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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청에 ‘족갑ㆍ최루탄’이 쏟아진 사연

중앙일보

입력

‘족갑, 최루탄….’
20~30년 전 강력부 검사들이 쓰던 도구들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에서 한꺼번에 발견됐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 이사 중 발견 # 발에 채우는 수갑, 진압용 최루탄 발견 # ‘범죄와의 전쟁’ 때 위상 느끼게 해 # 검찰개혁안 등 강력부 검사들 술렁 # “강력부 검사들 업무 재평가 해야”

대검 관계자는 “서울중앙지검 강력부가 지난달 별관으로 이사하는 과정에서 이런 물품들이 나왔다”며 “먼지가 쌓여있던 캐비닛, 보관창고 같은 데서 쏟아져 검찰 직원들도 놀랐다”고 전했다.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연합뉴스]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연합뉴스]

족갑은 발목에 채우는 수갑을 말한다. 과거 조직폭력배를 소탕할 때 강력부 검사들이 주로 썼다. 발버둥을 치는 조폭ㆍ마약사범을 제압하기 위한 조치였다.
최루탄(휴대용)은 왜 나왔을까. 조폭들이 단체로 덤빌 때 진압용으로 썼다고 한다. 이런 ‘조폭 제압 도구’들은 2000년을 전후해 인권 문제 등 여러 이유로 일선에서 사라졌다. 현직 검사 중에선 이 같은 수사 도구를 사용해 본 이가 없다고 한다. 그만큼 오래된 ‘유물’이라는 것.

이것들은 한편으로는 강력부의 역사를 말해주기도 한다. 이야기는 1980~1990년대 ‘범죄와의 전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87년 대통령 선거를 전후해 조직 폭력배들은 지역적 범위를 넘어 전국적 연합체를 결성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소위 전국구급 건달이 대거 탄생했다.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이 호남 출신 주먹계 거물 박종석(일명 번개) 등과 함께 조직한 신우회가 대표적이다. 익산 출신 건달 김항락이 군산 출신 건달 형감(일명 형철우), 부산 영도파 두목 천달남 등과 연대해 만든 일송회도 있다. 전북 조직폭력배의 대부 이승완이 주축이 된 호국청년연합회, 부산 칠성파 두목 이강환이 주축이 된 화랑신우회 등도 이 시기에 결성됐다.

1990년 강력부 검사들이 등장하는 영화 '범죄와의 전쟁' [중앙포토]

1990년 강력부 검사들이 등장하는 영화 '범죄와의 전쟁' [중앙포토]

그러자 대검은 당시 횡행하던 인신매매사범, 마약사범 등과 함께 조직폭력사범을 국민생활침해사범으로 규정, 이에 대처한다는 명목으로 임시수사체제를 구축했다. 하지만 한계를 느끼고 1990년 5월 서울 등 전국 주요 6대 도시의 지방검찰청에 강력부를 신설해 조직폭력을 전담 수사하도록 했다.
마침 정부에서도 조직폭력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1990년 10월 노태우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노태우 정권 중반기 민주화 요구가 심해지자 민심을 돌리기 위한 고육책이란 해석도 나왔다. 어쨌거나 ‘범죄와의 전쟁’이 ‘강력부 검사 전성시대’를 불러온 것만은 사실이었다.

90년 초대 서울지검(현재의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장에 심재륜 부장검사가 임명됐다. 당시 강력부 검사들이 실탄이 장전된 권총을 차고 조폭 두목을 직접 잡으러 다녔던 일화는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다. 이어 서영제ㆍ김홍일ㆍ박영수 등 당대 최고 실력자들이 강력부장으로 오면서 강력부 검사는 검찰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조직폭력배 소탕과 슬롯머신 사건 해결 등을 통해 한국판 ‘마니 폴리테(이탈리아 부정부패 척결 작업)’로까지 불렸을 정도로 이름을 날렸다. ‘공공의 적2’ 강철중, ‘범죄와의 전쟁’ 조범석 등 실제 강력부 검사들을 모델로 한 영화까지 나와, 인기를 끌었다.

폭력조직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씨 [연합뉴스]

폭력조직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씨 [연합뉴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현직 ‘강력통’ 검사들은 최근 술자리에서 두 가지 이야기를 화제에 올린다.
첫 번째는 강력부 이사다. 올해 초 서울중앙지검에 부서가 늘면서 기존에 있던 부서 중 한 개를 별관으로 이동시켰는데 강력부가 대상이 됐다. 한 전직 강력부 검사는 “강력부가 구속수사할 일도 많고, 이동하기 적당한 규모여서 옮기게 됐다고 들었다”며 “특수부, 공안부 다 서울중앙지검에 있는데 강력부만 콕 찍어 뒷편 별관으로 가라고 한 것 같아 내가 다 서운했다”고 말했다.

다른 하나는 최근 대검이 내놓은 검찰개혁 중 강력부 개편 방안이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지난주 국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조폭ㆍ마약범죄에 대한 직접 수사 기능을 법무부 산하 마약청 등 미 DEA(마약단속국)와 같은 별도의 수사기관으로 이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강력부가 이사를 가는 정도가 아니라, 검찰 조직에서 아예 떠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공공의 적2’ 강철중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김희준 전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장은 “선후배 강력부 검사들의 고생 덕분에 조폭과 마약범죄 등은 거의 청정국에 가깝게 됐다“며 “묵묵히 일만 하는 후배 강력부 검사들에 대해 재평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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