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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보톡스 원료의 ‘지문’ 등록이 오용 막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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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 개선에 사용되는 ‘보톡스’는 사실 용도가 많은 의료용 재료다. 원래 사시(斜視)와 눈꺼풀 경련 치료에 먼저 쓰였다. 파킨슨병이나 근육 경직, 다한증의 증상 완화에도 사용된다. 두피 피하층에 주사해 심한 편두통을 치료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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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임새는 다양해도 원리는 비슷하다. 보톡스 치료는 주성분인 ‘보툴리눔 독소(botulinum toxin)’의 성질을 이용한다. 사실 ‘보톡스’라는 이름도 보툴리눔 독소를 원료로 만든 제제의 상품명이다. 신경 말단에서 근육 수축을 일으키는 신경 전달 물질 분비를 억제한다. 즉 근육을 마비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그만큼 양면성이 강하다. 잘 활용하면 약이지만 잘못 쓰면 강력하고 치명적인 독이 된다. 성인 한 명을 기준으로 치사량이 12~18ng(1ng=10억분의 1g)에 불과하다. 그래서 보툴리눔 독소 130~150g만 있으면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실제 1995년 3월 일본에서 발생한 옴진리교 지하철 독가스 테러 사건에 사린 가스와 함께 사용된 바 있다. 미국 질병관리본부(CDC)는 위험성과 무기화 가능성을 고려해 탄저균과 같이 A등급에 해당하는 생물 테러 무기로 분류하고 있다.

 따라서 보툴리눔 독소 취급에 대한 철저한 관리체계는 필수다. 하지만 현재로선 미비하다. 국내에 보툴리눔 독소를 취급하고 있거나 취급 예정인 업체만 10여 개에 달한다. 우리나라를 제외하곤 미국·독일·프랑스·중국에 한 개씩만 존재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업체가 보유한 보툴리눔 독소의 출처와 입수 경로 등을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다. 그래서 전문가들 사이에선 하루빨리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다행히 이런 고민과 노력은 지속되고 있다. 최근엔 보툴리눔 독소 균주 등 고위험 병원체를 분리·이동 신고 시 염기서열 분석 결과 제출을 의무화하는 법안(인재근 민주당 의원 대표 발의)이 추진 중이다. 염기서열 분석을 보툴리눔 독소 관리체계에 접목하는 것은 세계 최초의 시도다.

 염기서열 분석은 당초 유전자 정보를 이용한 개인 맞춤 의료 도구로 주목받았다. 이를테면 암 환자의 돌연변이 특성을 파악해 이 특성에 효과가 있는 항암제를 개발·투여하는 식이다. 근데 이 기술을 고위험 병원체 관리에 활용하는 것이다. 보툴리눔 독소 균주의 지문에 해당하는 유전 정보를 등록·공개함으로써 출처와 유통 경로를 투명화하는 것이 법안의 골자다. 이렇게 되면 누군가 불법적인 방법으로 보툴리눔 독소를 입수할 경우 어느 기업이나 연구소에서 유래한 것인지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지문이나 주민등록번호, 총기 번호를 등록·관리하는 것이 범죄 예방에 기여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당연히 악의적 목적의 활용을 예방하고 보툴리눔 독소 취급 업체 수준을 끌어올리는 발판이 된다. 제도는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더구나 당위성과 현실화할 수 있는 수단이 확보돼 있다면 주저할 필요가 없다.

류장훈 기자 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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