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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1977년 주한미군 철수 논란의 뒤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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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지미 카터

지미 카터

지미 카터
지미 카터 지음
최광민 옮김, 지식의날개

지미 카터(94) 미국 39대 대통령(재임 1977~81년)이 2015년 펴낸 구순 기념 회고록이 번역돼 나왔다. 재임 시절의 일화를 바탕으로 당시 국제정세를 복기할 수 있다. 특히 당시 한미 관계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카터는 1977년 인권외교로 박정희 대통령과 갈등을 빚자 주한미군 감축을 추진했다. 카터는 이 책에서 “당시 한국은 여전히 독재자 박정희 장군이 통치하고 있었다”라는 표현을 사용해 앙금이 여전함을 짐작할 수 있다.

철수 과정과 관련한 카터의 회고는 그간 알려진 것과 결이 사뭇 다르다. 그동안 카터는 당시 존 싱럽 당시 유엔사령부 참모장이 “미군을 철수하면 전쟁이 날 것”이라는 성명을 내고 반발하자 그를 소환해 전역시키고 철수안을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고록에서 카터는 “소환된 싱럽 소장이 한국 관리들의 말을 인용했을 뿐이라며 성명을 부인하고 자신이 불복하거나 항명한 게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고 적었다. 그 뒤 국방부 정보부서가 북한의 군사력을 예전의 두 배로 평가한 보고서를 냈는데 보고서가 의회 지도자들과 공유됐기 때문에 이를 승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이 때문에 주한미군 철수계획은 철회하고 대신 핵무기만 철수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지지자들은 카터를 ‘최고의 전직 대통령’으로 칭송한다. 그는 93년 1차 북핵 위기 때는 평양을 방문하고 김일성 주석을 만나 중재 노력을 벌였다. 같은 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를 중재해 오슬로 평화협정을 끌어냈다. 보스니아전·코소보전·이라크전과 관련한 중재 노력도 벌였다. 카터재단을 세워 제3세계 선거감시 등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민간 활동을 벌여온 공로도 무시할 수 없다. 2002년 인권 운동과 국제분쟁 중재 노력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하지만 주로 미 보수파인 비판론자들은 카터를 ‘허약했던 현직 대통령’으로 기억한다. 임기 중 이란의 이슬람 혁명과 테헤란 미 대사관 인질사태, 소련의 아프간 침공 등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미국의 위상을 떨어뜨렸다는 이유에서다. 회고록은 이런 비판에 대한 변명 성격이 강해 보인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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