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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초 선박, 불 난 건물서 긴급탈출 … “무서웠지만 자신감 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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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6일 광나루안전체험관에서 여성 교육생이 완강기를 이용해 3층 높이에서 대피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6일 광나루안전체험관에서 여성 교육생이 완강기를 이용해 3층 높이에서 대피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현 시간 암초와 충돌했습니다. 즉시 퇴선하시길 바랍니다. 삐삐삐삐”

여성안심 재난체험장 가 보니 #화재·지진·태풍 상황별 대처훈련 #완강기 사용법, 심폐소생술도 배워 #“평소 위기대응 능력 몸으로 익혀야”

6일 오전 서울 광진구 광나루안전체험관 선박탈출체험장. 여성 20명이 흔들리는 모형 배에서 경보음이 울리자 다급히 갑판 위로 올라갔다. 소방대원은 탈출을 안내했다. 여성들은 10m 길이 슬라이드를 통해 건물 2층 높이에서 뛰어내렸다. 정지윤(30)씨는 “실제 상황에서는 바다로 곧장 입수해 코에 물이 막혀 정신이 없다고 하던데 진짜 물이 있는 유사한 체험장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오는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6~9일 ‘여성안심 재난체험’ 행사를 열고 있다. 사전에 온라인으로 신청한 여성 200여명은 이날 화재·지진·태풍 등 상황 대비와 완강기·소화기 사용법, 심폐소생술 교육 등 회당 2시간 코스를 체험했다.

태풍 체험관에는 초속 30m 바람을 직접 맞을 수 있다. 10명이 조를 이뤄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난간을 붙잡고 실내를 빠져나가는 연습이다. 안내를 맡은 소방대원은 “바람 때문에 주머니에 있는 물건도 빠져나갈 수 있으니 겉옷 안주머니에 소지품을 넣어달라”고 일렀다. 실내에 들어가니 난간을 잡지 않으면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였다. 체험이 끝난 교육생에게 “2003년 태풍 매미는 이보다 속도가 두 배 빠른 바람이 불었다”고 안내하자 “웬일이야”라는 탄성이 나왔다.

완강기를 이용해 3층 높이 건물에서 뛰어 내리는 체험도 이어졌다. 소방대원이 “난간에서 두 발을 떼라”고 지시하자 “무섭다”며 머뭇거리는 교육생도 나왔다. 고미옥(55·성북구 석관동)씨는 “막상 뛰어내리니까 자신감이 생겼다”며 “여행을 가면 펜션 베란다 등에 완강기가 있는 걸 봤는데 이제는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강의 시간에는 지난해 12월 발생한 충북 제천 화재사고 영상이 소개됐다. 2층 여성 사우나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사고였다. 22년간 소방대원으로 활동한 이희순 광나루안전체험관장은 “실제 여성 사우나에서 냉탕과 온탕을 오가다 쓰러지는 시민을 구조할 때가 종종 있다”며 “현장에 소방대원이 출동하면 여성들은 쑥스러워 뒤로 숨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난은 여성을 배려하지 않는다”며 “주변 안전체험관에 직접 나와 대응 능력을 몸으로 익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는 광나루안전체험관 뿐 아니라 동작구 보라매공원에서도 안전체험관을 운영하고 있다. 2022년엔 강서구 발산근린공원에 세 번째 대형안전체험관이 지을 예정이다. 시민들은 온라인으로 해당 체험관에 예약하면 주말에 가족 단위로도 안전 체험을 할 수 있다.

국내 대형 재난 사고에서 여성 사망자 비율이 남성보다 높다. 1995년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에서는 사망자 502명 중 여성은 396명으로 78.8%에 달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에서도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 186명 중 여성이 125명(67.2%)에 이른다. 권영국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안전 교육을 여성이나 초등학생과 같은 취약계층으로 확대해야 재난 발생 시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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