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은 미국에 … 김정은, 핵 자신감 바탕 체제 보장 흥정

중앙선데이

입력 2018.03.11 00:02

업데이트 2018.03.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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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4호 04면

5월 북·미 정상 ‘핵 담판’ 잘될까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지난 5일 평양을 방문한 정의용 대북수석특사에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되도록 빨리 만나고 싶다“고 밝혔다. [AP=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지난 5일 평양을 방문한 정의용 대북수석특사에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되도록 빨리 만나고 싶다“고 밝혔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상대로 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핵 게임’이 시작됐다.

대북제재, 미 군사옵션에 위기감
비핵화로 미 적대정책 폐기 노려
실무 협의 거쳐‘원 샷’합의 볼 수도
불가역적 핵 폐기 나설지 의문 여전

 북·미가 대화의 문턱 앞에 선 건 생각할수록 극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취임 이후 400여 일이 넘도록 북핵 문제를 제재로 해결하겠다고 밀어붙였다. 그런 트럼프 대통령을 움직인 건 특사들이 가방에 담아 간 김정은의 친서 속 북·미 정상회담 제안과 비핵화 발언이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미국의 군사옵션에 압박을 느낀 김정은이나,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절박함이 맞아떨어진 결과이기도 하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문제는 다음 수순이다. 핵 개발에 진력했던 김정은의 전략적 변화는 트럼프 대통령을 회담장으로 초대하는 데까지는 성공한 모양새다. 이제는 각론의 전개가 남아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말처럼 협상 테이블에 앉기까지는 순탄치 않은 변수들이 숨어 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 최고 정책결정권자들의 담판이라는 링에 선수들이 실제 오를지도 아직은 확증이 없다. 링에 오른 뒤에도 치열한 난타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당장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9일(현지시간) “대통령은 북한에 의한 구체적 조치와 행동을 보지 않고는 만남을 갖지 않을 것”이라고 견제구를 던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의용 실장을 만난 자리에서 결단을 내린 지 하루도 안 돼 북한의 선(先)조치를 압박한 셈이다.

 비핵화나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북한 언론들은 10일 오후까지도 언급이 없었다. 재일조선인총연맹(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분단의 주범인 미국이 일삼아 온 북침전쟁 소동에 영원한 종지부를 찍는 평화 담판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고 했을 뿐이다. 미국이 무슨 말을 하건 자신들의 스케줄대로 가겠다는 뜻일 수 있다.

 핵심은 과연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수 있을까다. 서훈 국가정보원장은 미국행 비행기 안에서 조선일보 기자에게 “그게(완전한 비핵화) 아니라면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다. 김정은 위원장이 처음으로 직접 비핵화를 약속한 것에 의미를 둬야 한다. 상대가 한 말 중에서 의미 있는 것을 끄집어내 실천할 수 있게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정은에게서 비핵화의 진정성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과거 “핵무력은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고 했던 김정은의 전략이 일단 바뀌었다는 얘기가 된다. 핵 협상을 통해 체제 보장을 약속받은 뒤, 대북제재 해제 등을 통해 경제 정상화로 도약하겠다는 전략적 변화를 택했다는 의미다.

 이런 변화의 바탕엔 핵에 대한 자신감이 깔려 있을 수 있다. 지난해 12월 초 김정은은 “핵무력을 완성했다”고 선언했다. 정창현 현대사연구소장은 “김정은이 집권 후 네 차례 핵실험을 하고, 미국 본토에 닿을 수 있는 미사일 발사에 성공한 뒤 언제든지 핵을 다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며 “핵 동결 또는 미래의 핵과 관련해 조건이 맞으면 실제 북한이 비핵화에 나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정은으로선 미국의 적대시 정책 폐기를 위해 더 공세적으로 나올 가능성도 크다. 최근 여동생(김여정 당 제1부부장)과 헌법상 국가수반(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평창 겨울올림픽 특사로 보내거나, 지난달 10일 실행 직전 취소된 북·미 접촉에 대한 미국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북·미 정상회담을 제안한 게 한 예다.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희생할 수 있다, 또 수령(최고지도자)의 결정엔 오류가 없다는 게 북한이 지켜온 지도자 논리다. 그런 만큼 북·미 양측이 실무 협의를 거쳐 본 게임에 들어간다면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의 적대정책 폐기는 ‘원 샷’ 형태로 쉽게 합의할 수도 있다. 전현준 우석대 초빙교수는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완전히 폐기하고 체제의 안전을 확실하게 보장한다면, 김 위원장으로선 핵 폐기 수순에 들어갈 수도 있다”며 “북한이 ‘공’을 미국에 넘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낙관적 전망을 가로막는 비관적 변수들은 하나둘이 아니다.

 미국이 대화도 하기 전에 선(先)비핵화를 요구하거나, 북한이 대화 전 대북제재 해제 등의 선결 조건을 요구한다면 만남 자체가 성사되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남측 특사단에게 비핵화 뜻을 밝힌 김정은도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필요가 없다”고 해 체제 안전이 ‘조건’임을 분명히 했다. 또 하나의 변수는 미국이 요구하고 있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CVID)’가 가능할지다. 특히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종말을 맞은 건 핵이나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여기는 김정은이 감춰 놓은 핵을 모두 내놓을지도 미지수다.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북한 핵 문제가 한순간에 해결될 거였다면 30년 가까이 끌었겠느냐”며 “이제 시작일 뿐 흥분하지 말고 차분한 준비가 필요할 때”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의 요구에 얼마나 응할 수 있을지도 한반도 비핵화 협상의 운명을 좌우할 큰 변수다. 북한은 대북제재 해제, 상호 무역대표부·연락사무소 개설, 대사 관계 설정 등을 가시적인 대북 적대시 정책의 철회로 여기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원칙적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행동 대 행동’의 단계별 이행으로 들어가면 불신으로 점철됐던 양측의 과거 패턴 때문에 지난(至難)한 과정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정용수 기자, 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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