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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우리들은 헛똑똑이, 그런데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지식의 착각

지식의 착각

지식의 착각
스티븐 슬로먼
필립 페른백 지음
문희경 옮김, 세종서적

당신은 양변기를 잘 알고 있는가. ‘레버를 내리면 물이 찼다가 한꺼번에 빠지면서 오물을 같이 내려보내는 장치’. 대개 이 정도 답을 떠올리며 웬만큼은 안다고 자부할 것이다. 그러나 작동 원리를 설명하라고 하면? 대기압, 중력, 유속과 압력의 관계 같은 물리적 법칙을 동원해 양변기의 기본 원리인 ‘사이펀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인지심리학에서 쓰이는 ‘설명 깊이의 착각’ 실험은 인간이 ‘헛똑똑이’라는 사실을 여지없이 입증한다. 연구팀은 피실험자들에게 지퍼·볼펜 같은 간단한 물건의 작동 방식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스스로 평가하게 했다. 평균 중간 정도의 점수가 나왔다. 하지만 작동 방식을 설명해보라고 요구하자 대부분은 쩔쩔맸다. 그런 뒤 다시 점수를 매기게 하자 그 값이 크게 낮아졌다. ‘지식의 착각’이 깨진 것이다.

인지과학계의 스승과 제자인 두 저자에 따르면,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무지하다”. 실은 별로 보잘것없는 자신의 지식·직관·이해 능력을 과신한다. 미국인 절반은 항생제가 박테리아뿐만 아니라 바이러스까지 죽인다고 잘못 알고 있다. 우주가 거대한 폭발(빅뱅)로 시작했다는 것을 아는 미국인은 38%에 그친다.

신기한 것은 이런 무지 속에서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그 열쇠는 ‘의도를 공유하는 집단’ 속에서 ‘인지 노동’을 분배하는 인간의 능력이다. 우주 탐사 프로젝트를 보자. 모든 사람이 그 거대하고 복잡한 과정 전부를 알 필요는 없다. 오히려 옆 사람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앞의 임무에만 신경 쓸 때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 “지성은 개인의 머릿속이 아니라 집단의 정신에 깃든다.” 이른바 집단 지성의 위대함이다.

결국 건강한 ‘지식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이 도덕주의 같아 어쩐지 싱겁다. 하지만 결론을 위해 사용된 다양하고 흥미로운 역사적·과학적 논거가 이런 싱거움까지 용서하게 만든다. 개인 지성에 대한 겸손한 반성이라는 책의 취지가 자칫 집단주의에 대한 찬가로 오독될까 걱정스럽긴 하다.

이현상 논설위원 lee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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