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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가 죽느냐 아사히가 죽느냐, 최소 아소는 잘린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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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정권이든 아사히 신문이든 어느 한 쪽은 쓰러지는 궁극(窮極)의 싸움이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재무성이 해체돼야 하고, 허위라면 아사히가 위기다.”
일본 대장성(재무성의 전신) 관료 출신 인사가 일본 언론에 한 얘기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AP=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AP=연합뉴스]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내각이 흔들리고 있다. 자민당내에서도 "지금까지와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위기"라는 말이 나온다. 아베의 위기는 앙숙인 아사히 신문의 보도로 촉발됐다.

아사히 "아베 얽힌 사학재단 의혹 문서 조작 의혹" #야당 "내각 총사퇴 또는 오른팔 아소 다로 사퇴" #9월 총재 3연임 앞둔 아베 치명상 입을 수도 #자료 제출 거부하는 정부에 여야 모두 비판

 지난해 아베 총리를 ‘도쿄 도의회 선거 참패-국회 해산-중의원 선거’로 몰아 세웠던 ‘모리토모(森友)학원’의혹이 또 문제였다. 지난 2016년 6월 사립학교 재단인 모리토모 학원이 초등학교 부지로 국유지를 감정가(9억3400만엔)의 14%(1억3400만엔)에 해당하는 헐값에 사들인 과정에 학교측과 친분이 두터운 아베 총리 부부가 관여했다는 의혹이다.

모리토모 학원 스캔들과 관련해 문서 조작 의혹을 폭로한 아사히 신문의 지난 2일자 1면 [아사히 신문 캡쳐]

모리토모 학원 스캔들과 관련해 문서 조작 의혹을 폭로한 아사히 신문의 지난 2일자 1면 [아사히 신문 캡쳐]

2일자에서 아사히 신문은 “국유지 계약 당시 재무성이 작성했던 문서와, 문제가 불거진 이후 국회에 제출한 자료가 다르다”며 재무성이 문서를 사후에 고쳤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특례적인 내용이다’,‘본 건의 특수성’,‘학원측의 요청에 응해 감정평가’ 등 예외적인 상황에서 특별한 배려가 있었음을 암시하거나 학교측의 요청을 수용하는 듯한 표현들이 문서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해당 초등학교의 명예교장까지 맡았던 아베 총리 부인 아키에(昭恵)여사의 개입 정황을 야당 의원들이 다시 집요하게 캐내면서 이 문제는 지난해에 이어 다시 일본 정가의 뇌관으로 커진 상태였다.

여기에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문서 조작 의혹까지 터지면서 아베 정권이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위기에 몰리고 있다.

불에 기름을 부은 건 담당 관청인 재무성의 대응이었다. 재무성은 모리토모 의혹이 터진 뒤 “관련 문서는 모두 폐기처분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고 주장했다가 거짓말이 들통났다.

2일 아사히 보도 이후엔 “늦어도 6일까지 관련 내용을 국회에 보고하겠다”고 했지만 막상 6일이 되자 “관련 문서가 (사건을 수사중인)오사카 지검에 보관중이기 때문에 당장은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문서가 사후에 고쳐졌는지에 대해선 전혀 설명이 없었다.

 그러자 집권 여당인 자민당 내부까지 폭발했다.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은 “국회가 요구하는 자료를 내놓지 않는 건 나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전 총리의 차남으로 자민당내 최고 인기남인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의원도 "지금까지의 문제와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비판대열에 합류했다.

야당은 파상 공세에 나섰다. 재무성이 문서 공개를 거부한 6일부터 사실상 국회 보이콧에 나섰다. 또 "사실이라면 아베 총리를 비롯한 내각 총사퇴는 피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중앙포토]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중앙포토]

 마이니치 신문에 따르면 총리와 가까운 자민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내각 총사퇴까지 말하는 건 아직 비약이지만,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의 책임론으로 튀기전에 수습해야 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아사히의 보도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아베 정권 전체를 폭발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최소한 아베의 맹우(盟友)로 재무성을 이끌어온 오른팔 아소의 사임은 불가피하다는게 일본 정가의 대체적인 분위기다.

현재 스가 요시히데(菅義偉)관방장관을 비롯한 총리 관저도 일단 "문서 관리의 책임은 전적으로 해당 부처에 있다"며 꼬리자르기에 열중하고 있다.

하지만 총리 부부의 특혜 관여 여부가 모리토모 의혹의 핵심이기 때문에 이런 관저의 태도가 일본 국민의 이해를 얻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2016년 3월 정부측과 가격협상을 벌이던 사학재단의 전 이사장이 일본 재무성의 담당실장에게 “아베부인으로부터 ‘어떻게 되가느냐. 분발하세요’라는 전화가 왔다“고 아키에 여사의 존재를 거론했다는 녹취록이 지난 2월 공개되기도 했다.

마이니치는 “사실로 확인되면 총리의 구심력이 한꺼번에 떨어지면서 9월로 예정된 자민당 총재 경선에서의 3연임에도 적신호가 켜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당장 정치적인 생명은 이어갈 지 모르지만 총재 3연임과 이후 개헌 드라이브 등 아베의 머릿속에 있는 정국 시나리오엔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하다.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의 간사장은 7일 회담에서 “문서를 둘러싼 의혹에 대해 8일까지는 조사결과를 보고하라”고 재무성에 재차 요구했다.

2012년 12월 재집권이후 5년 넘게 권좌에 앉아 기세 좋게 달려온 아베 총리가 숙적 아사히 신문때문에 또다시 위기를 맞았다.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면 역으로 아사히 신문이 그 짐을 떠안아야 할 것으로 보수 언론들은 분석하고 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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