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지체된 정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했던가. 더디고 답답한 법이 사람들의 정의감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불만은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의 부정’(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이라는 법언(法諺)도 이 때문에 생겼으리라. 영국의 19세기 명재상 글래드스턴이 이 격언을 만들었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다만 유대인의 지혜서 『피르케이 아보트』(선조의 교훈)에 나오는 ‘정의의 지체와 부정이 세상에 칼을 불렀다’는 구절로 봐서는 그 연원이 2000년은 거슬러 올라간다.

이 말이 법과 현실의 괴리를 지적할 때 쓰는 단골 인용구가 된 것은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의 공이 크다. 1963년 앨라배마주 흑인 시위를 돕다 투옥된 킹은 “흑인들에게 ‘기다려라’는 말은 ‘안 돼’라는 뜻에 지나지 않는다. 지나치게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버밍햄 감옥에서의 편지」)고 외쳤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인 지난해 3월 활동이 종료된 국정 농단 특검을 치하하며 페이스북에 올린 것도 이 격언이었다.

청와대가 강원랜드 부정 합격자 226명 전원을 사실상 해고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에 강원도가 술렁이고 있다. 채용 비리 후속 조처가 더디다는 대통령의 지적에 따라 이례적으로 청와대가 직접 나선 것이다. ‘지체된 정의’를 서둘러 실현하려는 현 정부의 기조가 반영됐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공정성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정이라는 지지와, 옥석은 가려야 한다는 우려가 엇갈린다. 면직 대상자는 기소된 채용 비리 관련자들의 공소장에 이름이 올라간 직원들이다. 하지만 “왜 내 이름이 들어있는지 모르겠다”며 억울해하는 경우도 상당수 있다고 한다. 노조와 지역단체들은 “채용 비리는 잘못됐지만 경위와 경중을 따져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인맥의 틈이 촘촘한 지역 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소리도 나온다. 면직 대상자 대부분은 2013년 초 전후에 교육생 신분으로 입사해 몇 년간의 교육생-인턴-계약직으로 이어지는 내부 경쟁을 거쳐 정직원이 됐다. 억울한 경우는 소송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다지만 그렇더라도 개인의 ‘지체된 정의’는 어떡할 건가.

법언이라면 상대되는 것도 많다.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을 만드느니 차라리 열 명의 범인을 놓치는 것이 낫다”는 18세기 영국 법학자 블랙스톤의 말은 식상할 정도다. “정의를 구현하는 방식은 때로 정의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 1930년대 미국 경찰의 강압적 수사 방식에 제동을 건 조지 위커셤의 일갈은 또 어떤가.

이현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