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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마크] 박원순 “앞으로 4년은 문재인 정부와 결실 만드는 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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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여론조사 1위를 달리면서 눈앞에 보이는 듯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의 ‘3선(選)행’이 순탄치 않다. 미세먼지 저감대책으로 야심차게 내놓은 대중교통 무료정책은 여론의 반발을 불렀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방선거 후보 경선에서 사실상 결선투표 적용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결선투표가 적용되면 박 시장에게는 돌발변수가 될 수 있다. 여기에 정치적으로 빚 진 안철수 바른미래당 전 의원의 시장 선거 등판설이 점차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3선 고지로 가는 길에서 뜻밖의 난관들에 직면한 박 시장을 밀착마크했다. 지난달 26일 일일 동행취재한 후 전화ㆍ서면 인터뷰를 이어갔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시청 집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시청 집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박 시장은 시장 집무실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 6ㆍ13 지방선거 필승 전략이 뭐냐는 물음에 “특별한 건 없다. 지난 6년 간 ‘달라진 서울’에 대해 평가를 받고 앞으로 ‘달라질 서울’의 청사진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6년은 서울시 홀로 외롭게 분투했지만, 향후 4년은 문재인 정부와 함께 결실을 만드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박 시장은 서울시의 성공과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동일시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얘기했다.
박 시장이 그러기 위해서는 바로 앞에 놓인 두 번의 고비부터 넘겨야 한다. 당내 후보 경선에서 이겨야 하고, 그 후 본선에서 야당 후보를 꺾어야 한다.

박 시장 “2단계 경선 방식 써도 크게 달라질 게 있겠는가”

민주당은 5일 당무위원회를 열어 지방선거 후보자 선출 과정의 2단계 경선 적용안을 의결했다. 이러면 1차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해도 안심할 수 없다. 2차 경선에서 나머지가 2위 후보를 밀어줄 경우 결과가 뒤바뀔 수 있어서다. 현재 지지율이 가장 높게 나오는 박 시장 측으로선 복병을 만난 셈이다.

당이 결선투표 방식을 쓴다면 받아들일 수 있나.
따라야지 어쩌겠는가. 후보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게 아니라 시너지를 높이는 방향이라면 굳이 피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2차 경선에 가면 박빙의 승부가 될텐데.
유불리는 있겠지만 크게 달라질 게 있겠는가.  

차기 대선 묻자 “할 일 뭘까 고민…자리 생각은 안해” 

당 안팎에서 시장 3선이냐, 차기 대선이냐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지적이 많다.
자꾸 사람들이 대선 얘기를 하는데 그런 당파적 생각이나 정치적 판단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다른 생각할 여력이 없다.
시민들이 원한다면 대선에 나올 수 있는가.
(갑자기 말이 빨라지며) 저는 어떻게 세상을 바꿀까, 내가 할 일은 뭘까를 고민했지 뭔가가 돼야겠다고 자리 고민한 적은 없다.

박 시장은 지난 대선 때 출사표를 던졌다 선거 4개월을 남기고 레이스를 접었다. 준비 부족이었다. 박 시장의 참모(정무부시장)였던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후보 비서실장)로 옮겨간 게 대표적이다.

임 실장이 곁을 떠난 이유는 뭔가. 
제 역할을 잘 해준 인재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서울시에서 검증된 인재와 정책을 쓰겠다 했고 저 역시 새 정부 성공을 위해 얼마든지 지원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대선에 나설 거면서 그랬던 건 이해가 안간다. 일각에선 임 실장이 박 시장에게 대선 캠프 총괄을 맡겠다고 자청했다가 아무리 기다려도 답이 안 오자 문 캠프로 갔다고 하던데.
서울시와 정부가 한 팀인데 내 사람, 네 사람이 어딨나. 임 실장 뿐 아니라 청와대로 간 김수현 사회수석, 하승창 사회혁신수석 등이 모두 같은 케이스다.

‘안철수 출마시 이길 자신 있나’ 묻자 “시민들 마음에 달려” 

서울시청 집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박원순 서울시장. 김경록 기자

서울시청 집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박원순 서울시장. 김경록 기자

최근 정치권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안철수 전 의원과 박 시장 간 빅매치 성사 여부다. 안 전 의원은 지난 2일 기자들과 만나 서울시장 출마설에 대해 “당 지도부 요청이 오면 자세한 얘기를 나누겠다”며 가능성을 계속 열어놨다.

안 전 대표의 출마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출마는 자신의 실존적 결단이 필요한 일 같다.
박원순ㆍ안철수 간 빅매치가 성사되면 어떻게 될까.
오래 전 신뢰를 쌓은 관계지만 지금은 가는 길이 달라졌다. 나는 민주당 후보로서 서울의 성공이 문재인 정부의 성공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이길 자신 있나.
제가 자신 있다고 한들…. 시민들이 누구 손을 들어주느냐에 달려 있다.

박 시장은 미세먼지 대중교통 무료정책이 시장 선거 경쟁주자들로부터 집중 포화를 받은 게 서운했다고 한다. 여간해선 직설화법을 잘 안 쓰던 그가 미세먼지 정책에 대해 얘기하는 대목에선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특히 안 전 의원이 ‘포퓰리즘’이라며 자신을 공격한 일을 얘기하면서는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박 시장은 미간을 찌푸린 채 “시민 안전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니 그 정치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게 당시로서는 불만족스러웠다”고 했다.

박 시장은 실효성 논란을 부른 대중교통 무료정책에 대해 “많은 논쟁이 벌어지면서 오히려 미세먼지 대책이 얼마나 중요하고 서울시가 얼마나 결의에 차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면 인터뷰 하루 뒤인 지난달 27일 서울시는 이 정책의 중단을 발표했다. 1월 15ㆍ17ㆍ18일 세 차례 적용된 이 제도는 시행 두 달 만에 없던 일이 됐다.
바뀐 이유를 묻자 박 시장은 “변경이 아니라 애초 대중교통 요금 면제는 종국적으로 차량 의무2부제 등으로 가기 위한 ‘마중물 사업’이었다”며 “원래 플랜대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시장 “직원들에 많은 과제 반성…‘깨알수첩’ 버린 지 오래”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달 26일 서울시 도시재생본부 직원들과의 간담회에서 대화를 나누며 웃고 있다. 간담회에 참석한 직원들은 서울시가 ‘제2의 용산참사’ 예방 차원에서 시행 중인 ‘(도시정비사업) 겨울철 강제철거 금지’의 현장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팀원들이다. 이날 한 여직원이 ’빨리 결혼하고 싶다“고 하자 박 시장이 담당 팀장에게 ’연애 특별휴가를 보내라“고 해 좌중에 웃음이 터졌다. [사진 서울시 제공]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달 26일 서울시 도시재생본부 직원들과의 간담회에서 대화를 나누며 웃고 있다. 간담회에 참석한 직원들은 서울시가 ‘제2의 용산참사’ 예방 차원에서 시행 중인 ‘(도시정비사업) 겨울철 강제철거 금지’의 현장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팀원들이다. 이날 한 여직원이 ’빨리 결혼하고 싶다“고 하자 박 시장이 담당 팀장에게 ’연애 특별휴가를 보내라“고 해 좌중에 웃음이 터졌다. [사진 서울시 제공]

박 시장은 일정 중 잠깐 짬을 내 서울시 도시재생본부 소속 직원들과 스탠딩 간담회를 열었다. 직원들에게 떡을 돌리며 환담을 나눴다.

만기친람형이어서 직원들 사이에선 ‘시장이 아니라 6급 주사 같다’는 얘기도 나온다던데.
천만 시민의 삶을 꼼꼼히 살피는 ‘현미경 시정’과 넓은 시각으로 비전을 완성해가는 ‘망원경 시정’이 모두 필요하다.
시장 재임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시 공무원이 8명에 이른다. 이들 중 일부는 업무 과로를 호소한 경우도 있었는데.
제가 일 욕심도 많고 너무 많은 과제를 부여했던 탓도 있는 것 같다. 반성하고 성찰했다. 업무부담은 줄이고 휴식이나 휴가를 늘리는 방향으로 조직문화를 바꿔갈 것이다. 그 유명한 (업무용)수첩도 버린 지 오래다.(※박 시장은 아이디어가 빼곡히 적힌 수첩을 토대로 직원들에게 ‘깨알지시’를 내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아들 병역면제 논란 묻자 목소리 높아져…“그런 질문조차 불순”  

시장 집무실에서 이뤄진 인터뷰 도중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된 방송 뉴스가 흘러나왔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는 어떻게 예상하나.
민주주의 기본을 흔든 행위까지 용서받기는 어렵지 않을까 한다.
아들 박주신씨 병역면제 의혹을 제기한 의사 등 7명에 대한 명예훼손 항소심에서 주신씨가 증인으로 신청됐는데 재판에 계속 안 나오고 있다. 그 이유는.
아니, 저는 그 질문조차도 사실 좀 불순한 거라고 생각한다. 전 정부가 저를 엄청나게 탄압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일 아닌가.

이 대목에서 박 시장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쳤고 인상을 찡그렸다. 명예훼손으로 고소된 7명이 1심에서 벌금 700만~1500만원의 유죄가 선고됐는데도 왜 이 문제를 거듭 제기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에서 열린 평창 패럴림픽대회 붐업 페스티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에서 열린 평창 패럴림픽대회 붐업 페스티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인터뷰가 있던 날 서울시 노사정 정책간담회가 잡힌 P호텔로 이동하는 박 시장의 관용차 내부에 동승했다. 민방위복, 119 소방대원복, 겨울 점퍼, 흰색 와이셔츠 등 약 20벌의 의상이 뒷좌석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박 시장은 “언제 무슨 일이 벌질지 모르니 늘 대비하고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이동 도중 비서진이 건넨 노사정 정책간담회 인사말 자료를 훑어봤다. 박 시장은 서울시 노동정책에 자부심이 크다고 했다.

‘노동존중 특별시’를 표방했는데.
“역대 시장 중 노동정책을 가장 잘했다는 평가가 많다. 일자리 노동국을 신설했고, ‘노동의 경영 참여’를 모토로 도입한 노동이사제는 문재인 정부가 벤치마킹해 중앙정부 모델로 확산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달 26일 서울시청에서 오찬을 겸해 열린 ‘서울시 근로자이사 발전토론 간담회’ 후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 서울시 제공]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달 26일 서울시청에서 오찬을 겸해 열린 ‘서울시 근로자이사 발전토론 간담회’ 후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 서울시 제공]

2016년 9월 ‘근로자(노동)이사제 운영에 관한 조례’를 공포한 서울시는 서울연구원 등 투자ㆍ출연기관에 근로자 대표 1~2명의 이사회 참여를 의무화했다. 대결적 노사관계를 협치적 노사관계로 바꿔가가자는 취지에서다. 이날 오찬을 겸해 열린 서울시 근로자이사 간담회에서는 “생생한 현장 얘기를 전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실질적 권한 없이 들러리 선다는 느낌”, “시에서 명확한 지침을 안 줘 기관장들이 잘 안 움직인다” 등 역할 정립과 제도 보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82년생 김지영’들과의 타운홀 미팅 참석 

박 시장은 이날 오전 서울시청 바스락홀에서 열린 ‘서울시가 청년의 사랑에 투자합니다’라는 제목의 타운홀 미팅에도 참석했다. 미혼 남녀와 신혼 부부 등 ‘82년생 김지영’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저출산 극복을 위한 서울시 양육 정책을 설명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박 시장은 이 자리에서 “지난해 추석 때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펑펑 울었다”며 “주거ㆍ육아 문제로 고통을 겪는 이 시대 여성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82년생 김지영』은 30대 여성이 일생 동안 겪는 성차별을 고발해 반향을 일으킨 소설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달 26일 저출산 극복을 위해 서울시청에서 개최한 ‘서울시가 청년의 사랑에 투자합니다’라는 제목의 타운홀 미팅에서 참석자들에게 서울시의 양육 지원 대책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서울시 제공]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달 26일 저출산 극복을 위해 서울시청에서 개최한 ‘서울시가 청년의 사랑에 투자합니다’라는 제목의 타운홀 미팅에서 참석자들에게 서울시의 양육 지원 대책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서울시 제공]

박 시장은 또 “아이돌보미를 1만명으로 늘리고, 어린이집을 이용하지 않는 0~5세를 위한 공동육아 품앗이 공간인 ‘우리동네 열린육아방’을 2022년까지 450곳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간담회에서는 “국공립 어린이집을 더 늘려달라”. “좋은 정책들이 있어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정책 홍보를 더 했으면 좋겠다” 등 의견들이 제시됐다.

육아휴직 중이라는 정찬흥(37)씨는 “집에서 아이를 키우다 보니 주부의 삶이 이해가 됐다”며 “아빠들도 육아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과 제도를 개선해달라”고 말했다. 박 시장은 “누구나 눈치 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호응했다.
시정 챙기랴, 선거 준비하랴 박 시장의 하루는 길고 길었다.

김형구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뒤져봤더니

(※예고 없이, 하지만 허락을 받고 인터뷰 대상자의 소유물을 뒤져보는 코너입니다)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청 집무실 안에는 가로 50㎝, 세로 50㎝ 크기의 나무 함이 있다. 나무함 속엔 각종 사탕과 시 한 편 씩 적혀 있는 종이가 둘둘 말려 고무줄로 묶인 채 보관돼 있다. [중앙포토]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청 집무실 안에는 가로 50㎝, 세로 50㎝ 크기의 나무 함이 있다. 나무함 속엔 각종 사탕과 시 한 편 씩 적혀 있는 종이가 둘둘 말려 고무줄로 묶인 채 보관돼 있다. [중앙포토]

박원순 시장의 시청 집무실 한 가운데에는 문서 운반용 수레가 있다. 박 시장 비서진은 “시장님이 수시로 다량의 문서파일을 찾으니 수레가 필수품이 됐다”고 설명했다. 수레 위에 가로 50㎝, 세로 50㎝ 크기의 나무 함이 있어 열어봤다. 나무 함 속엔 각종 사탕과 수십장의 종이가 둘둘 말아 고무줄로 묶인 채 보관돼 있었다. 말린 종이에는 한글과 영문으로 적힌 시 한 편씩이 적혀 있었다. 시장 집무실을 찾는 손님들에게 ‘사탕 하나 드시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 한 편 읽으시라’는 마음에서 비치했다고 한다. 종이 하나를 꺼내 펴보니, ‘숙제’라는 제목의 시가 적혀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실컷 놀다가 / 푹 자고 일어나 / 학교 갈 준비를 하다 보니 / 생각 난 숙제”로 시작하는 이 시의 작자는 ‘이한나’라는 이름의 한 초등학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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