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철의 셀럽앤카]③“벤츠서 돌면”車주인 알고보니 송창식

중앙일보

입력 2018.03.20 05:55

업데이트 2018.03.20 17:40

[강병철의 셀럽앤카]③이정표 된 벤츠…모델 송창식 ‘왜불러’

가수 송창식. 그가 한국의 첫 벤츠 광고 모델인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중앙포토]

가수 송창식. 그가 한국의 첫 벤츠 광고 모델인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중앙포토]

 1980년대 후반 한적한 농촌 마을이던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의 천진암 천주교 성지 인근. 어느 때부턴가 당시 표현으로 외제차(수입차)로 불리던 차량 한대가 다니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일부 지역에선 국산차보다 더 많이 볼 수 있는 외제차지만 당시 농촌에선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외지 사람이 지리를 물어볼 때마다 “저기 외제차 보이시죠. 거기서 오른쪽으로 돌면 천진암 성지로 갈 수 있어요”라고 답하곤 했다.
 퇴촌면에서 이정표 역할을 하던 차량은 바로 독일의 명차 메르세데스-벤츠. 그런데 이 차량의 주인은 의외의 인물이다. 그룹 ‘트윈폴리오’ 출신으로 ‘왜불러’ ‘피리 부는 사나이’‘가나다라’와 같은 불후의 명곡을 부른 가요계의 살아 있는 전설 송창식(71)이다.

한성자동차가 1987년 메르세데스-벤츠 560SEL을 판매하며 국내에서 수입차 개방 시대를 열었다. [사진 한성자동차]

한성자동차가 1987년 메르세데스-벤츠 560SEL을 판매하며 국내에서 수입차 개방 시대를 열었다. [사진 한성자동차]

 송창식의 벤츠가 다시 화제가 된 것은 2010년 ‘세시봉(C‘est Si Bon)’이 관심을 모으면서다. 세시봉은 한국 음악계에 포크 돌풍을 일으켰던 조영남·윤형주·김세환·이장희 등이 활동한 음악감상실의 이름이다. 과거 젊음의 거리로 불리던 서울 무교동에서 핫플레이스 중 핫플레이스였다. 그곳에서 ‘타고난 음악 천재’ 송창식과 ‘마성의 미성’ 윤형주가 만나 ‘트윈폴리오’를 결성한다. 조영남과 김세환도 따로 솔로로 데뷔한다. 네 명은 2009년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과거의 향수를 불러왔고, 2010년 TV 예능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에 출연해 ‘세시봉’ 열풍을 일으키게 된다.
 조영남은 당시 방송에서 “‘가나다라’로 히트를 친 가수가 한글 노래를 부르는 모습과 달리 독일차 벤츠를 타고 다닌다. 구르마를 끌고 다니는 게 더 어울릴 것”이라며 송창식을 놀려 댔다. 송창식은 “20년 탄 차인데 문이 떨어질 지경으로 주행거리만 40만㎞에 이른다”고 답했다. 윤형주도 “(송창식 차의) 보닛을 열었는데 모두 국산 제품이 들어가 있더다”라고 덧붙였다.

송창식의 벤츠가 다시 화제를 모은 것은 '세시봉' 친구들이 2010년 TV에 출연하면서다. [중앙포토]

송창식의 벤츠가 다시 화제를 모은 것은 '세시봉' 친구들이 2010년 TV에 출연하면서다. [중앙포토]

 보다 놀라운 것은 송창식이 한국의 첫 벤츠 광고 모델이란 점이다. 1985년 말레이시아 화교 자본이 설립한 한성자동차는 1987년 수입차 개방 시대를 맞아 공식 판매 딜러를 맡았다. 그해 벤츠 열 대를 들여와 판매하면서 수입차 시대를 열었다. (2003년 한국법인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가 설립되기 전까지  한성자동차는 한국에서 수입과 판매 법인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
 송창식이 바로 광고 모델을 맡은 것은 아니다. 외제차 광고를 규제하는 구체적 조항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당시 수입차 업계는 보이지 않는 장벽 못지 않게, 외제차에 대한 국민감정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송창식이 광고에 나타난 것은 개방된 지 5년이 지난 1992년이다.

1992년 송창식의 지면 광고를 시작으로 수입차 업계는 1994년 TV 광고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중앙일보 1995년 2월 11일 33면]

1992년 송창식의 지면 광고를 시작으로 수입차 업계는 1994년 TV 광고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중앙일보 1995년 2월 11일 33면]

 송창식의 지면 광고를 필두로 수입차 업계는 반응을 살펴보며 TV 광고까지 준비하게 된다. 1994년 스웨덴 사브를 수입하던 신한자동차는 달리는 승용차 위로 항공기가 날아가는 모습을 담은 광고로 눈길을 끌었다. 국내 제작물이 아니라 본사에서 만든 광고 필름을 가져다 광고 문안을 새로 달고, 한국인 성우의 목소리로 더빙만 했다. 이 광고도 보지 못할 뻔 했다. 수입차 업계에선 사실상 보이지 않는 무역 장벽으로 생각하던 광고 사전심의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제도가 위헌 판결을 받기 전까지 물 위를 날아다니는 듯한 멋진 외제차의 모습은 ‘과장 광고’ 판정으로 빛을 보지 못했다.

 강병철 기자 bong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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