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여기까지 온 건 모든 게 트럼프 대통령 덕분, 감사” … 급반전 이끈 ‘말의 정치’

중앙선데이

입력 2018.03.11 01:00

업데이트 2018.03.11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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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4호 04면

남북 특사부터 정상회담 성사까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가운데)이 지난 8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난 후 백악관 웨스트윙 앞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5월까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만날 것“이라고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가운데)이 지난 8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난 후 백악관 웨스트윙 앞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5월까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만날 것“이라고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대북 특사단이 평양행 특별기에 탑승한 시각은 지난 5일 오후 1시50분. 다음 날 귀국했다가 다시 미국 워싱턴DC로 향한 정 실장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면담 결과를 브리핑한 시각은 지난 9일 오전 9시(현지시간 8일 오후 7시).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4월 남북 정상회담과 5월 북·미 정상회담이 잇따라 성사되는 데 채 나흘이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전격적이면서도 파격적이었다. 주초만 해도 낙관론보다는 비관론과 신중론이 우세했던 분위기를 감안할 때 상전벽해와 다름없는 급반전이었다.

정의용 통해 “큰 힘 됐다” 사의
트럼프 “좋은 말씀 매우 감사” 화답
특사 방북 후 나흘 만에 전격 성사

대북 해상 봉쇄 적극 동참도 한몫
미 “이런 게 바로 동맹” 크게 반겨

 변화의 시작은 지난달 1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을 맞아 방한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당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청와대 오찬에서 오빠인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북한 국무위원장 명의로 보낸 친서를 전달했다. 문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청한다는 내용이었다. 김 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 제안에 문 대통령은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키자”고 답했다. ‘여건’이 붙으면서 외교가에서는 정상회담 성사까진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지난달 25일 올림픽 폐막식 참석차 방한한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김 위원장의 뜻을 재차 전하면서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정부는 즉시 대북 특사단 구성에 착수해 일주일여 만인 지난 5일 다섯 명의 특사단을 북한에 보냈다. 출발할 때만 해도 김 위원장 면담 시간은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특사단이 숙소인 고방산 초대소에 짐을 풀자마자 당일 저녁 곧바로 김 위원장과 면담하고 만찬도 있을 것이란 소식이 전해졌다.

 김 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정 실장은 A4 용지 한 장 분량의 문 대통령 친서를 전달했고, 친서를 모두 읽은 김 위원장은 엷은 미소를 띤 채 배석한 김여정 부부장에게 친서를 건넸다. 그러곤 4월 남북 정상회담 등 6개 항의 합의사항을 일사천리로 확정지으며 1시간 만에 면담을 끝낸 뒤 3시간 넘게 특사단과 만찬을 했다. 이례적으로 부인 이설주까지 동석한 자리였다.

 다음 날인 지난 6일 오후 6시 서울공항에 도착한 정 실장은 곧바로 문 대통령에게 방북 결과를 보고했다. 허버트 맥매스터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도 전화해 결과를 설명한 뒤 “미국에 전달할 북한의 입장을 별도로 갖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이틀 뒤인 지난 8일 이른 아침 정 실장은 특사단 일원이었던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시차로 인해 워싱턴DC에 도착한 것도 현지시각 8일 오전. 정 실장과 서 원장은 곧바로 백악관과 정부 고위 관리들을 만나 방북 결과를 설명했다. 그사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빨리 오라”는 연락이 왔다. 특사단의 예상보다 하루 빠른 면담이었다.

 현지시간 8일 오후 4시15분. 정 실장은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게 되자 김 위원장 얘기를 전하기에 앞서 ‘감사’라는 단어를 먼저 꺼냈다. “여기까지 오게 된 데는 트럼프 대통령이 큰 힘이 됐다. 그 점을 높이 평가한다. 문 대통령도 (전날) 한국 국가조찬기도회 때 목사님 5000여 명 앞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감사의 말씀을 하셨다.”

 그런 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김 위원장의 언급을 구두로 전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북·미 정상회담의 조속한 개최 제의가 포함된 내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좋다. 만나겠다”고 수락했다. 이어 자신에게 사의를 표한 데 대해 특별히 고마움을 표시한 뒤 배석자들을 둘러보며 “거 봐라. 얘기를 하는 게 잘하는 거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도 면담 직후 성명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특사단과 문 대통령의 좋은 말씀에 대단히 감사해 한다”고 밝혔다.

 특사단의 보고를 받은 문 대통령도 곧바로 입장을 발표했다. “한반도 평화를 일궈낸 역사적인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란 찬사로 시작해 “흔쾌히 수락해 준 트럼프 대통령의 지도력은 남북한 주민, 더 나아가 평화를 바라는 전 세계인의 칭송을 받을 것”이라며 공(功)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돌리는 내용이었다. 황금빛 봉황 문양 아래 이 같은 내용을 깔끔한 명조체로 적은 공식 문서도 인터넷에 띄웠다.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말’들이었다.

 노력은 말에만 그치지 않았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제재와 압박에도 적극 동참하는 ‘행동’을 보였다. 지난해 말 여수항을 출항한 홍콩 선박이 공해상에서 북한 선박에 정유제품을 옮기는 현장을 적발한 뒤 이 배를 억류한 게 대표적이다. 이와 관련, 서울의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 정부가 대북 해상 압박에 특히 애를 먹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우리 정부가 세 건의 해상 봉쇄 실적을 잇따라 거두자 ‘이런 게 바로 동맹’이라며 크게 반기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말에 행동이 더해지면서 연쇄 정상회담이란 극적 돌파구가 마련된 셈이다.

박신홍 기자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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