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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북·미 회담 45분 만에 결정? 트럼프, 45일 물밑 작업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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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김 위원장이 특사단을 통해 북·미 정상회담을 제안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빠르게 화답했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김 위원장이 특사단을 통해 북·미 정상회담을 제안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빠르게 화답했다. [EPA=연합뉴스]

“그럼 나도 4월에 하지, 뭐.”(트럼프 미국 대통령)

외교 소식통이 전하는 막전막후

이 한마디에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 조윤제 주미대사는 당황했다. 지난 8일 오후 5시를 조금 넘긴 시간 백악관 오벌오피스.

정 실장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으로부터 전달받은 북·미 정상회담 제안을 전하자 트럼프는 “오케이. 빠른 시간 내에 하자고 전해라”고 화답했다.

다시 정 실장이 조심스레 “4월에 남북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는데…”라고 말을 흐리자 트럼프가 돌연 ‘4월 동시 회담’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이 자리에선 북·미 정상회담을 5월로 미룬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트럼프는 그러면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 존 켈리 비서실장,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쪽을 쳐다보더니 “봐라, 내가 말한 대로 그렇게 되지 않았느냐”고 으쓱해했다고 한다.

트럼프 "그럼 나도 회담 4월에 하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김 위원장이 특사단을 통해 북·미 정상회담을 제안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빠르게 화답했다. [AP=연합뉴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김 위원장이 특사단을 통해 북·미 정상회담을 제안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빠르게 화답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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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을 요구한 한 소식통은 “정 실장이 오벌오피스 45분 회동이 끝나고 백악관 별도 회의실로 옮겨 맥매스터와 발표문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남북회담 후’를 뜻하는 ‘5월까지(by May)’란 표현을 넣는 데 성공했다”고 전했다. 하마터면 4월 동시 개최라는 이상한 모양새가 될 뻔한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10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불과 45분 만에 역사를 바꿨다”고 보도했다. 트럼프가 이날 정 실장의 이야기를 듣고 즉흥적으로 회담을 수락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은 이 45분 안에는 450시간, 아니 45일 이상의 노력이 응축돼 있었다.

외교 소식통은 “이미 미국은 지난해부터 북·미 간 자체 루트를 통해 ‘톱(top)끼리의 회담을 통해서만 양국 간 문제를 풀 수 있다’는 북한의 의향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북한의 ‘톱다운(top-down·하향식)’ 방식에 대한 집착은 강했다고 한다. 이런 방침은 트럼프 대통령 등 수뇌부에게 수시로 보고됐다.

다만 지난해는 ‘최대의 압박(maxim um pressure)’ 기간이었고 북한에 대화의 진정성을 찾을 수 없는 만큼 “자진해서 현실적으로 나올 시간을 주자”는 쪽으로 기울었다고 한다. “최대 압박의 효과가 쭉 올라가 북한이 버거워할 때가 적절한 타이밍”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미, 압박 효과 기다린 뒤 CIA서 주도

그런 상황에서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북·미 간 입질이 활발해졌다. 펜스 부통령이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하기 보름여 전인 1월 20일께. 오벌오피스 회담 47일 전쯤이었다.

북한이 펜스를 만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중앙정보국(CIA)이 입수하면서 북·미 간 물밑 접촉은 본격화됐다. 이 과정에서 국무부는 완전 배제돼 있었다고 한다. 북한이 당초 ‘펜스-김여정 만남’을 갈망한 것은 북·미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전주곡이었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막판 두 시간 전에 만남을 취소했을까.

외교 소식통은 “펜스 부통령이 천안함 기념관을 가거나 추가 제재 방침을 발표한 게 취소 이유로 알려졌지만 사실 북한은 그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고 전했다.

만남 예정 전날 펜스 부통령이 리셉션장과 개막식장에서 보인 ‘완전 무시’ 반응을 보고 “김정은의 여동생(김여정)이 참석하는 회담이 좋지 않은 결과로 끝날 것에 대한 부담 때문에 심야에 평양 지시를 받고 취소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미국과의 대화를 거부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김여정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결정을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번 정 실장 일행 방미를 앞두고도 트럼프는 이미 김정은의 북·미 회담 제안 사실을 접수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정 실장이 북한에서 돌아오자마자 맥매스터 보좌관에게 이를 전달했고, 양국 정보기관 간에도 긴밀한 정보교환이 이뤄졌다고 한다.

외교 소식통은 “어떤 이야기(정상회담 제안)일지는 이미 상당수가 알고 있었지만 트럼프가 바로 자신의 결정을 공표할 줄은 몰랐다”고 전했다. ‘협상가’ 트럼프로선 취임 후부터 이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 수 있다.

북, 김여정 부담 될까 펜스 만남 취소

다른 관계자도 “트럼프는 결국 자신이 톱다운으로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굳히고 있었던 것”이라며 “북한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이번 회담에선 트럼프가 선(합의 지침)을 일단 그어둔 다음, 밑에서 그에 맞춰 나가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따라서 김여정 대미특사, 혹은 틸러슨 국무장관 대북특사 같은 ‘중간 단계’는 집어넣지 않을 것이란 주장이다.

소식통은 정 실장이 트럼프에게 ‘특별 메시지’를 전했다고 하는 것과 관련, “대북 특사단이 받은 김정은의 인상, 김정은의 말하는 순서(어순), 김정은 발언에 대한 특사단 자체 분석을 전달하는 가운데 김정은이 했던 ‘미국 관련 발언’ 한 가지를 간단히 전달했던 것일 뿐”이라며 “특별히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주라고 한 메시지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북 4대 약속 지켜야 회담”

마이크 폼페이오. [REUTERS=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REUTERS=연합뉴스]

이 소식통은 또 “일부 보도처럼 ▶북·미 평화협정에 대한 강한 의지와 국교 정상화 ▶평양 주재 미국 대사관 설치 ▶북한에 억류돼 있는 한국계 미국인 3명의 추방(석방)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동결 및 폐기 등은 (김정은이 전한 특별 메시지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핵·미사일 시험 중단이 결정적”=마이크 폼페이오 CIA 국장은 11일(현지시간) 폭스뉴스 등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기만의 역사와 회담 리스크를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정은이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 중단, 한·미 연합훈련 수용,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 등) 4대 약속, 4개 주요 양보를 지킨다면 대통령은 완전히 준비하고 회담에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핵·미사일 시험 중단 합의는 미 본토 타격 능력을 갖출 문턱을 못 넘게 하는 것”이라며 “그것이 결정적(critical)”이라고 말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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