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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으로 듣는 '찹쌀떡!', 작곡가 김택수 "유머는 나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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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도 개구쟁이일 것 같다"는 작곡가 김택수. 들으면 이해되고 웃음이 나오는 곡을 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늙어도 개구쟁이일 것 같다"는 작곡가 김택수. 들으면 이해되고 웃음이 나오는 곡을 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3악장 뒷부분 멜로디가 뭔지 아시겠어요?”
9일 서울 서초동의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연습실. 지휘대 옆에 선 작곡가 김택수(38)의 질문에 단원들이 조용해졌다. 작곡가가 말을 이어갔다. “'못 찾겠다 꾀꼬리. 디스코 추면서 나와라'에요. 저희 동네에선 이렇게 했거든요.” 단원들이 와아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오케스트라를 이끌던 지휘자 진솔이 작곡가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여기 맨 뒷부분은 왜 한 음이 길게 지속되나요?” 작곡가가 대답했다. “그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술래가 ‘무궁화 꽃이~’하고 길게 끌고 있는 거예요. 잘하는 애들은 그러잖아요.” 지휘자와 단원들이 다시 한번 웃었다. 작곡가 김택수의 최신작 ‘국민학교 환상곡’ 연습 장면이다. 3악장짜리 작품은 술래가 갑작스럽고 빠르게 “피었습니다”를 해치워버리는 것으로 끝난다. 팀파니가 글리산도로 음 여러 개를 마지막 두 마디로 휘리릭 연주해버린다. 작품은 1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초연했다.

김택수는 음악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작곡가다. 그의 작품은 청중에게 폭소를 터뜨리게 하거나 최소한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게 한다. 이런 작업을 해온 지는 몇 년 됐다. 그는 “2012년 ‘찹쌀떡’ 즈음부터 시작한 것 같다”고 했다. 2013년 2월 인디애나 대학 콘서트홀에서 초연된 ‘찹쌀떡’은 작은 합창단 앞에 선 테너가 아름다운 발성으로 “찹쌀떡” “메밀묵”을 노래하는 작품이다. 4분짜리 곡에 대해 김택수는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기대와 배고픔이 커졌던 경험에 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택수의 작품은 그런 일상생활에 대한 자신의 기억, 그때의 감각적 경험에서 출발한다. 음악대학 연습실에서 들려오는 각종 악기의 소리를 음악으로 만들고(연습실 랩소디, 2016) 스트레치 동작에 대한 인상을 모아 소리로 바꿨다(Stre-----tch!!, 2014). 장면을 포착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생각을 발전시킨 곡도 있다. ‘2015년 6월 26일 아침’은 미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날을 소재로 한 곡이다. 인간의 권리에 대한 생각 뿐 아니라 전세계의 사람들에게 이날이 어떤 의미일지에 대한 생각을 담았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에 자극을 받아 알고리즘을 이용한 작곡법으로도 곡을 썼다(숨, 2016).

“일상에서 출발하는 음악이 내가 갈 방향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하는 그는 이 변화가 미국 유학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미국의 음악 교육은 늘 정답이 없다고 하죠. 그럼 내가 뭘 해야 할까 고민했죠. 내 주변에서 소재를 찾아야 제일 잘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자신의 이야기를 가져다 쓰며 스스로 경험한 한국을 재현했다. “한국의 작곡가에게 ‘한국적인 것’은 경계해야 할 소재로 꼽혀요. 자칫하면 윤이상 같은 작곡가의 그늘에 머물 수 있거든요. 하지만 내가 겪고 자란 한국은 나만의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도전해 보고 싶었죠.” 어릴 때의 추억과 이야기를 음악에 마음껏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의 음악은 한국 청중에겐 음악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즐거움을 줬고, 외국 청중에겐 신선하게 다가갔다.

김택수는 서울과학고,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했다. 어려서부터 했던 바이올린을 잊지 못하고 대학에서도 작곡과 수업을 청강했다. 화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대 작곡과에 다시 들어갔고 4학년이던 2006년 중앙음악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데뷔했다. 같은 해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진은숙 마스터 클래스 참가자로 선정됐고 2009년엔 윤이상 작곡대상에서 2위를 했다. 2011년 미국으로 건너가  인디애나 음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포틀랜드 주립대학과 루이스앤클락 대학에서 겸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 있다.

김택수가 올해 발표한 '국민학교 환상곡' 악보를 들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택수가 올해 발표한 '국민학교 환상곡' 악보를 들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작곡을 시작한 초반에는 새로운 소리에 대한 실험에 관심이 많았다. 2008년 ‘플래시!!’ 2009년 ‘스플래시!!’ 등에서는 각종 악기가 내는 소리가 섞여 전에 없던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세상에 보였다. 김택수는 "음악을 늦게 시작했다는 일종의 콤플렉스로 뒤처지기 않기 위해 여러 가지를 시도"하기도 했고, 한편으론 “내 안의 어쩔 수 없는 딴따라 기운을 애써 숨기기도 했다" 고 말했다. 현대음악의 작법을 익히고 음향이 낼 수 있는 효과에 대해 익힌 다음엔 정체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제 개인적인 기억과 느낌이 작품으로 자연스럽게 담기게 된 것 같아요. 작곡가가 음악을 통해 사람들에게 주고 싶은 게 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공감과 즐거움을 주는 음악이 우선입니다.”

청중이 공감하는 음악에 대한 그의 계획은 계속 이어지는 중이다. “오페라로 쓸 수 있는 아이디어도 몇 개 있고 동화를 소재로 한 아이들 교육용 음악도 쓸 생각"이다. 일상에서 얻은 아이디어가 음악으로 바뀌는 데는 몇 년씩 걸리지만( ‘국민학교 판타지’도 2년 넘게 썼다), 음악이 되길 기다리는 아이디어가 지금도 많다. “헝가리 작곡가 바르토크도 헝가리 민요의 선율들을 모았다가 나중에는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냈다고 하죠. 언젠가 한국의 자장가, 이상의 시와 같은 소재를 가지고 단번에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음악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그는 “나이가 들면 작품이 바뀔 수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앞으로도 나는 여전히 개구쟁이로 남을 것 같다"며 웃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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