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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74호 30면

아무리 뛰어난 연기자라 해도 자신의 존재감을 일순간에 드러내는 자,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갑자기 스타가 되는 경우란 없다는 얘기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세상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영국 출신의 샐리 호킨스(Sally Hawkins·42)도 그렇다. 예컨대 일본 원작을 할리우드가 리메이크한 ‘고질라’(2014)에서 샐리 호킨스의 천재성을 발견했다면 오히려 그 사람이 더 대단하다는 얘기를 들었을 것이다. 우디 앨런의 후기 걸작 ‘블루 재스민’(2013)도 마찬가지다. 케이트 블란쳇 뒤에 가려졌지만, 영화에서는 그의 평범한 여동생 역할을 맡았던 호킨스의 연기가 큰 축을 차지한다. 샐리 호킨스는 그렇게, 오랫동안 영화 감독들의 숨겨진 보석이었던 셈이다.

올해 아카데미 4관왕 수상작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과 샐리 호킨스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배우: 샐리 호킨스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일찌감치 호킨스의 비범함을 눈치챈 사람은 영국 감독 마이크 리다. 영화 매니어들 사이에서 은근히 회자했던 영화 ‘해피 고 럭키’(2008)에서 호킨스는 엄청나게 떠들고 꽤나 많이 웃는다. 영화 속에서 그가 지니고 있는, 가난하지만 ‘해피’해서 ‘럭키’한 전염병은 사람들을 진실로 행복하게 만든다. 국내에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의 동명 원작을 3부작으로 만든 BBC 드라마 ‘핑거 스미스’(2005)에서 호킨스는 김태리가 했던 ‘수’ 역을 해낸다. 호킨스는 여기서 김태리와 완전히 다른 모습을 선보인다. 호킨스 때문에 영국 드라마 ‘핑거 스미스’가 한국 영화 ‘아가씨’와 그 질감 면에서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갈리게 된다.

샐리 호킨스 연기의 특징은 한 마디로 ‘핸디캡’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는 뭔가 우리와는 다른 존재를 연기한다. 그런데 참으로 놀랍게도 그 ‘다르다’는 것이 결코 이상하거나 혐오스럽지 않다. 오히려 매우 사랑스럽다는 데에서 호킨스 연기의 진가가 발견된다. 그가 배우라는 존재감을 확연히 드러낸 영화 ‘내 사랑’(2017)이야말로 호킨스의 ‘다른’ 연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여기서 그는 캐나다의 화가 모드 루이스의 삶을 완벽하게 재생해 낸다. 모드는 안면 근육(턱) 장애를 안고 태어난데다 학대받는 삶을 피해 살던 집을 나와 막노동꾼 루저로 생활하는 가난한 남자의 가정부로 자진해서 들어간다. 예전이든 새로운 인생이든 모드의 간난(艱難)한 삶은 어쩌면 듣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날 법하다. 기피하고 싶게끔 만든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있으면 거꾸로 점점 마음이 따뜻해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호킨스의 연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삶에 있어 궁극의 행복이 어디에 있는가를 스스로 깨닫게 한다. 루이스의 칙칙했던 인생은 호킨스의 연기로 밝게 채색되고 윤색된다. 그런데 그게 더 루이스의 삶 전체를 올바르게 조망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올해 아카데미 주요 부문을 휩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역작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에서 호킨스는 여지없이 핸드캡 있는 여인 역을 맡는다. 듣기만 할 뿐 말을 못하는 청소부 여자 엘리사는 항공우주센터가 포획한 바다 속 괴생물체와 사랑에 빠진다. 이 생물체는 반인반어(伴人半漁)로 얼굴이 물고기처럼 생기고 아가미가 달렸지만 늠름하기가 이를 데 없다. 엘리스는 이 비(非)인간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엘리사가 그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받아 들이게 된 데에는 둘 다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 받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정치사회적 주제 때문이 아니라 지고지순한 러브스토리로 사람들의 마음을 훔친다. 아무리 뜯어 봐도 이 둘은 흔히들 얘기하는 선남선녀가 아니다. 그렇게 생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이 물속에서 껴안고 키스하는 장면은 많은 사람들을 진정으로 부럽게 만든다. 사랑과 포옹, 키스는 저런 감도로 해야 하는 것이다.

샐리 호킨스는 사랑스런 여인이다. 사랑스럽다는 것은 늘 그렇지만, 대상을 어떤 시선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호킨스는 바로 그 점을 깨우쳐 주는 배우다.

글 오동진 영화평론가
사진 올댓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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