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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단독 개봉'이 뭐길래...'치즈인더트랩' 계기로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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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개봉으로 논란이 된 영화 '치즈인더트랩' 한 장면. [사진 리틀빅픽처스]

단독 개봉으로 논란이 된 영화 '치즈인더트랩' 한 장면. [사진 리틀빅픽처스]

 한국영화 ‘치즈인더트랩’(14일 개봉)을 계기로 영화계에 ‘단독 개봉’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유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류스타 박해진이 주연한 이 영화는 멀티플렉스 체인 가운데 CGV가 독점적으로 상영중이다.
 15일 영화 다양성 확보와 독과점 해소를 위한 영화인대책위원회(이하 반독과점 영대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단독 개봉이 대기업 멀티플렉스 3사 중심으로 독과점화 되어 있는 영화시장에 더 심한 경쟁을 불러오고, 그 결과 영화시장의 상황을 더 불공정한 쪽으로 고착화하는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우려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반독과점 영대위는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 영화수입배급사협회, 한국영화시나리오작가협회 등 영화 다양성 확보와 독과점 해소에 문제의식을 지닌 영화인이 모여 지난해 발족한 단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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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웹툰을 토대로 한 영화 '치즈인더트랩' 포스터. [사진 리틀빅픽처스]

인기 웹툰을 토대로 한 영화 '치즈인더트랩' 포스터. [사진 리틀빅픽처스]

 그동안 단독 개봉은 상영관을 잡기 힘든 저예산‧예술영화, 재개봉작 등이 주된 대상이었지만 최근에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난해 할리우드 액션 대작 ‘킬러의 보디가드’는 CGV 단독 개봉으로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고 최종 관객 172만 명을 동원했다. 여기에 스타 배우가 주연한 국산 상업영화까지 가세하자 공개적인 비판이 불거진 것으로 보인다. 단독 개봉을 두고 영화계에서는 개봉 비용을 줄이고 상영관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시각과 멀티플렉스의 시장 장악력이 더 커져 중소 배급사·제작사·수입사의 입지와 영화 다양성이 위협받을 것이란 시각이 엇갈린다.

지난해 CGV 단독 개봉해 172만 관객을 모으 할리우드 액션 대작 '킬러의 보디가드'. [사진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지난해 CGV 단독 개봉해 172만 관객을 모으 할리우드 액션 대작 '킬러의 보디가드'. [사진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아이러니한 것은 ‘치즈인더트랩’의 배급사가 리틀빅픽처스란 점이다. 리틀빅픽처스는 대기업의 불공정 관행을 견제하는 등의 취지로 2013년 제협과 리얼라이즈픽쳐스, 명필름, 삼거리픽쳐스 등 10개 영화제작사가 공동출자해 설립한 회사다. 4년 전 김성호 감독의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개봉 당시 멀티플렉스의 불합리한 상영시간대 배정과 교차상영으로 피해를 봤다고 호소해 관객과 영화인의 자발적인 상영관 확보 운동을 끌어내기도 했다.
 권지원 리틀빅픽처스 대표는 본지와 통화에서 “제협이 주주이긴 하지만 리틀빅픽처스는 수익을 내야하는 주식회사”라며 “중소규모 영화에 맞는 효율적인 배급 전략을 취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한 장면. [사진 리틀빅픽처스]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한 장면. [사진 리틀빅픽처스]

권 대표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뿐 아니라 올해 1월 개봉한 ‘1급기밀’도 비용을 들여 와이드 개봉을 했지만, 교차상영을 받거나 해서 손실을 봤다”며 "‘치즈인더트랩’ 같은 순제작비 40억원의 중소규모 영화가 멀티플렉스 세 곳에 모두 개봉하면 마케팅과 배급에 10억원 이상 드는데, 단독 상영하면 극장의 마케팅 지원을 받아 비용이 3억원까지 줄고 상영관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CGV 관계자는 “특정 마트에서만 파는 상품이 있듯 극장도 독점 콘텐트를 확보해 경쟁우위를 노릴 수 있다”면서 “영화가 천편일률적으로 모든 극장에서 상영해야 한다는 논리가 오히려 공정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CGV 단독 개봉한 영화 '월요일이 사라졌다'는 스타 배우와 감독 없이도 첫 주말 흥행 2위에 오르며 선전했다. [사진 퍼스트런]

지난달 CGV 단독 개봉한 영화 '월요일이 사라졌다'는 스타 배우와 감독 없이도 첫 주말 흥행 2위에 오르며 선전했다. [사진 퍼스트런]

 반면 반독과점 영대위는 “단독 개봉이 단편적으로는 비용 절감에 따른 수익 증가로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멀티플렉스 간의 과당경쟁과 ‘배급사 줄 세우기’가 생기면서, 대기업 멀티플렉스에 속하지 않은 ‘독립 극장’과 독립예술영화관들이 작품 수급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결과적으로 관객의 영화 선택권과 문화 향유권이 훼손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대위는 국내 영화시장에 대해 “시장 점유율이 가장 큰 CGV의 50%대 점유율을 비롯해,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를 합한 3사의 시장점유울은 96~97%쯤으로 가히 절대적"이라며 "영화 상영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내버려둔 채 선택하는 단독 개봉 방식은 영화 산업계 약자들이 자신의 위상과 힘을 스스로 약화시키는 자충수가 될 뿐”이라며고 했다. 영화수입‧배급사 엣나인필름 정상진 대표는 “멀티플렉스에 선택받는 영화만 살아남는 현상이 심화되면서, 사실상 대기업 영화관이 배급까지 하는 형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멀티플렉스 지점이 없는 지역에선 영화 선택권이 줄어든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지난달 단독 개봉 방식으로 관객을 만난 할리우드 직배사 UPI 영화 '50가지 그림자:해방'. [사진 UPI코리아]

지난달 단독 개봉 방식으로 관객을 만난 할리우드 직배사 UPI 영화 '50가지 그림자:해방'. [사진 UPI코리아]

 단독 개봉은 멀티플렉스 3사 합쳐 2015년 연간 20편 정도였던 것이 지난해 108편으로 크게 늘어났다. 외화 수입사만 아니라 할리우드 직배사도 가세하고 있다. 지난달 개봉한 UPI의 ‘50가지 그림자:해방’, 오는 22일 개봉하는 소니픽쳐스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등이 각각 할리우드 직배사의 롯데시네마·CGV 단독 개봉작이다. UPI 측은 “직배사가 배급력이 있다 해도, 상업영화가 아닌 예술영화를 개봉할 땐 예산이 한정돼있다”면서 “단독 개봉으로 극장 홍보‧마케팅을 지원받고, 상영 회차와 스크린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게 유리한 면이 있다”고 했다. 단독 개봉 영화가 흥행하면서 일부 중소 수입‧배급사는 특정 멀티플렉스 단독 개봉을 영화 홍보 문구로 내세우기도 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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