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집사] #3. 밥 주고 약 주고 맘 주고…캣맘이 길냥이를 사랑하는 방법

중앙일보

입력 2018.03.20 07:54

업데이트 2018.03.20 11:16

사랑을 하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나무를 신경쓰기 시작하면서 다른 길냥이들도 눈에 들어왔다. 다 똑같은 고양이인 줄 알았는데 제각각 특징이 있었다. 초딩들에게 ‘할머니’라고 불리는 털을 산발한 녀석, 나무가 가끔 쫓아다니는 덩치 큰 하얀 녀석, 턱시도를 입은 것처럼 몸통이 새까만 녀석 등등….
그리고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에 의문이 생겼다. 그 많은 고양이들이 제 때 먹고, 자고, 쌀 수 있도록 돕는 우렁각시 같은 손길에 대해서다. 이 원목 급식소는 뭐지? 누가 직접 만든 건가? 이 사료들은 다 어디서 오는 거지? 지자체에서 지원을 해주나? 설마 캣맘들이 사비를 들여 챙기는 건가?
설마가 맞았다. 길냥이의 중성화수술(TNR) 비용을 지원하는 지자체도 먹이까지 책임지진 않는다. 사료 업체나 동물보호단체에서 길냥이용 사료를 기부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지속적이진 않다. 길냥이의 매일매일은 캣맘에게 달려있었다. 캣맘의 따뜻한 마음과, 부지런함과, 경제력에 말이다.

(3) 캣맘의 세계

나무를 챙기며 만난 캣맘 중 여전히 소통을 하고 지내는 분이 있다. 편의상 ‘나무맘1’이라 칭하겠다(실제로 폰에 그렇게 저장을 했었다). 그는 ‘냥알못(고양이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인 나에게 멘토와도 같은 존재였다. 나무가 남자아이이고, 대략 6~7개월 정도 됐을 거라는 것도 나무맘1님을 통해 들었다. 사람을 이토록 잘 따르는 건, 아주 어릴 때 누군가 ‘냥줍(길냥이를 데려다 키움)’했다가 다시 버렸기 때문인 것 같다는 추측도 그에게 들은 것이다.
캣맘 경력 10년의 나무맘1님은 당시 나무를 포함해 4마리 이상의 길냥이를 돌보고 있다고 했다. 사료값을 다 어떻게 충당하느냐고 묻자 놀라운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 애들한테는 최고급 사료를 먹이는데…. 길냥이들한테는 그렇게 못하고 있죠.” 맙소사. 집에서도 4마리를 키우고 있단다.

캣맘은 길냥이가 집사를 만나기 전까지, 혹은 길에서 수명이 다 할 때까지 아주 많은 것들을 챙겨준다. 생명을 향한 애정뿐 아니라 끈기와 희생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무는 나무맘1님을 너무 좋아해서, 아마 내가 데려오지 않았다면 영영 나무의 첫번째가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실 지금도 먹을 것에 밀리는 것 같지만…)

캣맘은 길냥이가 집사를 만나기 전까지, 혹은 길에서 수명이 다 할 때까지 아주 많은 것들을 챙겨준다. 생명을 향한 애정뿐 아니라 끈기와 희생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무는 나무맘1님을 너무 좋아해서, 아마 내가 데려오지 않았다면 영영 나무의 첫번째가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실 지금도 먹을 것에 밀리는 것 같지만…)

캣맘은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고 표현한 이유는 캣맘이 어느 선까지 봉사해야 한다는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나무맘1님이 하는 일들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범위가 넓었다.
공원 냥이들이 애용하는 원목 급식소도 그가 가져다 놓은 것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반려동물 가구회사 이벤트에 응모해 받아냈다고 했다(캣타워 살 때 너무 비싸서 포기한 브랜드인데, 나무 이 녀석은 스트리트 시절 이미 이 브랜드의 가구를 써봤던 것이다!). 사료는 늘 바닥이 보이지 않게 채우고, 정기적으로 만나는 녀석들에겐 가끔 간식(참치캔)도 준다. 겨울철엔 뜨거운 물을 매일 가져다 주지만 이내 얼어버린단다. 아픈 아이에겐 약도 먹인다. ‘할머니’가 꼬질꼬질하게 다니는 이유는 구내염이 있어 그루밍(고양이가 혀로 털을 빗어 청결을 유지하는 행동)을 못하기 때문이라며 항생제 등을 챙겨줬다.
길냥이들을 골칫거리로 보는 사람들은 캣맘이 고양이를 배불리 먹여 번식을 돕는다고 오해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정반대다. 캣맘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가 TNR이다. ‘포획(Trap)-중성화(Neuter)-방생(Return)’을 뜻한다. 적당한 시기에 TNR을 진행해야 길냥이 개체수 폭증을 막을 수 있다. 발정기에 요란한 울음소리로 주민들의 미움을 사는 일도 줄어든다.

캣맘이 이토록 최선을 다해도 길냥이의 수명은 평균 3~5년이다. 건강한 집냥이는 대개 10년 넘게 산다. 모든 길냥이가 밖에서 자유롭게 지내며 그 어떤 위협도 받지 않고 제 수명대로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특히 추운 날씨는 길냥이들의 생존을 치명적으로 위협한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느날 급식소 앞에서 만난 나무맘1님이 물었다. “수진씨가 나무를 데려가 줄 수 없어요?” 심장이 철렁했다. 베테랑 캣맘이 보기에 나무는 길냥이로 살아남기 어렵다는 건가! 좋은 사람 나쁜 사람 가리지 않고 살갑게 굴다가 해코지를 당할까봐? 아니면 친구가 없어서 겨울철 따뜻한 은신처를 발견했다는 소식을 혼자만 모를까봐?
안 그래도 나무는 얼마전 다른 캣맘 누나가 선물해준 집(에어캡을 둘둘 말아 보온력을 높인 박스)을 다른 길냥이에게 홀랑 빼앗긴 참이었다. 누굴 닮아 그리 겁이 많은지, 다른 고양이의 흔적이 남겨진 집에 다시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거절했다. 당시 나는 7평 남짓한 작은 원룸에 살고 있었다. 그 작은 방에 나무를 가둘 수는 없었다. 아니 그보다, 나는 웬만해선 죽지 않는다던 선인장을 말려 죽인 전과가 있었다. 분명 시키는 대로 물을 줬는데 왜지? 아무튼 나는 생명을 거두어 키운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나무를 아주 많이 사랑했기 때문에, 함부로 결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녀석은 꼭 누군가 데려가야 할 것 같은데….”
“그러게요….”
이후로도 나무맘1님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나무의 가족이 되어줄 사람을 찾았다. 결국 그게 내가 될 줄, 그때는 정말 몰랐다. 나무야. 넌 알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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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캣셔너리 -고양이 용어 사전-
TNR Trap(포획)-Neuter(중성화)-Return(방생)의 약자. 길고양이가 중성화 수술을 받도록 하는 단계를 말한다. TNR을 거친 고양이는 그 증표로 한쪽 귀를 자른다. 지자체나 한국고양이보호협회 등을 통하면 캣맘의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다.

냥줍 고양이를 줍다. 길고양이를 입양해 키우는 것을 말한다.

그루밍 Grooming. 고양이가 혀로 털을 빗거나 이빨로 발톱을 다듬는 등 몸의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행동을 총칭한다. 끔찍하게 싫어하는 목욕을 최대한 가끔 하기 위한 생존전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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