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논설위원이 간다

염하는 대학생들 … “AI 시대에도 가장 아름다운 손길이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양영유
양영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의 현장 돋보기 

저출산·고령화 시대엔 두 장면이 교차한다. 아기 울음소리는 귀해지고 이별의 울음소리가 많아진다. 지난해 신생아 수는 35만7700명, 사망자 수는 28만5600명이었다. 각각 역대 최소치와 최대치를 찍었다. 더욱이 12월엔 2만6900명이 생을 마감해 신생아 수 2만5000명을 추월했다. 이런 역전 현상이 머지않아 매년 벌어질 수도 있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라는 철학자 니체의 말처럼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마무리는 중요하다. 현자들은 죽음은 겨울옷을 봄옷으로 갈아입는 것이라고도 한다. 그 옷을 갈아입히고 '아름다운 배웅'을 해주는 이들이 있다. 장례지도사다. 그동안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직업에 여성 수요가 많아지고 있다.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학생들이 고인을 평온한 모습으로 분장하는 메이크업 실습을 하고 있다. ※얼굴 공개는 본인들이 동의한 것임. 최정동 기자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학생들이 고인을 평온한 모습으로 분장하는 메이크업 실습을 하고 있다. ※얼굴 공개는 본인들이 동의한 것임. 최정동 기자

 영화 ‘내 사랑 내 곁에’(2009년)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꽃을 건네며 프러포즈한다. "나중에 그 예쁜 손으로 나도 천국에 보내줘." 루게릭병에 걸려 죽어가는 남자(김명민 분)와 여성 장례지도사(하지원 분)와의 가슴 저민 사랑을 그린 영화다. 하지원은 “장례지도사의 손길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길”이라고 말한다. 장례지도사는 상담과 빈소 설치, 조문 예절지도, 염습·입관·제사까지 모든 과정을 총괄하는 ‘장례 코디네이터’다. 장의사로 불리며 기피 직업으로 인식되기도 했지만, 인공지능(AI) 시대에도 사라질 수 없는 전문 직종이다. 제아무리 똘똘한 AI도 인간의 감성과 슬픔의 절정인 염습을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그런 일을 여성, 특히 미혼이 한다는 건 보통 일은 아니다. 시신만 봐도 온몸이 오그라들 터인데 몸 닦아주고, 수의 입히고, 상처 꿰매고, 메이크업까지 한다는 게 보통 일인가. 그런 생각은 세상사에 굼뜬 기자의 기우였다.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남성(김명민 분)과 여성 장례지도사(하지원 분)의 사랑을 그린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의 한 장면.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남성(김명민 분)과 여성 장례지도사(하지원 분)의 사랑을 그린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의 한 장면.

 15일 오전 10시 을지대 성남캠퍼스 박애관 6층 강의실. ‘의례실’이라고 적힌 강의실 이름 자체가 생소하다. 안으로 들어가니 장례지도학과 박원진 겸임교수가 ‘분장학 이론 및 실습’ 수업을 한다.  "파운데이션이 스며들도록 골고루 펴 바르세요. 턱밑과 눈 아래는 한 톤 밝게. 영정 사진처럼 눈썹은 자연스럽게."(박 교수)
"입술은 어떻게 그려야 하나요?"(학생)

‘아름다운 배웅’ 코디 장례지도사 #기계는 엄두 못 내는 감성 치유 #“여성은 여성이 염습” 점차 확대 #대학 장례학과 여학생에 더 인기 #장례지도사 남녀비율 65대 35 #자격 강화와 의무고용제 필요

"윗입술과 아랫입술은 1대 1.5의 비율이 좋아요. 아랫입술이 약간 두툼해야 편안해 보여요."(박 교수)

 바로 옆 교실 ‘상장의례실습실’에선 리얼한 장면이 벌어졌다. 흰 가운을 입은 4학년 학생들이 3인 1조로 실습했다. 시신을 목욕시키고 수의를 입히는 습(襲)과 시신을 옷·염포로 묶는 절차인 염(殮), 즉 염습(殮襲) 과정이다. 바지 입히고, 허리끈 묶고, 버선 신기고, 대님 묶고…. 그런 다음 상의를 입힌다. 속저고리·저고리·두루마기·도포 순이다. 이날 학생들은 마네킹을 대상으로 연습했지만, 현장실습 때는 직접 시신과 맞닥뜨린다. 여학생 김은비(22)씨는 “지난 겨울 방학 때 난생처음 시신을 봤는데 하나도 무섭지 않고 무덤덤했다"고 말했다. 남수진(22·여)씨는 "취업이 잘 되고 전망이 좋아 선택한 길이다. 엄마가 처음엔 앞길 망친다고 반대했지만, 지금은 대견해 하신다”며 웃었다. 남학생 단유호(25)씨는 “시신 10여 구를 염습했는데 여학생들이 더 꼼꼼하게 한다"고 했다.

 학생 10여 명과 인터뷰해보니 “취업과 장래 안정성을 고려해 전공을 선택했다"는 거로 요약됐다. 여학생들은 쿨했다. "결혼 못 한다고요? " "그건 고릿적 얘기죠. 구닥다리 남성은 사귀지도 않을 겁니다. 염습을 처음 한 날도 밥 잘 먹고 잠 잘 잤어요. 프로가 돼야죠.”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학생들이 염습 실습을 하기에 앞서 고인을 향해 절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학생들이 염습 실습을 하기에 앞서 고인을 향해 절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을지대 장례지도학과는 1999년 생겼다. 당시에는 전문대(서울보건대)였으나 2007년 국내 최초의 4년제 학과로 바뀌었다. 입학정원은 40명인데 여학생이 25명 전후로 더 많다. 청년실업난 속에 취직 걱정 없이 병원과 상조회사에 입도선매 되다 보니 입학 경쟁률도 치열하다. 2016학년도 수시는 4.5대 1이었으나 2017학년도엔 5.4대 1, 2018학년도엔 6.9대 1로 치솟았다. 신입생 김모(19)양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기계가 인간의 이별을 대신해 줄 수는 없다"며 “고인과 유가족의 아름다운 배웅 전문가가 되려 한다”고 말했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4차 산업혁명 인력수요(2016~2030) 전망에서도 8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지만, 장례업 같은 특수분야  수요는 더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통계청 사망 인구 추이가 이를 뒷받침한다. 2020년엔 35만7000명, 2030년엔 45만3000명, 2035년엔 50만7000명, 2045년엔 63만 명이 생을 마감할 거란 전망이다.
 슬픈 현실이지만 장례식장도 늘어난다. 2000년 465개였던 것이 지난해 1105개로 급증했다. 을지대 이철영 장례지도학과 교수는 “장례지도사 자격증 소지자 2만2108명 중 80%가 현역으로 활동한다”며 “여성·남성 비율은 35대 65 정도”라고 분석했다. 장례지도사 자격증은 을지대와 전문대 4곳(대전보건대·창원문성대·동부산대·서라벌대)을 졸업하면 자동으로 취득한다. 전국 74개에 이르는 장례지도사 교육원에서 300시간의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취득하는 방법도 있다.

 을지대 학생들이 상장의례실습실에서 마네킹을 대상으로 염 실습을 하는 장면. 최정동 기자

을지대 학생들이 상장의례실습실에서 마네킹을 대상으로 염 실습을 하는 장면. 최정동 기자

 그러면 실제로는 어떻게 일할까. 11일 오후 1시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입관실. 최정미(34)·장준호(28) 장례지도사가 여성을 염습한다. 얼굴·팔·손·가슴·배·다리·발, 그리고 등의 순으로 정성을 다해 씻긴다. 수의를 입히고 얼굴을 메이크업한 뒤 가족들에게 마지막 이별의 시간을 준다. 두 아이의 엄마인 11년 경력의 최정미씨는 “사망자의 절반은 여성이어서 유가족들은 나 같은 여성을 선호한다”며 “딸처럼 정성을 쏟아줘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실제 조선시대 양반 가문에선 딸을 시집보낼 때 염하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재가 편술한『사례편람(四禮便覽)』에도 "염습은 가족이 하되 남자는 남자가, 여자는 여자가 하라"는 구절이 나온다. 장례지도사들은 2인 1조로 일하는 데 여성 고인은 가급적 여성이 염습한다. 하지만 여성 장례지도사가 부족해 '남남(男男)' 조가 더 많다. 급여는 월 300만원 전후다. 최근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취업한 민예기(25·여)씨는 "여성 인력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애환도 적지 않다.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의 심은이(41) 장례지도사의 말. “17년 전 일을 시작했을 때 사람들이 손도 만지려 하지 않았어요. 그 손으로 밥하고 나물 무치느냐는 말까지 들었죠. 요즘엔 그런 편견이 없어요. 이 일은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고령화 사회에서 이별의 복지는 다양화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유골을 넣은 캡슐을 우주로 보내는 우주장(宇宙葬)까지 등장할 정도다. 죽음의 80%가 병원 객사이고 장례식장이 필수가 된 우리 현실을 돌아볼 필요도 있다. 2012년부터 장례지도사가 국가 자격이 되었지만, 제도적 정비가 필요한 것이다. 박원진 교수는 "현행 무시험 자격증 발급제도를 시험제로 바꿔 인성과 능력을 더 키우도록 하고, 자격증 소지자 '의무고용제'를 적용해 자부심을 살려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국 샌 안토니오대 학생들이 을지대를 방문해 장례지도학과 이철영(오른쪽) 교수로부터 제례 강의를 듣고 있다. [사진 을지대]

미국 샌 안토니오대 학생들이 을지대를 방문해 장례지도학과 이철영(오른쪽) 교수로부터 제례 강의를 듣고 있다. [사진 을지대]

 소설가 최명희는 『혼불』에 “장례는 머리로 이해하지 말고 가슴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썼다. 장례는 망자와 산자가 소통하는 '시공'이며, 살아남은 자들이 어우러지는 ‘마당’이라는 것이다. 그 연결고리가 되어주는 장례지도사들이 존경스러웠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은 오늘도 누군가를 평온하게 보내고 있을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