가치를 높일 따름이다. 실제로 강남에서는 규제가 없는 1대1 재건축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원액에 물 타지 않고 ‘우리들만의 리그’로 가면 오히려 좋다는 것이다. 정부는 강남 집값이 부동산정책의 방아쇠라 여기는 듯하다. 심리적으로만 보면 맞다. 그러나 당위론은 항상 현실과 미끄러진다.

‘1마일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미국 뉴욕 맨해튼을 멀리서 보면 낙타 등처럼 생겼다. 월스트리트가 있는 다운타운과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이 위치한 미드타운이 볼록한 것은 두 곳에만 고층이 밀집됐기 때문이다. 즉 용적률이 높다는 뜻이고, 땅값이 비싸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곳 반경이 여지없이 1마일이다. ‘이 리그’에 끼이기 위해서는 도보 30분 거리 내에 오피스를 가져야 하므로 이 수요는 수직개발로 이어진다. 홍콩·런던·도쿄도 마찬가지로 1마일 반경에서만 높다. 이처럼 희소성은 물리적 조건보다는 사회적 관계에 의해 만들어진다.

함인선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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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가 암반인 맨해튼의 대부분 아파트는 주차장이 없다. 갑부라도 택시 애용자여야 하는 이유다. 볕 안 드는 침실 한두 개 아파트가 수십억원이다. 그럼에도 뉴요커들은 맨해튼을 소망한다. 걸으면서 ‘도시의 마법’을 누리고자 함이다. 뉴욕을 비롯한 현대의 메트로폴리스는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가 말한 대로 ‘헤테로토피아(hétérotopie)’적 장소다. 헤테로토피아는 실제 공간이 있다는 점에서 유토피아와 다르다. 어둡지만은 않다는 면에서 디스토피아와도 다르다. 헤테로토피아에는 일상과 비일상, 익숙함과 낯섦, 현실과 상상이 혼재되고 병치돼 있다. 말하자면 ‘모순된 도시’다. 이 모순적 경향이 이 시대의 ‘도시성(性)’이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나누는 선악의 이분법으로 재단되지 않는 현상이다. ‘강남 추구’는 강남이 가장 먼저 이 길에 들어섰고, 소비자들이 이를 알아챈 결과일 뿐이다.

강남은 오이디푸스 꼴이다. 강남은 1960년대 급격한 서울 인구 유입의 결과다. 초기에는 공무원을 강제로 이주시켰고, 공공기관에 토지를 강매했다. 한강변 아파트는 준설한 강 모래로 지었고,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저명·고위 인사에게 반값으로 분양했다. 강북 명문 학교도 모두 강남으로 내려보냈으니, 8학군도 이때 탄생한 것이다. 가난하되 배운 이들이 모인 곳이 학원가 대치동이다. 요컨대 강남의 생부(生父)는 국가다.

투기 대상이 된 아파트 또한 국가의 작품이다. 공공 인프라부터 마련하고 지은 선진국의 연도(沿道)형 아파트와 달리 한국의 단지(團地)형 아파트는 도로·녹지·주차장·놀이터 등을 내부에 가진다. 공공(정부)이 지불할 비용이 민간 분양가에 부당하게 포함돼 있었지만 70년대 중산층들은 더 나은 주거환경을 위해 기꺼이 감당했다. 1인당 300달러의 국민소득이 이제 100배가 됐으니 강남 같은 도시환경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지금 와서 강남을 구박할 일이 아니라 그동안 비용도 아꼈으면서 왜 ‘강남’이 하나뿐인지 설명해야 한다.

아파트 평균수명은 영국 140년, 미국 103년인데 우리는 고작 22.6년이다. 콘크리트 수명이 100년이니 이 짧은 생애는 부동산 가치로만 설명된다. 자기 아파트가 무너질 지경이라는데 ‘경축! 구조진단 통과’라는 플래카드가 걸리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구조체의 수명 같은 민간 영역의 판단에 다른 나라는 개입하지 않는다. 또 도시공간의 불평등 발전과 도시민들의 지대 추구는 우리만의 일도, 이 시대만의 모순도 아니다. 만사에 개입하던 개발시대의 업보에서 벗어나 이제 어른이 된 사회에 맡겨야 한다. 간섭할수록 국가의 편애가 여전한 것으로 보이게 된다. 강남 문제는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더 많은 ‘강남’을 만드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 강남의 유전자(DNA)인 고위 공직자들부터 강남을 떠나시라.

함인선 건축가·한양대 건축학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