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논설위원이 간다

박한철 “신속한 탄핵심판, 국가와 헌법을 지키는 길이었다”

중앙일보

입력 2018.03.08 00:23

업데이트 2018.03.08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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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언의 사회탐구

10일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박 전 대통령은 1심 선고를 앞두고 있고, 그를 여전히 지지하는 이들은 거리로 나와 “석방하라”고 외친다. 갈등의 소용돌이는 아직 멈추지 않았다.

10일이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1년
박 전 소장 내내 ‘침묵 모드’ 지켜와

“대통령 직무정지로 통치 공백,
심리 진행에 속도를 내야만 했다”

전대미문의 탄핵 사태 되돌아 보며
갈등 증폭시킨 제도 문제도 살펴야

92일간 진행된 탄핵심판의 앞쪽 53일을 관장한 박한철(65) 전 헌법재판소장. 대통령·국무총리·대법원장에 이은 국가 의전서열 4위 자리에 있었던 그는 1년 넘게 언론 접촉을 꺼리며 철저히 세간의 이목을 피하고 있다. 그는 퇴임을 닷새 남겨놓은 지난해 1월 26일의 탄핵심판 심리 때 “이정미 재판관 퇴임일인 3월 13일 이전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한) 선고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혀 박 전 대통령 지지자 등으로부터 “대놓고 졸속 심판을 획책한다” “엉터리 재판에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했다”는 비난을 거세게 받았다. 협박과 폭언에 시달리기도 했다. 다시 맞은 봄날에 그를 만났다.

문전박대를 각오하고 문을 밀었다. 책상 앞에 앉아있던 그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바라봤다. 10년 전 대검 공안부장과 검찰청 담당 기자 관계로 맺은 약간의 인연에 의지해 원탁 의자에 살며시 앉았다. 회사 동료를 포함한 여러 기자들이 인터뷰 거절을 경험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전 연락 없이 서울대 법학도서관 5층에 있는 그의 연구실로 지난 5일 불쑥 찾아갔다. 박 전 소장은 지난해 가을에 서울대 초빙교수가 됐다. 이번 학기에는 ‘헌법재판소주요판례연구’라는 제목의 강의도 맡았다. 인사가 오간 뒤 그는 “인터뷰 같은 것은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다행히 쫓겨나지는 않았고 1시간가량 대화가 이어졌다. 그는 헌재소장 시절의 일에 대해 말할 때 매우 조심스러워 했다. 탄핵심판 관련 이야기에는 더욱 그랬다.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관련한 법률가로서의 신념과 소신을 드러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d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do.kr]

우선 왜 그토록 ‘침묵 모드’로 일관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지난해 퇴임 직후에는 집으로 찾아오는 기자들을 피하기 위해 두 달 이상 다른 곳에서 은거했다. 이런 답이 돌아왔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중대한 사태의 일부분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큰 틀에서 이와 관련된 역사는 완결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나서서 여러 말을 하는 것은 갈등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훗날 언젠가 자세한 얘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 싶다.”

그는 요즘에도 종종 위협을 받는다고 했다. “학교 행정실로 가끔 전화가 오는 것 같다. 이 연구실의 행정 전화로도 전화가 걸려오기도 하는데 항의성 전화만 있는 것은 아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어느 쪽이든 부담스럽다. 이정미 전 재판관이 이런 문제로 나보다 더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도 학교 연구실(이 전 재판관은 고려대 석좌교수가 됐다) 문에 협박성 글이 붙었다고 들었다.”

조심스레 탄핵심판 과정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이런 문답이 오갔다. 그는 ‘민주적 정당성’이라는 개념을 수차례 언급했다.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헌재가 과도하게 탄핵심판을 서두르고 있다고 반발했다. 헌재소장이 퇴임 전에 결정을 하려고 과욕을 부리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정말 퇴임 전에 끝내려 했나.
“신속히 진행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렇지만 내 임기 때문에 욕심을 낸 것은 아니다. 내가 헌재에 있는 동안에 결정이 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지극히 개인적으로는 최종 판단에 참여하지 않는 게 부담에서 벗어나는 일이기도 했다.”
대통령 탄핵심판이라는 중대한 일에 ‘신속성’을 강조한 게 과연 옳았느냐는 비판은 아직도 제기된다. 탄핵심판을 3개월 만에 끝내는 것이 정상적인 과정은 아니었다는 주장도 있다. ‘신속’은 정말 무엇 때문이었나.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돼 곧바로 대통령 직무정지가 이뤄졌다. 총리가 권한대행 역할을 맡았지만 우리나라 총리는 선출직이 아니다. 권한대행의 리더십은 ‘민주적 정당성’을 온전히 갖출 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국가 통치에 공백이 생겼다. 이는 국가와 헌법 수호의 측면에서 중대한 위기였다. 당시 북핵 위협이 고조되는 등 안보 불안 요인이 있기도 했다.”
다른 나라의 탄핵 절차는 우리와 많이 다른가.
“미국에서는 하원이 탄핵안을 가결해도 대통령 권한이 유지된다. 상원의 표결로 파면이 결정되면 부통령이 권력을 승계한다. 미국의 부통령은 대통령과 함께 선출되기 때문에 우리처럼 민주적 정당성의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우리의 탄핵 제도에 근본적 결함이 있다는 말인가.
“대통령 직무정지 상태에서의 국가 통치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 해도 ‘이정미 재판관 퇴임 전에 결론을 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한 것은 신중하지 못한 처사라는 비판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재판관이 퇴임하면 헌재가 ‘7인 체제’가 되는 상황이었다. 내 자리를 포함해 두 자리가 빌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 탄핵심판을 그 정도로 헌재가 불완전한 상태에서 진행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총리가 새 재판관을 지명하면 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은 일이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을 지명하면 민주적 정당성의 문제가 곧바로 불거질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 보니 재판관 퇴임과 맞물려 상황 자체가 미묘하게 얽혀 있었던 것 같다. 결국 탄핵심판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형사 재판이 열리기도 전에 끝났고, 일각에선 ‘정치 재판’이라고 주장했다.
“형사 재판 수준의 엄밀한 증거조사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사법적 재판의 틀을 최대한 갖췄다고 생각한다. 헌재는 뇌물 등의 혐의보다는 권한 남용 문제를 집중적으로 살폈다. 탄핵심판은 기본적으로 징계 재판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박 전 소장은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돼 헌재로 공이 넘어오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고 회고했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기 3일 전인 2016년 12월 6일에 한국에 와 있던 독일 헌법재판관들을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 탄핵심판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고 말했다. 국회 표결 전에 박 전 대통령이 이른바 ‘질서 있는 퇴진’의 수순을 밟을 것으로 짐작했다는 뜻이었다.

내친김에 재판관과 소장으로 헌재에서 6년간 지낸 경험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는 가장 아쉬운 대목으로 어려운 숙제를 후임자에게 남기고 떠난 점을 꼽았다. “퇴임 전까지 몇몇 사안에 대한 헌재의 판단을 내리려 했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 처벌 문제가 우선순위의 최상위권에 있었다. 탄핵심판 시작 뒤 다른 사건 심리가 중단됐고,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퇴임했다.” 박 전 소장은 변호사로서 영리 활동을 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지난해 3월 한국인들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전대미문의 길을 걸었다. 그 속에서 옳고 그름을 둘러싼 생각들이 무수히 부닥쳤다. 그로부터 1년, 갈등을 증폭시켰던 법과 제도의 불비(不備) 문제는 어느새 잊혀져 간다. 역사는 그렇게 허비되고 있다.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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