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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사단 방북 결과물 파격이지만 북 진정성엔 의문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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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문재인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다녀온 뒤 4월 말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 등을 골자로 한 결과물을 6일 발표했다. 본지는 7일 오후 중앙일보 본사에서 문성묵(63)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을 만나 방북 결과에 대한 평가와 향후 전망에 대해 들어보았다. 예비역 준장인 문 센터장은 약 50여 차례 남북 군사회담에 참여한 군내 대표적 대북 회담 전문가다. 국방부에서 ▶군사실무회담 운영단장 ▶남북군사실무회담 수석대표 ▶북한정책과장 ▶군비통제차장을 맡았다.

문성묵 전 국방부 군비통제차장 인터뷰 #"美, 긍정적 평가…CVID 가능해야 본격 대화 #김정은, 대북제재 고통…데드라인 불안감 #핵무기··미시일 완성단계 북미 협상 자신감 #협상 꼼수 통하지 않아…흔들리지 말아야"

제5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실무회담에서 회담 장소인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실무회담 대표인 남측 문성묵 대령(당시)과 북측 박림수 대좌가 회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공동취재단]

제5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실무회담에서 회담 장소인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실무회담 대표인 남측 문성묵 대령(당시)과 북측 박림수 대좌가 회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공동취재단]

특사단 방북 결과를 전반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는가.
"청와대 말처럼 실망할만한 결과는 아니다. 일단 외형적으로 보면 진전이 있지만, 과제와 문제점도 있다. 사실 발표 전에 이런 내용이 담길지 생각 못했고, 내용만 보면 전향적이고 파격적인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담 개최 시점도 빠르고 핫라인 설치도 새롭다. 무엇보다 조건부이지만, 김정은이 비핵화 입장을 표명했다. 이처럼 긍정적인 측면도 있는데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북한의 진정성이 담겨 있는지, 실제 가능한지 의문점도 있다. 북한 매체는(지금까지) 핵 보유가 정당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특사단 방북에 대해선 ‘만족한 합의를 봤다’고 했을 뿐 비핵화라는 말이 없다."
앞으로 북미 대화가 어떻게 진행될 것으로 보는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미국 언론은 이번 특사 방북 결과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금까지 미국에서는 탐색적 수준의 대화도 뭔가 조건이 마련돼야 시작할 수 있는 입장을 보였다. 정의용 특사는 미국에만 전달할 내용이 있다고도 했다. 그 내용을 알 수 없지만 대화가 실현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본격적인 협상으로 이어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미국은 탐색적 대화에서 북한 핵 프로그램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CVID)와 관련해 확고한 말이나 행동을 보여줘야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간다는 입장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과 봉인 등 절차가 이뤄져야 협상이 가능한데 북한이 받아들일까? 아직은 부정적인 요소가 많아 보인다."
남북 정상간 핫라인 설치 합의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정상회담 개최까지 만든다고 했으니 4월 말까지 이제 40~50일 남았다. 판문점에 깔려있는 광케이블을 연결하면 가능할 것 같다. 청와대 집무실과 노동당 집무실을 연결하고 공관과 공관도 연결해 언제라도 마음먹으면 연결하는 것이 핫라인이다. 장소와 일정이 결정됐으니 통신과 관련된 남북 간 합의서를 만들어야 가능하다.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논의할지, 별도의 당국자 회담에서 논의할지 결정해야 한다."
7일 오후 중앙일보 본사에서 문성묵 전 군비통제 차장이 남북대화 평가와 북핵 해결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박용한]

7일 오후 중앙일보 본사에서 문성묵 전 군비통제 차장이 남북대화 평가와 북핵 해결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박용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보인 배경이 궁금하다.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과 제재가 현실적으로 김정은에게 아픔이 되기 시작했다. 뭔가 돌파구를 열지 않으면 데드라인에 가까워진다는 불안감일 수 있다. 그리고 지난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성과를 보고 이 정도면 추가 실험 없어도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협상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김정은은 비핵화의 조건을 제시했는데.
"기존 입장을 표현만 바꿔 보여줬다. 한 꺼풀 벗겨보면 비핵화 의지가 없다. 비핵화가 선대의 유훈이라고 말했는데 여기 말하는 비핵화가 한반도 전체라면 미국도 핵 자산을 한국에 들여오지 말라는 논리다. 북한 매체가 (특사 방문과 관련해) 비핵화를 보도하지 않고 있는데, 김정은이 비핵화의 ‘비’자도 못 꺼내도록 한 바 있어 북한 스스로 발표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내부 동요라든지, 김정은 리더십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미 연합훈련을 이해한다"는 김정은 발언을 어떻게 보는가.
"이번 4월에 훈련을 하도록 해도 차기 훈련 또는 차차기 훈련의 중지를 요구할 수 있다. 1992년 남북 기본합의서가 발효하면서 북한 요구에 따라 훈련을 중단한 적이 있다. 북한은 93년에도 훈련 중지를 요구했지만 (한미는) 훈련을 진행했다. 보통 키리졸브 훈련은 두주 간, 독수리 훈련은 두달 동안 진행하는데 기간을 줄일 수는 있다. 한미가 같은 생각을 갖고 양해하면 조절할 수는 있다고 본다. 4월 말에 정상회담 예정돼 있는 만큼 3월 18일 평창 동계 패럴림픽이 끝나고 3월 말부터 훈련을 시작하면 정상회담 회담 전에 끝날 수도 있다. 우리가 (북한에) 성의를 보이려고 낮은 수준으로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훈련에 동원하는 전략 자산을 줄일 수도 있다."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에 어떻게 나올까.
"이번 회담 결과물에 2000년 6ㆍ15 남북 공동선언과 2007년 10ㆍ4 선언에서 합의했던 내용을 확실하게 이행한다는 점을 못박아 둘 수 있다. 남북 당국자 회담 정례화도 포함될 수 있다. 군사회담을 개최해 ‘평화수역’, ‘공동어로’ 등 을 통해 북방한계선(NLL) 무력화와 대북 심리전 중단을 꾀할 가능성도 있다. 이산가족 상봉도 논의할 수 있다. 핵문제와 관련한 실질적인 진전이 같이 나오면 좋겠지만, 이런 합의만 이뤄지면 정부로선 부담이 될 수도 있다."
7일 오후 중앙일보 본사에서 문성묵 전 군비통제 차장이 남북대화 평가와 북핵 해결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오영환]

7일 오후 중앙일보 본사에서 문성묵 전 군비통제 차장이 남북대화 평가와 북핵 해결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오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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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 제언할 일이 있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남북정상회담의 여건 조성을 강조했고 서두르지 않겠다고 한 점은 긍정적이다. 북한이 조급하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가 해결돼야 북미관계와 남북관계 개선, 통일도 가능하다. 그런데 북한에 숨통만 열어주면 어려워진다. 1990년대에 기회를 놓쳤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압박해서 완전한 핵 포기를 끌어내야 한다. 정부는 북한과 미국이 핵문제에 성과를 못 내면 '회담 왜 했냐'는 부담을 갖게 된다. 한미 간 사이가 벌어져 제재 전선에도 틈이 생기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정부가 나름대로 그 부분도 염두에 두고 있지만 파열음도 들린다. 미국은 이방카 방한 기간에 추가 대북 대북제재를 발표했다. 이번 특사단 방북 때는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에 대한 화학무기 사용을 문제삼아 제재를 강화했다. 북한을 변화시킨다는 목표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변하면 북한을 변화시킬 수 없다. 원칙에 입각해서 협상해야 한다. 이제 옛날의 꼼수는 통하지 않는다. 이번 방북 결과를 폄하 하는 건 아니다.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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