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전 러시아 스파이 또 당했다 … 영국서 의식불명 상태 발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영국에서 알 수 없는 물질에 노출된 채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된 전 러시아군 정보총국 대령 출신 세르게이 스크리팔이 2006년 모스크바 법정에 출두할 때 모습. [타스·AP·로이터=연합뉴스]

영국에서 알 수 없는 물질에 노출된 채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된 전 러시아군 정보총국 대령 출신 세르게이 스크리팔이 2006년 모스크바 법정에 출두할 때 모습. [타스·AP·로이터=연합뉴스]

2006년 겨울, 전직 러시아 정보 요원이 영국 런던 호텔에서 독살당했다. 영국으로 망명해서까지 반푸틴 운동을 펼친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다. 전 러시아연방보안국(FSB) 정예 요원이던 그를 죽음으로 이끈 독극물은 폴로늄 210였다. 청산가리보다 독성이 25만배 강해 ‘초소형 핵폭탄’으로 불리는 방사성 물질이다.

솔즈베리 쇼핑센터서 부녀가 함께 #경찰 “알 수 없는 물질에 노출” #2006년 숨진 전직 러시아 요원은 #청산가리 25만배 방사성 물질 중독

이 물질이 섞인 차를 마신 그는 3주 만에 사망했는데 숨지기 직전 머리털이 몽땅 빠진 채 앙상한 그의 모습이 언론을 통해 공개돼 전 세계가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영국 당국은 10년간 조사를 벌인 끝에 살해 배후로 FSB를 지목했고,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승인 아래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첩보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 얘기는 최근 전직 러시아 스파이가 영국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지난 4일(현지시간) 전 러시아군 정보총국(GRU) 대령 출신인 세르게이 스크리팔(66)과 그의 딸 율리아 스크리팔(33)이 영국의 솔즈베리 한 쇼핑센터 벤치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고, 두 명 모두 상태가 위중하다고 6일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알 수 없는 물질에 노출된 뒤 중상을 입었다. 스크리팔은 2006년 영국 해외담당 정보기관인 비밀정보국(MI6)에 러시아 정보기관 인물들의 신분을 넘긴 뒤 반역죄로 13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2010년 미국과 러시아의 첫 대규모 스파이 맞교환 때 풀려나 영국으로 넘어왔다. 로이터는 영국 경찰이 치료를 받는 사람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두 소식통을 인용해 스크리팔이란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경찰 측은 “발견 당시 특별한 외상이 없었고 보복테러 행위와 연관됐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외신들은 스크리팔이 미확인 물질을 접한 뒤 쓰러진 점을 두고 리트비넨코의 독살 사건을 떠올리고 있다.

독살은 세계 곳곳에서 적잖게 사용되는 암살 방법이다. 독살 잔혹사에서 대표적으로는 거론되는 사례는 1978년 이른바 ‘독 우산’ 사건이다. 영국 런던에 망명 중이던 불가리아 반체제 인사 게오르기 마르코프는 출근 버스를 기다리던 중 낯선 사람의 우산 끝에 찔린 뒤 나흘 만에 사망했다. 부검에서 리친이란 독성물질이 발견됐다. 러시아 국가보안위원회(KGB)가 개발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정황만 드러났을 뿐 아무도 재판을 받지 않았다.

2004년에는 러시아가 지지하는 우크라이나 보수 여당 대선후보 빅토르 야누코비치에 맞섰던 진보 성향의 야당 후보 빅토르 유센코가 다이옥신 중독으로 얼굴이 크게 훼손되기도 했다. 당시 유센코의 지지자들은 FSB를 배후로 지목했다.

지난해에는 북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맹독성 신경작용제인 VX로 살해당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