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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원 커피 수수료가 1만원…'비트코인 천국'서 결국 카드 썼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암호화폐(일명 가상화폐)는 혁명일까 바람일까.  투기 바람은 잠잠해졌다. 이제는 산업 발전을 고민해야 할 때다.  규제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적어도 세 나라에서는 적절한 규제와 함께 암호화폐 및 블록체인 산업 진흥에 대한 고민이 진지하게 익어가고 있다. 일본ㆍ스위스ㆍ에스토니아를 다녀왔다. 그들의 현실은 어떻고, 어떤 미래를 만들기 위해 제도적 노력을 하는지 조명했다.

[암호화폐, 투기 대상에서 산업으로 ①] #'비트코인 천국' 현금ㆍ카드 없이 하루 살기 실험

아직은 가능성의 화폐...일본서 비트코인으로 하루 살아보니

‘비트코인 천국’으로 알려진 일본이다. 비트코인으로만 결제 가능한 점포가 작년 말 기준으로 26만여 곳(프랜차이즈 점포 숫자 포함)에 이른다. 현금이나 신용카드 없이 비트코인만으로 살 수 있을 듯싶다.

화폐의 3가지 기능은 교환의 매개, 가치의 척도, 가치의 저장. 비트코인이 그중 가장 핵심인 교환의 매개가 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비트코인으로 하루 살기’를 해봤다. 비트코인은 화폐인가, 혹은 화폐가 될 수 있을까.

매수 단가 940만원, 가격 올라 ‘이득’

비트코인 매수를 처음 계획한 날이 지난달 9일. 하루 전만 해도 900만원 아래에서 거래되다 이날 900만원 위로 올라섰다. 다시 900만원 밑으로 내려가겠지 싶어 899만1000원에 0.0005 비트코인(BTC) 매수를 예약했다.

이어 2만원 폭으로 0.0005개씩 매수를 연속으로 걸어뒀다. 매수가 모두 체결된다면 0.1 구입이 가능하다. ‘가는 날이 장날’인가. 매수는 전혀 체결되지 않았다. 비트코인 가격이 올라만 갔다. 이러다 하나도 못 사지 싶은 생각에 매수 단가를 940만1000원으로 높여 잡았다. 오르는 가격을 따라잡으며 매수 예약을 걸었고, 체결됐다.

총 구입 0.065, 매수 단가 약 940만원. 2월 10일 한때 900만원 초반대까지 가격이 내려가면서 수익률이 마이너스가 나기도 했다. 이후 비트코인 가격은 상승으로 방향을 틀어 2월 20일 출장 즈음엔 1200만원선을 회복했다.

취재 목적으로 산 비트코인에서 열흘 만에 30% 가까운 수익을 냈다. 시쳇말로 ‘개이득’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지나친 가격 변동성은 비트코인이 일상에서 화폐로 기능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다.

비트코인 결제를 위해선 지갑(일종의 계좌)이 있어야 한다. 거래소 지갑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 거래소에서 수동으로 승인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송금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일부 거래소는 부정 인출 사고를 막기 위해 모바일 출금을 막아놓은 곳도 있다. 개인 지갑이 있어야 한다.

개인 지갑은 웹ㆍ하드웨어ㆍ페이퍼 등 형태가 다양하다. 거래 편의를 위해 모바일 지갑을 알아봤다. 일본 내 비트코인 결제 상점을 리스트해 놓은 뉴스 사이트에서 안내한 ‘마이셀리움’이라는 지갑을 애플리케이션(앱) 스토어에서 다운받았다. 몇 가지 정보 입력 절차를 거치고 핀넘버(비밀번호)를 설정하자, 개인 지갑이 생성됐다.

마이셀리움 지갑을 휴대전화에 설치하고 구매한 0.065비트코인을 전송했다. 수수료로 0.0005비트코인이 차감돼 0.0645비트코인만 남았다. 지갑 설치 후 설정에 들어가 화면 구성을 보기 편하게 바꿔, 좌우 화면 구성이 약간 다르다. [휴대전화 화면 캡쳐]

마이셀리움 지갑을 휴대전화에 설치하고 구매한 0.065비트코인을 전송했다. 수수료로 0.0005비트코인이 차감돼 0.0645비트코인만 남았다. 지갑 설치 후 설정에 들어가 화면 구성을 보기 편하게 바꿔, 좌우 화면 구성이 약간 다르다. [휴대전화 화면 캡쳐]

거래소에서 모바일 지갑으로 비트코인을 전송했더니 약 6000원(0.0005, 1=1200만원)이 수수료로 차감됐다. 78만원(0.065)을 보내는데 수수료로 6000원을 낸 꼴이다.

지난 5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다른 은행으로 78만원을 이체하는 경우, 영업점 창구나 영업 마감 후 자동화기기(ATM)를 이용해도 부담하는 수수료가 최대 1000원에 불과하다.

4000원짜리 사는데 수수료 1만원

비트코인으로 하루 살기 디데이는 2월 21일(참고로 교통비는 도저히 비트코인을 해결할 방법이 없어 미리 사둔 지하철 승차권인 '스이까'를 이용해서 이동했다). 숙소(도쿄 신주쿠) 근처 비트코인으로 결제 가능한 상점을 골라 동선을 짰다.

1차 목적지는 일본 양판점 체인 야마다전기 계열의 라비(LABI)다. 20일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비트코인 결제가 가능하다는 안내문을 봤다. 숙소 근처 마땅한 식당을 찾지 못해 라비에서 컵라면 등을 사서 아침을 해결할 생각이었다. 계산대 근처 곳곳에 붙은 비트코인 마크가 마음을 묘하게 안심시켰다.

비트코인 결제를 요청하자 계산대의 인상 좋은 점원이 “비트코인 결제는 처음”이라며 “그렇지만 안내문을 따라 하면 잘 되겠지?”라고 반문한다. 그는 결제시스템이 탑재된 태블릿PC를 누르면서 “나도 비트코인이 있다”며 “연말에 비트코인 가격이 많이 올라 좋았는데 지금은 별로”라고 말한다. 돈 많이 벌었겠다고 했더니 “아주 쌀 때 산 게 아니라 지금은 그냥 비슷하다”고 답했다.

일본 양판점 체인 야마전전기 계열의 라비에서 점원이 비트코인 결제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비트플라이어 지갑이 있어야만 비트코인 결제가 가능하다. 왼쪽 안내문 하단의 작은 글씨로 ‘결제 지갑은 비트플라이어 지갑을 이용해 주십시오’라고 쓰여있다. 고란 기자

일본 양판점 체인 야마전전기 계열의 라비에서 점원이 비트코인 결제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비트플라이어 지갑이 있어야만 비트코인 결제가 가능하다. 왼쪽 안내문 하단의 작은 글씨로 ‘결제 지갑은 비트플라이어 지갑을 이용해 주십시오’라고 쓰여있다. 고란 기자

“다 됐다”고 태블릿PC를 내밀며 “비트플라이어(일본 최대 거래소) 지갑을 보여줘”란다. 비트플라이어 지갑은 없고 대신 개인 지갑이 있으니 QR 코드를 찍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물어봤다. 그러나 그 점원은 “비트플라이어 지갑이 있어야만 비트코인 결제가 가능하다”고 한다.

다시 확인하니 비트코인 사인이 들어간 안내문에 작은 글씨로 ‘결제 지갑은 비트플라이어 지갑을 이용해 주십시오’라고 써 있다. 비트플라이어 지갑을 설치할 생각을 안 한 건 아니다. 시도했지만 이 지갑 앱은 국내(한국) 계정 사용자는 다운받을 수 없단다.

실패하고 찾아간 곳은 또 다른 양판점 체인인 비쿠카메라(Bic camera). 비트코인 마크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안내문을 뜯어봐도 비트플라이어 지갑만 사용해야 한다는 문구는 없었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기는 했다. 비트플라이어 이외의 지갑을 사용하는 경우 송금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유효시간 내에 입금확인이 안 되면 무효가 된다.

비트플라이어는 상점과 소비자 중간에서 결제를 도와준다. 블록체인 상에서 채굴자들의 거래 승인이 나기까지 시간이 걸리 때문에, 비트플라이어가 중간에서 일단 결제를 승인해 주는 방식으로 거래 속도를 높였다.
[참고: 암호화폐 실명확인 日서 체험…일주일 걸려 코인 샀는데](http:www.joongang.co.kr/article/22322587)

식료품 코너가 라비보다 작아 커피와 초콜릿 등을 사고, 일본에서 가성비 ‘갑’이라는 소화제와 세안제를 샀다. 비트코인 결제를 알리는 안내문에 ‘비트코인 결제는 현금과 똑같은 혜택’이라는 문구를 보고 비트코인으로 결제하려고 하는데 뭔가 혜택이 없냐고 물었다.

여권을 보여주면 소비세 8% 할인을 해 준단다. 비트플라이어 지갑이 없는데도 결제 가능하냐고 했더니 뭐라 뭐라 일본어로 길게 말한다. ‘서바이벌’ 수준의 일본어 실력으로 알아들은 바, 비트플라이어 지갑을 사용하지 않으면 비트코인 수수료가 더 많이 나올 수 있단다.

일본 도쿄 신주쿠역 근처 양판점 체인 비쿠카메라 매장 입구에 설치된 비트코인 결제가 가능하다는 걸 알리는 입간판(왼쪽). 면세품 5600엔을 결제를 위해 ‘0.00468BTC’ 송금을 요청하는 QR코드(가운데). 384엔에 해당하는 0.00033BTC 결제 승인이 완료됐음을 알려주는 화면(오른쪽). 고란 기자

일본 도쿄 신주쿠역 근처 양판점 체인 비쿠카메라 매장 입구에 설치된 비트코인 결제가 가능하다는 걸 알리는 입간판(왼쪽). 면세품 5600엔을 결제를 위해 ‘0.00468BTC’ 송금을 요청하는 QR코드(가운데). 384엔에 해당하는 0.00033BTC 결제 승인이 완료됐음을 알려주는 화면(오른쪽). 고란 기자

상관없다고 하자 일단 면세품부터 처리한다며 비트코인 결제시스템이 탑재된 스마트폰을 조작했다. 화면에 QR코드와 함께 5600엔(약 5만7000원)에 상당하는 비트코인 ‘0.00468’가 떴다. 마이셀리움 지갑을 열고 화면을 찍은 뒤 ‘전송’ 버튼을 눌렀다. 마음을 졸이기도 전에, 순식간에 결제가 됐다. 자신감이 붙었다. 이어 커피ㆍ초콜릿 384엔(약 4000원)에 해당하는 돈도 0.00033 결제했다.

종업원에게 비트코인으로 결제하는 사람이 하루 평균 얼마나 되느냐 물었더니 없을 때는 없고, 있을 때는 하루 5~6명까지 된단다. 그는 “올해 들어 비트코인으로 결제하는 사람이 많아지기는 했다”고 말했다.

지하철 벤치에 앉아 비트코인으로 산 커피를 마시며 비트코인 지갑을 열어 거래를 복기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면세품을 먼저 샀는데 지갑의 거래 순서가 커피 등 소액결제가 먼저 된 거로 표시돼 있다. 또 아까 분명히 0.00033라고 했는데, 0.001234 송금된 걸로 찍혀 있다. 수수료가 무려 0.000904 됐다. 4000원도 안 되는 걸 사 먹다 수수료로 1만원을 날렸다.

면세품 0.00468BTC 결제에 수수료 포함 0.00468733BTC가 송금됐음을 알리는 거래 내역(첫 번째). 그런데 나중에 요청한 커피 등 0.00033BTC 결제가 수수료 포함 0.001234BTC가 송금되면서 먼저 처리된 걸로 나와있다(두 번째). 아래 거래는 4000원 결제하는데 수수료로만 1만원이 나갔다. [휴대전화 화면 캡쳐]

면세품 0.00468BTC 결제에 수수료 포함 0.00468733BTC가 송금됐음을 알리는 거래 내역(첫 번째). 그런데 나중에 요청한 커피 등 0.00033BTC 결제가 수수료 포함 0.001234BTC가 송금되면서 먼저 처리된 걸로 나와있다(두 번째). 아래 거래는 4000원 결제하는데 수수료로만 1만원이 나갔다. [휴대전화 화면 캡쳐]

면세품은 다행히(?) 0.00469733 송금됐다. 수수료가 0.00001733, 약 208원에 불과하다. 이 정도면 카드를 쓰거나 환전을 하느니 비트코인을 쓰는 게 훨씬 수수료가 덜 든다. 보통 신용카드를 해외에서 쓰면 해외 브랜드 사용료(비자ㆍ마스터 등)를 포함해 수수료로만 1% 넘게 내야 한다.

나중에 거래를 요청한 소액 거래가 왜 1만원을 웃도는 수수료를 지불하고 먼저 체결됐는지 모르겠다. 비트코인 지갑에서 송금할 때, 거래 속도를 경제적(economic)ㆍ보통(normal)ㆍ우선(priority) 등 3단계가 가운데 하나로 지정할 수 있다.

보통으로 설정해 놨는데 결제 때 버튼을 잘못 눌러 우선으로 설정된 게 아닌가 싶다. 한 암호화폐 전문가는 “보통 멤풀(Mempool, 전송 처리를 기다리는 전송 내역이 저장되는 공간)에 거래가 몰리면 일시적으로 수수료가 급등하는 일이 벌어진다”며 “두 개의 거래를 일으킨 사이 공교롭게도 멤풀에서 수수료가 차등 적용된 모양”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그렇지, 왜 4000원 결제에 수수료 1만원을 내는 일이 벌어졌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어쩌다 ‘강제 다이어트’

점심을 먹기 위해 긴자의 초밥 가게로 이동했다. 비트코인 마크가 멀리서도 눈에 띈다. 뭔가 불안하다. 비트코인 마크 아래 작은 글씨로 ‘코인체크’라고 쓰여 있다. 카운터 직원에게 비트코인으로 결제할 수 있냐 물었더니 안 된단다.

그는 “지난달(1월)까지 비트코인 결제가 가능했지만 해킹 사태 이후로 비트코인을 안 받는다”고 말했다. 코인체크 해킹 사태 여파를 이렇게 체감할 줄이야.

검색도 서툴고 통신료 걱정에 인터넷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비트코인 결제가 가능한 다른 주변 식당을 찾기가 어려웠다.

결국, 최후의 순간까지 안 쓰려던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비트코인 자동화기기(ATM). ATM에서 비트코인을 엔화로 바꿔 쓰면 비트코인으로 하루 살기의 취지에 살짝 어긋난다. 그렇지만 2시를 훌쩍 넘은 시간까지 한 끼를 제대로 못 먹은 걸 변명 삼았다.

ATM을 찾아 롯폰기로 이동했다. 찾아간 곳은 카페였다. 카페 입구 ‘EXCHANGE(교환)’이라는 글자 아래 비트코인과 카르다노(ADA)가 표시돼 있다. 안에 들어가니 ATM이 진짜 있다! 그런데 꺼진 화면에 종이 안내문만 붙어 있다.

‘수리를 위해 ATM 작동을 잠시 멈춥니다’라고. 카운터 종업원에게 ATM이 언제 고장났느냐고 물었더니 “잘 기억 안 나는데 꽤 된 것 같다”고 한다. 비트코인 ATM도 있으니 비트코인도 받겠지 싶어 물었더니 안 받는단다.

비트코인 ATM이 설치됐다는 카페를 찾아갔다(왼쪽). 입구에 비트코인 ATM이 설치됐다는 걸 알리는 표식이 붙어있다(가운데). 카페 안에 설치된 ATM은 현재 고장 수리 중이다(오른쪽). 고란 기자

비트코인 ATM이 설치됐다는 카페를 찾아갔다(왼쪽). 입구에 비트코인 ATM이 설치됐다는 걸 알리는 표식이 붙어있다(가운데). 카페 안에 설치된 ATM은 현재 고장 수리 중이다(오른쪽). 고란 기자

비트코인으로 하루 살다 ‘강제 다이어트’ 할 판이다. ATM 고장에 좌절한 나머지, 비트코인으로 하루 살기는 포기했다. 극한 체험한다고 현금도 안 챙겼다. 일본에서는 신용카드를 안 받는 가게도 많단다. 신용카드를 반드시 받을 것 같은 유명 햄버거 프랜차이즈 집에서 그날의 첫 끼를 해결했다.

비트코인은 화폐인가. 교환의 매개로 기능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비트코인 결제가 가능한 상점을 골라 다녀야 했고, 그나마 안 되는 곳이 태반이었다.

화폐가 될 수 있을까. 5만7000원짜리 물건을 사고 수수료로 208원 냈다. 비트코인은 국경이 없는 화폐다. 국내라면 모를까 해외라면 현금이나 신용카드보다 비트코인 결제가 훨씬 유리하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비자(VISA)가 지금의 전 세계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기까지는 1958년 설립 이래 60여년 걸렸다. 비트코인이 태어난 지 10년도 안 됐다. 아직까지 실패했다 단정하긴 어렵다.

일본 3대 거래소인 비트포인트의 오다 겐키(小田玄紀) 대표는 “(암호화폐가 결제 수단으로서의 화폐가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며 “그러나 그것이 비트코인일지 다른 암호화폐일지, 혹은 아직 세상에 등장하지 않은 암호화폐일 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도쿄=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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