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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쟁이'로 시작해 '취업난 대안' 된 대만 대체복무제…천신만 전 대법관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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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천신민

천신민

시력이 나빠 군에서 총 쏘는 훈련을 받지 못했다. ‘못 하는 것보다 잘 하는 걸 활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방문교수로 영국에 머물며 유럽의 대체복무제를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1년간의 연구 끝에 보고서를 냈지만 ‘가장 공평한 두 가지는 대학입시와 병역제도’라 생각하는 대만 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수년 동안 국회의원들을 설득했다. 결국 의원들이 국방부를 납득시켰다.

천신민 전 대만 대법관 방한

2000년 대만에 대체복무제를 도입한 산파 천신민(陳新民·사진) 전 대법관의 이야기다. 한국헌법학회(회장 고문현) 초청으로 방한해 서울변호사회 주최 강연을 한 천 전 대법관을 9일 만났다.

천 전 대법관은 “대체복무역은 희망의 병역제”라고 말한다. “병역에 용기가 필요하듯 사회복무엔 국가를 향한 사랑이 따른다. 둘 다 같은 국가 공헌”이라는 말이다. 도입 19년차를 맞은 대만의 대체복무제는 경찰·소방·환경보호·의료·교육·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없어서는 안 될 제도다. 초기에는 대체복무자들을 ‘겁쟁이’나 ‘2등 병역자’로 보는 시선도 있었지만 군대처럼 엄격한 규율을 만들고 제복, 훈장 등을 통해 소속감과 명예심을 높이도록 했다.

천 전 대법관은 “요즘 취업난이 심각하다 보니 의무복무기간이 지난 후 연장해서 대체복무를 수행하는 청년도 있다. 연장을 하면 진급이 돼 대졸 초봉과 비슷한 연봉을 받게 된다. 사용하는 입장에서도 숙련도 높은 사람을 계속 쓸 수 있으니 환영이다.”

그는 저출산, 북한의 위협 등 특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국 역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기에 충분하다고 말한다. “한국 저출산 문제도 심각하지만, 대만 저출산 문제는 세계 1위다. 현대전은 더 이상 전투 병력의 수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의료 등 뒤에서 지원하는 인력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체복무제가 더 필요하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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