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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시시각각] 미투감별법과 펜스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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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5호 34면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최근 일각에서 ‘#미투’를 감별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사이비 미투가 진짜 미투를 오염시킨다’는 우려와 함께다.

피해자 진의 묻는 ‘미투 감별법’ #남성성 새롭게 규정하기가 과제

미투가 폭로 이후 사법 절차 이전에 ‘명예형’을 치르는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고발자가 불순한 의도를 가질 경우 또 다른 피해가 생길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 경우 고발자가 얻을 이익이 분명해야 한다. 미투가 집중된 진보진영에서는 ‘정치공작’ 프레임으로 돌파를 시도 중이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피해에 집중하기보다 진짜와 가짜를 가르며 피해자의 진의부터 따지는 태도가 지금껏 성폭력을 은폐·방조하는 첫 번째 기제였던 ‘가해자에 동조해 피해자 의심하기’(피해자 꽃뱀론)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안희정도 가고 봉도사(정봉주)도 가고~”라며 거듭 공작설을 제기하고 있는 시사평론가 김어준씨의 집착은 딱할 정도다.  만약 보수진영에서 미투가 나왔다면, 공작설을 들고 나왔을까. ‘폭로하는 여성 뒤에는 사주하는 사람이 있다’는 공작설은 그 자체가 반여성주의적 발상이다. 김씨는 과거 ‘나꼼수’ 시절에도 여성비하적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그가 굳이 공작 운운 안 해도, 보수진영의 미투가 덜하다고 청정지역이라고 믿는 바보는 없으니 걱정 말기 바란다.

물론 미투 운동에는 죄질이 더 나쁘지만, 폭로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묻힐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성폭력에도 정도 차이가 있고 그에 따라 처벌이 달라야 하는 것도 맞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벌써부터 미투의 한계를 논하는 것은 예비 폭로자들을 위축시켜 하루빨리 미투가 사그라지기를 바라는 것일 뿐이다. 만약 감춰진 더 악질의 진짜 미투들이 나오기를 바라면, 사이비 운운이 아니라 아직도 더 많은 폭로가 필요하다고 외치는 게 맞을 것이다.

미투에 진짜와 사이비는 있을 수 없지만, 좀 더 파급력이 큰 결정적인 미투는 있다고 본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를 향한 김지은 전 정무비서의 미투가 그것이다. 원래 그쪽 바닥에서 소문이 자자했던 문화계 인사들과는 ‘급’이 달랐다. 한때 한국사회의 미래로 추어올려졌던 정치 엘리트의 실체가 충격을 더했다. 특히 “괘념치 말아라” “너를 가져서 미안하다” 등의 말을 통해서는 엘리트 남성들의 자기중심적, 가부장적 의식구조의 일단이 드러났다. 권력가 남성이라면 당연히 전리품처럼 여성들을 ‘취할’ 수 있고, 승은을 입듯  ‘내가 선택하면 너는 동의해야 한다’는 의식구조다.

미투의 완성이 남녀가 더불어 살아가는 좋은 세상 만들기라면, 그를 위한 첫 출발은 가부장구조 아래 왜곡된 남성성을 새롭게 규정하기다. “여자 따먹은” 얘기로 수컷다움을 과시하고, 그를 어른 남자가 돼가는 통과의례쯤으로 여기는 문화에서는 수백번의 미투가 나와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미투가 걱정되니 남자들끼리만 뭉치자는 ‘펜스룰’도 답이 아니다. 여자를 배제하는 ‘펜스룰’은 또 하나의 성차별이자, 남자들 스스로 잠재적 가해자임을 인정하는 꼴이다.

‘남자다움’에 갇힌 남자들의 문제를 분석한 맨박스(manbox)의 저자 토니 포터는 “남성들만의 특권과 그릇된 남성성의 사회적 학습이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성폭력, 성매매, 그리고 여성에 대한 사회 전반의 적대감을 불러일으켰다”고 썼다. (남자들 사이에서는) 공개적으로 여성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남자답지 못한 행동으로 간주한다”며 “착한 남자의 침묵은 폭력의 승인이나 마찬가지”라고도 했다. 이제 새로운 남성성이라는 과제가 미투 열풍을 통과하는 우리 사회의 숙제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은 가부장제 아래서는 남자라는 것 자체가 권력임을 스스로 깨닫는 데서 출발할 것이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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