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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장수의 비결, 유전적 요인은 15% 그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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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늙지 않는 비밀

늙지 않는 비밀

늙지 않는 비밀
엘리자베스 블랙번·
엘리사 에펠 지음
이한음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UCSF 메디컬스쿨 교수 인터뷰 #노화 재촉하는 살코기·가공육 #스트레스는 매일 독약 먹는 꼴 #임산부 건강이 아이 앞날 좌우 #배려하는 사회일수록 오래 살아

무병장수·불로장생은 인류의 오랜 바람이다. 과학의 발전으로 오래 사는 정도가 아니라 영생까지 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텔로미어(telomere, 말단소립)의 길이와 장수의 관계를 다룬 『늙지 않는 비밀(원제 Telomere Effect)』이 최근 우리말로 번역됐다. 장수에 도움이 되는 것과 방해가 되는 것들에 대한 과학의 발견을 총정리한 책이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 책의 저자는 2009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엘리자베스 블랙번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SF) 명예교수(생화학)와 같은 대학 엘리사 에펠 교수(건강의학)다. UCSF 메디컬스쿨은 미국에서 톱3의 위상을 자랑한다. 저자들을 e메일로 인터뷰했다.

엘리자베스 블랙번(左), 엘리사 에펠(右)

엘리자베스 블랙번(左), 엘리사 에펠(右)

사람이 늙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나.
“우리의 몸은 한가지가 아니라 여러 측면에서 노화한다. 그 중 중요한 것은 분열을 거듭하는 우리 세포가, 세포로 이뤄진 조직을 재생하는 능력을 차츰 상실한다는 점이다. 그 원인은 텔로미어의 길이가 짧아지기 때문이다. 텔로미어는 세포의 아주 작은 부분으로 세포의 노화에 중대한 역할을 한다. 테로미어는 염색체의 양 끝을 보호하는 덮개(cap)다. 문제는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텔로미어가 짧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보다 쉽게 설명해달라.
"텔로미어가 지나치게 짧아지면 DNA가 쉽게 손상될 수 있으며 세포가 노화된다. 최악의 경우 세포는 분열을 멈춘다. 그렇게 되면 노화 세포(old cell)가 염증화학물(inflammatory chemicals)을 분비해 노화를 악화시킨다. 또 우리의 조직은 질병에 더 취약하게 된다. 텔로미어가 짧으면 면역체계가 약해진다.”
이 책에 대한 비판은 없나.
“자연식품과 운동이 텔로미어에 좋다는 대목을 포함해 책에 담긴 내용이 ‘상식에 불과하다’고, 책을 읽지도 않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학계의 텔로미어 연구는 방대한 양의 새로운 정보를 쏟아내고 있다. 예컨대 성격과 스트레스 대처방식, 주거환경, 음식·농산물·염색약에 포함된 특정 화학물질이 텔로미어를 짧게 만든다는 게 밝혀졌다.”
인간의 유전자에는 수명과 관련된 정보가 담겨있다. 염색체 양끝을 보호하는 덮개 구실을 하는 텔로미어가 마모되면 노화가 빨라진다. [사진 알에이치코리아]

인간의 유전자에는 수명과 관련된 정보가 담겨있다. 염색체 양끝을 보호하는 덮개 구실을 하는 텔로미어가 마모되면 노화가 빨라진다. [사진 알에이치코리아]

텔로미어를 관리하면 늙지 않을 수 있나.
“일부 사람들은 극단적(extreme) 장수가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에 ‘텔로미어 효과’에 대해 실망한다. 현재로서는 정상적인 노화를 막을 치료법은 없다. 텔로미어는 우리가 영생을 누릴 수는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세포의 수명에는 텔로미어와 같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타고난 유전자가 더 중요한 것은 아닌가.
“텔로미어의 길이는 우리의 일상 습관과 더 밀접하다. 유전적인 이유로 일찍 사망하는 사람들은 인구의 15% 정도다. 나머지 사람들은 매일 매일의 선택에서 더 큰 영향을 받는다.”
바람직한 라이프 스타일이 있다면.
“극단적인 식습관이나 운동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나친 칼로리 제한이나 운동은 텔로미어를 늘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짧게 만든다. 알약을 지나치게 많이 먹는 것도 역효과를 낳는다. 비타민이 텔로미어를 늘릴 수 있다는 증거는 별로 없다. 반면 채소와 과일을 많이 섭취하는 사람들은 텔로미어가 더 길다. 흡연자는 담배를 끊어야 한다. 스트레스는 매일 독약을 한 방울씩 마시는 것과 같다. 종교와 관련이 없더라도 명상은 스트레스 해소에 좋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피트니스 운동은 좋은 결과를 낳지만 정크푸드 섭취에 따른 악영향을 상쇄할 정도는 아니다. 붉은 살코기, 가공육, 탄산음료는 텔로미어의 축소를 가속화한다. 수면의 질도 텔로미어 길이와 연관 있다.”
건강 관리는 언제 시작해야 하나.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텔로미어에 영향을 미친다. 임산부의 영양·건강·스트레스에 문제가 생기면 태아의 텔로미어가 짧아진다. 어린이들은 스트레스에 매우 민감하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폭력, 비만, 수면부족에 노출된 어린이들은 텔로미어 단축이 빨라진다. 텔로미어 보호는 어릴 때부터 시작돼야 한다. 우리가 매일 하는 아주 작은 선택들이 모여 텔로미어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젊고 건강한 어른도 텔로미어가 짧으면 감기에 더 잘 걸린다. 텔로미어의 길이는 나이 들었을 때나 걱정할 일이 아닌 것이다.”
사회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보다 인정(人情)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문화가 바뀌고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변화는 사회적 스트레스를 줄이는 정책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서도 시작돼야 한다. 많은 사람이 담배를 끊고 있다. 단순히 담뱃값 인상이나 정책 변화 때문이 아니다. 우리의 믿음과 사회 규범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바로 시작할 수 있다.”

김환영 지식전문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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