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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Behind & Beyond] 오륜마크 새겨진 ‘아이언맨’의 팔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윤성빈.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윤성빈.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018년 1월 1일,

중앙일보 1면에 등장한 이가 스켈레톤 국가대표 윤성빈 선수다.

처음 그의 사진취재 의뢰를 받았을 때 의아했다.

스켈레톤을 잘 모르는 터에다 이름조차 낯설었다.

새해 첫날 신문 1면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그렇기에 새해 메시지가 담긴 기획 사진을 게재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낯선 이름의 그가 1면의 인물로 정해진 게다. 그 이유가 자못 궁금했다.

2017년 12월 28일,

평창으로 그를 만나러 가며 취재기자에게 선정 이유부터 물었다.

“올해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이름이 ‘윤성빈’입니다.”

“주목해야 할 이유는 뭐죠?” “그동안 한국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 등 빙상 종목에서만 올림픽 메달을 땄습니다.

그는 불모지인 설상(雪上) 종목에서 금메달을 딸 유력한 인물입니다.”

“수많은 선수가 있는데 설상(雪上) 종목 금메달이 유력한 것만으로 그를 선정한 건가요?”

“그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 있습니다. 또래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는

것처럼 그도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그는 2012년 처음 썰매를 만났습니다. 당시 평범한 고등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입문 5년 만에 세계 최고의 선수 자리에 오른 겁니다.

2013년 70위였던 세계 랭킹이 현재 1위입니다. 피나는 노력의 결과이지만,

이는 만화에서나 있을 법한 스토리입니다.”

평창 알펜시아 트레이닝 센터에서 그를 만났다.

티셔츠에 트레이닝 바지 차림이었다.

아이언맨 헬멧과 유니폼 차림으로 사진촬영을 할 것이라는 취재기자의 언질과 달랐다.

그래서 그에게 물었다. “헬멧과 유니폼은 어디 있죠?”

“아직 시즌 중이라 해외에 두고 왔습니다. 잠깐 다니러 온 겁니다.

1월 1일에 또 출국해야 합니다.” 딱 한 시간 만남이 예정된 터였다.

그 시간 안에 인터뷰와 사진촬영은 물론 동영상촬영까지 마쳐야 했다.

그런데 유니폼 마저 없으니 난감한 상황이었다.

잠깐 짬을 내어 귀국한 터라니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급히 다른 선수의 유니폼과 헬멧을 빌려왔다.

남의 옷과 헬멧이니 아무래도 표정과 동작이 어색했다.

그렇다고 무한정 시간을 끌 처지도 아니었다. 그에게 한가지 주문을 했다.

“윤 선수의 꿈을 향한 도전이 메시지입니다. 그것에 걸맞은 눈빛을 보여 주시면 됩니다.”

헬멧을 벗으며 카메라를 응시하는 눈빛에 여지없이 그의 의지가 비쳤다.

윤성빈.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윤성빈.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촬영을 마치고 유니폼을 벗는데 팔 근육이 눈에 들어왔다.

단지 유니폼을 벗는 데도 근육이 불거져 보였다. 오랜 훈련의 결과였다.

팔목엔 오륜마크 문신이 도드라져 보였다.

2014년 소치 올림픽에 출전하고 돌아오자마자 새긴 것이라고 했다.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다진 그의 의지였다.

사진촬영 후 동영상촬영을 하며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차례상 차려놓고 많은 사람이 경기를 지켜볼 텐데

좋은 결과를 얻어 국민이 설날 아침 웃을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의 약속이었다. 2월 16일 설날, 마침내 그가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러면서 관중석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그 순간 평창에서 말했던 그의 약속이 다시금 떠올랐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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