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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광형의 퍼스펙티브

4차산업혁명, 유니클로·자라처럼 하면 성공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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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기획-판매 사이클 1년 의류업체 #예측 잘못으로 눈물의 재고 떨이 #유니클로는 실시간 정보 공유로 #주기 1개월로 줄이며 재고 없애 #방향 없는 4차산업혁명 정책이 #기업인들의 불안감만 가중시켜 #핵심은 소비 취향-생산 주기 단축 #소비-생산 연결 플랫폼 만들어 #산업별 플랫폼을 표준화한 뒤 #성공사례를 전 산업에 확산해야

4차산업혁명 

지난 주말 백화점 마당에서 펼쳐진 재고 정리 떨이판에서 옷을 샀다. 한 달 전까지 몇십 만원에 팔리던 겨울 양복을 5만9000원에 샀다. 참으며 계절이 바뀌길 기다리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횡재에 가까운 가격이다. 그러나 제품을 생산·판매하는 사람에게는 눈물의 재고 정리다.

모든 사업에서 재고를 남기지 않으면 성공이라고 말한다. 재고는 예측을 잘못해 발생한다.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면 재고를 남기지 않고 이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재고를 남기게 되고 결국 재고 정리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재고 정리를 하지 않는 기업들이 있다. 의류업체 유니클로와 자라가 대표적이다.

일반적인 제품의 생산과 판매 공정을 보면 기획·디자인·생산·마케팅·판매가 순차적으로 이루어진다. 제품 수요를 예상하여 제품을 기획·디자인하여 판매한다. 이러한 제품들은 미리 생산해 놔야 하므로 초기 투자와 재고가 많을 수밖에 없다. 제품이 팔리고 사용자들의 반응이 다음 제품에 반영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시장 예측, 1년 전 vs 1개월 전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의류 제품의 경우 거의 1년 주기로 제품 피드백이 이루어진다. 소비자 요구사항을 디자인에 반영하는 기간이 거의 1년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제품들의 판매 성과는 정확한 예측에 달려있다. 그러나 예측이란 항상 부정확하기 때문에 결국 재고가 쌓이고 결산이 끝나면 떨이 판매를 해야 한다. 나처럼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횡재에 가까운 소비이지만 생산자에게는 눈물의 떨이판이다. 이런 재고 정리 세일이 유니클로나 자라에서는 보기 어렵다. 재고를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회사들은 어떻게 하기에 재고를 남기지 않는 것일까?

이 회사들은 4차산업혁명이란 말이 나오기 전부터 생산과 판매 공정을 4차산업혁명 개념에 맞게 개선해왔다. 이들 회사에도 기존 생산 방식처럼 모든 단계가 존재한다. 그런데 각 단계가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원형으로 구성되어 진행된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빅데이터·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으로 구성되는 데이터센터가 자리 잡고 있다.

이 데이터센터에 의해서 거의 실시간으로 각 단계에서 일어나는 정보가 상호 ‘연결’되어 공유되고 ‘융합’된다. 마케팅 단계에서 수집되는 정보, 판매되는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 AS센터에 들어오는 소비자의 불만 사항들이 동시에 공유된다. 기획과 디자인 담당자들은 오늘 현재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취향을 실시간으로 알게 된다.

예를 들어 종로매장에는 이번 주부터 빨간 옷이 잘 팔리고, 청담동에서는 노란 옷이 잘 팔린다. 그러면 빨리 그것에 맞게 만들어 공급한다. 수시로 변하는 소비자 요구사항을 충족시키기 위해 한꺼번에 많이 생산하지 않는다. 다품종 소량 생산 시스템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이렇게 매장에 도착한 제품들은 한 달 전 소비자 취향을 반영한 제품들이다. 1년 전 예측을 토대로 만들어진 제품에 비해 월등한 경쟁력을 지닌다.

매장에는 한 달 전 팔리던 물건은 더는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당연히 재고가 생기지 않는다. 재고가 생기지 않으면 성공이다. 이것이 바로 유니클로와 자라가 단시간에 세계적 회사로 성장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처럼 소비자 요구사항을 직접 생산에 연결해주는 것이 빅데이터·AI·IoT 기술이다.

기업인 불안하게 하는 4차산업혁명 정책

“도무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4차산업혁명에 동참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데, 개념도 어렵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정부도 그렇고 아무도 방향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최근 강연장에서 만난 중소기업 사장의 말이다. 기업인 입장이 이해된다. 4차산업혁명을 성장 동력으로 내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10개월이 되어 가는데, 아직 구체적 추진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정부 보고서를 보면 빅데이터·AI· IoT·자율주행·드론 등의 기술을 이용하여 혁신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기술들을 가지고 무엇을 혁신해야 할지 알 수 없다. 기업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정작 4차산업혁명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이것은 목적과 방법을 구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일은 목적이 있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이 존재한다. 복잡한 일일수록 이 두 가지를 구분하여 생각하면 방향이 명확해진다.

4차산업혁명이 회자하기 시작한 지 벌써 2년이 넘었다. 그동안 우리는 선진국 사례를 보면서 4차산업혁명에 대한 공부를 해왔다. 2016년 4차산업혁명을 제창한 세계경제포럼(WEF)의 클라우스 슈바프 회장은 ‘사이버 시스템과 물리 시스템의 통합’이라고 정의했다. 사물과 데이터가 융합되어 통합적으로 움직인다는 뜻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초연결이라 말하기도 한다. 사물과 데이터가 모두 연결되어 정보를 주고받는다는 뜻이다. 개념이 모호하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선진국들이 정의한 것들이다. 무조건 따라 할 수 없다. 이제 차근히 우리 처지에 맞는 정의를 새롭게 하고, 우리의 전략을 수립하여 추진해야 한다.

나는 대한민국 4차산업혁명의 목적을 ‘소비자 요구사항을 생산 공정에 직접 연결하는 것’이라 정의하고 싶다. 이렇게 하면 모든 산업과 모든 회사에 적용 가능한 정의가 된다. 소비자 요구사항에 맞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명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만고의 진리다. 하지만 현장에 가보면 소비자 요구사항이 곧바로 생산 공정에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측된 소비자 취향과 유행도 중요하지만, 더욱 정확한 것은 판매 현장에서 나타나는 소비 패턴, AS센터에 접수되는 불만 사항 등이다. 이러한 정보를 거의 실시간으로 생산 현장에 연결해야 소비와 생산이 결합하게 된다.

핵심은 생산 주기 단축

현재 국내 기업에서 고객 취향이나 불만 사항이 제품이나 서비스 설계에 반영되는 주기를 보자. 4차산업혁명의 구체적 실행 목표는 고객 요구사항이 생산에 반영되는 주기를 단축하는 것이다. 주기가 1년인 회사는 이를 6개월로 단축하는 것이 목표이고, 6개월인 회사는 3개월로 줄이는 것이 목표가 될 수 있다. 앞서 내가 옷을 샀던 회사의 주기는 1년이다. 그러나 유니클로나 자라의 경우에는 1개월 이내가 된다.

목적이 이처럼 정의되면 이것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고객의 요구사항을 신속히 제품 또는 서비스의 기획과 생산에 결합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회사에 따라, 산업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어떤 회사는 엑셀 파일을 이용할 수 있고, 어떤 회사는 데이터베이스 또는 빅데이터를 사용하여 할 수 있다. 더욱 복잡하고 큰 회사는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또는 블록체인을 이용해야 가능할 수 있다. 이처럼 모든 산업에 목적은 동일하지만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기업이 해야 할 일의 방향이 보인다.

플랫폼 구축 → 표준화 → 성공사례 확산

앞서 정의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추진 전략이 가능할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기업들을 위해 동기를 유발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여기 제시하는 전략은 3단계로 되어 있다. 각 단계는 약 2년씩 소요될 것이다.

1단계는 기업에서 소비자의 요구사항을 제조에 직결시킬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제작하는 단계다. 이 소프트웨어는 데이터베이스·빅데이터·인공지능·사물인터넷·블록체인 등의 기술이 활용된 플랫폼 형태가 될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플랫폼을 구축하도록 몇 천만원씩 개발비를 지원한다. 우수 개발품은 시상도 한다. 과거 20년 전에 정부가 초고속통신망을 구축하면서 인터넷 응용프로그램을 제작하도록 장려하던 경험을 참고한 것이다.

2단계에서는 앞에서 제작된 기업별 플랫폼을 비교 분석하여 표준화한다. 공통부분을 모아 표준 플랫폼을 만들고, 그 위에 회사별 특색에 맞게 응용 소프트웨어를 만든다. 예를 들어 의류산업에서는 이러한 특성을 갖춘 플랫폼이 유용하다든지 또는 식품산업에는 이러한 특성의 플랫폼이 필요하다든지 파악하게 될 것이다.

3단계에서는 앞에서 만들어진 표준 플랫폼을 이용한 성공사례를 만들고, 이를 홍보하여 확산시킨다. 산업별로 성공한 플랫폼의 윤곽이 잡히면 사업화 단계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사업화에 성공한 회사는 기본 플랫폼을 만들어 놓고, 고객 회사별로 특성에 맞게 기능을 추가해준다. 산업과 기업별로 특색에 맞는 4차산업혁명 플랫폼이 전 산업에 보급될 것이다.

소비자 요구를 생산에 연결시켜야

필자는 여기에 제시하는 추진 전략이 최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도 우리 처지에 맞는 추진 전략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필자가 세워본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더 잘 만들어 시행해주기 바란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왜 4차산업혁명 기술을 개발하고 플랫폼을 만들어야 하는지 목적을 잊지 않는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빅데이터나 인공지능 등의 기술은 수단이다. 목적은 소비자의 요구사항을 제조에 빨리 직접 연결하기 위함이다.

앞서 불안감을 토로하던 사장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제 길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우리 회사는 작으니 엑셀 파일로 할 수 있겠군요.” 복잡한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은 일이다. 대상이 복잡할수록 목적과 방법을 구분하여 보면 선명해진다.

이광형 KAIST 바이오뇌공학과 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미래학회장, 리셋 코리아 4차산업혁명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