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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의 레저터치] 규슈올레와 한일 관광 방정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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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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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일본 규슈(九州)를 갔다 왔다. 올해로 7년째를 맞이한 규슈올레 신규 코스 개장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개장행사마다 출석하다 보니 21개 코스를 다 걸었다. 전체 길이는 243.1㎞에 이른다.

규슈올레는 우리의 제주올레를 본뜬 트레일이다. ‘올레’란 이름은 물론이고 간세·리본 같은 제주올레 상징을 빌려다 쓴다. 물론 대가를 지급한다. 규슈올레를 주관하는 규슈관광추진기구가 ㈔제주올레에 연 100만엔(약 1000만원)씩 업무 제휴비를 준다.

규슈관광추진기구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규슈올레를 경험한 인원은 40만 명이 넘는다. 이 중에서 최소 60%가 한국인이다. 작년 한 해 규슈를 방문한 한국인 수 220여만 명을 떠올리면 초라해 보이지만, 규슈올레는 일본에서 관광 콘텐트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를 공세적으로 극복한 시도여서이다.

2011년 대지진 직후. 규슈를 찾는 한국인의 발길이 뚝 끊겼다. 한국인이 외국인 방문자의 40%를 차지하는 규슈로서는 치명타였다. 고민 끝에 규슈는 제주올레 수입을 결심했다. 한일 교류라는 의의에 기댈 수 있었고,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지자체와 주민이 손을 잡고 길을 내는 방식이 올발랐다.

다케오(武雄)·가라쓰(唐津)·고코노에(九重)·우레시노(嬉野) 등 규슈 구석구석의 소도시가 규슈올레 덕을 단단히 봤다. 규슈올레 개장 이전에는 한국인이 드물었는데 지금은 거리 곳곳에서 한글 안내판이 눈에 띈다. 이번에 개장한 사이키·오뉴지마(佐伯·大入島) 코스와 지쿠호·가와라(筑豊·香春) 코스도 외딴 시골 마을이 배출했다. 돌아보니 규슈올레는 작고 약한 것에서 큰일을 도모했다.

지난달 관광 당국을 바짝 긴장시킨 통계가 발표됐다. 관광수지 적자 14.7조원. 관광산업을 회계장부처럼 흑자와 적자로 가르는 것은 반대하지만(아웃바운드 시장의 약 40%는 여행사·항공사 같은 국내 업체 매출이다), 사상 최악의 관광수지 적자 이면에는 뼈저린 통계가 숨어있다. 2017년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은 714만 명인 반면에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은 231만 명이었다. 3배 이상 차이가 났다. 이 막막한 격차 앞에서 일본의 혐한(嫌韓) 기류만 탓하는 건 무책임하다. 한국도 못지않게 일본을 싫어한다. 그래도 여행은 일본으로 간다.

오는 10월이면 혼슈(本州) 동북부 미야기(宮城)현에도 올레길 2개 코스가 열린다. 규슈올레의 성공에 자극받은 미야기현이 규슈처럼 제주올레를 들여오는 것이다. 미야기현은 원전사고가 일어난 후쿠시마(福島)현과 붙어있는 이웃이다. 원전사고 직후 미야기현의 한국인 방문자는 3분의 1로 줄었고, 여태 반 토막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미야기 올레 개장이 한국인의 귀환으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을 터이다. 그래도 평가는 해야 한다. 이번에도 일본은 한국이 익숙한 것에서 시작했고, 마구잡이 개발을 지양했다. 올레를 걷는 것처럼 ‘꼬닥꼬닥’ 걷는 길을 선택했다. 당장 알아야 할 건, 일본인이 한국을 오게 하는 방법보다 한국인이 일본을 가는 이유다.

손민호 레저팀장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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