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투 운동’ 그럼에도 계속돼야 한다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574호 02면

사설

미투 운동의 파고가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 미투 폭로 한 달여 남짓 만에 검찰·문화예술계를 거쳐 유력 차기 대선주자였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까지 성폭력 피해자의 폭로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배우 조민기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사망자까지 나온 후 미투 운동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은 점점 복잡해지고, 갈등의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일각에선 “이번 미투 운동으로 우리 사회가 진정한 남녀평등 사회가 될 것”이라는 찬사가, 또 다른 일각에선 “권력형 폭력을 남녀 문제로 몰고 가 남성을 적대시하는 문화를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한편으론 “왜 당할 땐 참다가 이제야 말하느냐”며 저의를 의심하는 눈초리가 번득이고, 관음증적 뒷담화와 피해자 비난(blame of victim)으로 2차 피해를 키우는 등 성폭력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구태도 여전히 맹렬하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미투 운동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또 이를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미투는 급변하는 남·북·미 관계와 같은 초대형 이슈나 다른 주요 쟁점들도 무력화시킬 정도로 우리 사회의 초강력 현재진행형 이슈다. 이는 그만큼 권력형 성폭력 문제가 곪디 곪은 병폐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많은 부작용이 우려되는 가운데서도 미투 운동이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권력형 성폭력을 뿌리 뽑고, 여성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먼저 성폭력을 바라보는 고정관념부터 반성해야 한다. 많은 이가 폭로 시점을 두고 미투 폭로 여성들의 저의를 의심하는 분위기를 조성하지만 이야말로 우리가 통렬하게 반성해야 하는 대목이다. 여성들의 성폭력에 대한 폭로·고발·호소는 지난 십수 년 동안 끊이지 않았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2003년부터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대회’를 열었으며, 피해자들이 직접 대중 앞에서 피해 사실을 고발했다. 2000년 진보 진영 여성들은 ‘운동사회 성폭력 뽑기 100인 위원회’를 꾸려 진보 운동권 인사들 중 성폭력 가해자 10여 명을 실명으로 공개했다.

 그러나 이들은 실명이 공개된 가해자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고, 검찰은 가해자가 아니라 여성들을 기소했다. 이처럼 여성들은 그동안 침묵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 사회가 할리우드발 ‘미투 운동’ 이전엔 모른 척했을 뿐이다.

 일각의 음모론과 미투 운동을 여야 간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 가며 ‘섹스정치’의 도구로 활용하려는 정치권의 시도도 견제해야 한다. 미투 운동이 추악한 몇몇 남성 권력자들을 벌주고 끝나선 안 되기 때문이다. 이제 미투 운동은 유명인뿐 아니라 갑남을녀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권력형 성폭력을 뿌리 뽑는 단계로 나가야 한다. 위력에 의한 성폭력은 비정규직·파견직 근로자, 장애 여성, 이주 여성 등에 이르면 더욱 참혹하다.

 우리 사회는 여성들의 사회 진출은 늘었으나 여성에 대한 인식과 사회적 지위는 여전히 낮다. 뿌리 깊은 가부장적 문화 때문이다. 가부장적 의식은 성폭력 관련 법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우리나라는 ‘여성폭력 4종 세트’라는 가정폭력, 성폭력, 데이트폭력, 스토킹 중 가정폭력과 성폭력에 대해서만 법으로 규제한다. 기준도 낮다. 강간죄의 경우 유엔의 기준은 ‘피해자의 동의’ 여부이지만 우리나라 법은 ‘저항이 현저하게 어려울 정도의 폭행·협박’이 기준이다. 8일 발표된 성범죄 대책도 처벌만 강화됐을 뿐 저변의식은 똑같다. 미투 운동은 여성의 생존권과 인권을 위협하는 열악한 사회적 지위에 대한 인식을 획기적으로 전환하는 데에 초점을 맞춰 계속돼야 한다. 이를 위해 자극적 스캔들로의 관점 이동이나, 음모론으로 미투 운동의 발목을 잡으려는 어떠한 시도도 경계해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