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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의혹' 하일지 교수 "사과할 것도, 철회할 발언도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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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일지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가 19일 오후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100주년기념관에서 자신의 미투 폄하 논란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일지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가 19일 오후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100주년기념관에서 자신의 미투 폄하 논란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처음부터 끝까지 '사과'는 없고 불통만이 남았다.
"학생들이 너무 어려서, 철이 없어서 잘 모르는 겁니다." 하일지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의 말이 끝나자 스승의 말을 듣기 위해 모인 수백 명의 학생들은 야유와 한숨을 쏟아냈다. 19일 오후 2시부터 50분 간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하 교수는 자신의 성희롱·성추행 의혹을 모두 반박한 뒤 "문학자로서 깊은 상처를 입었다. 내 소신을 지키고자 강단을 떠나 작가로 되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문제가 된 발언 등을 한 건 인정하면서도 "피해자는 나다""사과를 강요하지 말라"고 응수했다.

기자회견 장소였던 동덕여대 백주년기념관 곳곳에는 '하일지 교수님 사과하세요!''참지 않겠습니다' 등의 대자보가 붙어 있었다. 하 교수가 모습을 드러내기 전부터 학생들은 마스크를 쓰고 '하일지를 파면하라''하일지 교수는 공개 사과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종이 손팻말을 들었다. 기자회견을 보러 온 문예창작과 3학년 학생 A씨는 "1학년 때부터 하 교수로부터 '섹스를 해야 글의 깊이가 생긴다' 등의 막말을 들었지만 문창과는 있는 학교가 많지 않아 소문에 취약하고 교권도 세서 문제 제기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19일 오후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하일지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의 기자회견에 학생들이 공개 사과 및 사퇴를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19일 오후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하일지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의 기자회견에 학생들이 공개 사과 및 사퇴를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동덕여대에선 하일지 교수의 학부생 성희롱·성추행 의혹이 학교 커뮤니티 게시판 등에 폭로되면서 학내 성폭력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됐다.

학생들 진술에 따르면 하 교수는 지난 14일 수업시간에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 대해 "점순이가 남주인공을 강간한 것이다. 남자애가 '미투'(#MeToo)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력 행위를 폭로한 김지은씨에 대해서는 "처녀가 아닌 이혼녀라 진정성이 의심된다. 이혼녀는 욕망이 있을 수 있다"고도 했다.

하 교수의 발언들이 알려지고 이에 학생들이 강하게 반발하자 그는 오히려 "20년 간 한 번도 문제 제기가 없었는데 미투 때문에 올해만 유독 난리다. 소설가의 생각의 자유, 강의실 내 학습권이 침해당했다"고 주장했다. 기자회견에서도 그는 "미투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무례하고도 비이성적인 결과를 받게됐다"며 "나는 지금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수업시간에 했던 모든 발언들에 대해서도 철회할 생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날 오전에 있었던 하 교수의 학부 강의는 학생들의 거부로 진행되지 않았다.

19일 오후 동덕여대 백주년 기념관 곳곳에 붙은 하일지 문예창작과 교수 규탄 대자보들. 홍상지 기자

19일 오후 동덕여대 백주년 기념관 곳곳에 붙은 하일지 문예창작과 교수 규탄 대자보들. 홍상지 기자

이날 오후 6시 동덕여대 총학생회는 '학내 미투운동을 지지하는 동덕인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 총학생회는 "대학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위계질서가 자리 잡고 있어 우리가 외치는 미투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며 "앞으로도 계속 미투를 외칠 것이다. 함께 연대하고 지지하며 대학 내 성범죄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고 밝혔다.

하 교수 외에도 동덕여대 내 미투 폭로는 계속되는 상황이다. 지난 달 22일 학교 커뮤니티에는 문헌정보학과 교수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글이 올라와 해당 교수의 수업이 다른 강사로 대체됐다. 지난 9일에는 한 여성 교수가 강의 도중 "너흰 미투 운동 하지 마라, 사회에 혼란만 야기되니까""성희롱 당했을 때 적당한 건 상대가 좋으면 됐으니까 참아라" 등의 발언을 한 사실이 공개돼 비난을 받았다. 이외에도 학생과 술을 마신 후 추행을 시도한 전산학과 강사, 입술 보호제를 바르는 학생에게 "매춘부 같다"는 발언을 한 화학과 교수 등도 있었다.

총학생회는 학교 측에 인권센터 설립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동덕여대 교원징계위원회나 교원윤리위원회는 모두 이사회나 총장이 위촉해 학생 참여는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며 "이러한 폐쇄적인 구조 하에서 사실상 학생들은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가해자에 대한 적극적인 처벌은 물론 학생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상설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덕여대 교원윤리위원회는 이날 오후 5시 하 교수 건과 관련해 '성 윤리위원회'를 연다. 학교 측은 미투 사안별로 신속히 대처하겠다는 입장이다. 학교 관계자는 "인권센터 설립은 아직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지 않지만 학교 차원에서 성희롱·성폭력 상담실을 운영해 학내 성폭력 신고 및 상담을 접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상지·김정연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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