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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단 “사는 곳 있을 때 팔자” 금호타이어 노조 “먹튀 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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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금호타이어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금호타이어를 중국 타이어 업체 더블스타에 매각하는 방안을 재추진하면서 매각 만이 유일한 해법인지, 매각할 경우 기술 유출이나 ‘먹튀’ 가능성은 없는지 등 다양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금호타이어 해외 매각 논란 왜?

먼저 매각을 하지 않고 회생시키는 방법은 없을까. 채권단에 따르면 최근 3년(2015~2017년)간 금호타이어의 누적 적자는 1940억원에 달한다. 이 기간 임금 상승률은 연평균 13%에 달했다. 적자는 쌓여가는데 임금은 올라갔다는 얘기다. 채권단이 자체적으로 회생하긴 어렵다고 보는 이유다. 더구나 타이어 산업은 대규모 시설투자와 기술력·유통망·숙련공 확보가 필요한 자본·기술·노동 집약 산업이다. 진입장벽이 높다는 얘기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빅4(브릿지스톤·미쉐린·굿이어·컨티넨털)’가 시장의 45%를, 국내에서는 한국타이어·금호타이어·넥센 3개사가 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 김진우 애널리스트는 “타이어 산업은 한번 적자 궤도에 들어서면 ‘대규모 투자→경쟁력 유지→시장 확대→다시 투자 확대’의 선순환 구조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아 경쟁 대열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청산 가치가 존속가치 보다 높아

금호타이어 최근실적

금호타이어 최근실적

노조가 고강도의 자구노력을 강행하면 회생이 가능하지 않을까. 채권단이 최근 중국 더블스타에 매각 계획을 추진하면서 공개한 설명자료에는 ‘타 경쟁사 수준으로 자구노력을 이행할 경우에도 계속기업가치가 1조1905억원으로 청산가치 대비 1575억원 높을 뿐’이라는 대목이 있다. 채권단은 존속가치가 크게 높아지지 않는다는 의미로 설명했지만, 고강도의 자구노력을 하면 존속가치가 근소하게나마 높다는 얘기다.

그러나 현재의 금호타이어 내부 분위기로는 고강도 자구노력을, 더구나 자발적으로 내놓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금호타이어 노조는 5일 홈페이지에 강경한 어조의 ‘투쟁지침’을 올렸다. 노조는 “부실의 근본 원인은 중국공장에 있는데 국내 근로자에게 책임을 전가해선 안된다”며 “해외 매각이 철회되는 날까지 고공농성, 조합원 총파업 등에 나설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전 세계 타이어 시장은 지난 10년간 중국시장의 지속적인 고성장으로 성장세를 유지했다. 타이어 판매량 18억 개 중 3억 개가 중국에서 소비됐다. 하지만 2015년 이후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대해 반덤핑관세를 부과하면서 중국시장의 공급과잉이 심화됐다. 금호타이어는 중국사업은 2015년 적자전환 이후 손실이 이어지고 있다.

적자 원인을 중국에서 찾는 노조가 고강도 자구안을 내놓을리 없다.

그렇다면 왜 수많은 타이어 업체 중 중국의 더블스타가 인수 후보가 됐을까. 채권단은 이미 지난해 1월에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더블스타를 지정한 바 있다.

이대현 산은 수석부행장은 “금호타이어 베트남 공장, 미국 조지아 공장에 관심을 보이는 곳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금호타이어에 관심이 있는 글로벌 타이어 업체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매입 의사를 밝힌 회사가 더블스타 뿐이라는 얘기다. 금호타이어는 국내 2위, 세계 14위 업체로 874개 독자기술과 50여 건의 글로벌 특허권을 보유하고 있다. 더블스타는 트럭 및 버스용 타이어(TBR)을 주로 생산하는 세계 34위 업체다. 업계에서는 더블스타가 금호타이어를 인수하면 중국 1위, 세계 10위권 업체로 도약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 기술력 외에 금호라는 브랜드 인지도, 글로벌 판매망까지 한번에 좋아진다는 장점이 있다.

매입 의사 밝힌 곳 더블스타가 유일

업계의 우려 가운데 하나는 금호타이어가 타이어 업체 가운데 유일한 방위산업체라는 점이다. 금호타이어는 우리 군 전투기와 훈련용 타이어를 생산한다. 방산기업은 전쟁 등 유사시에 물자를 적기에 공급할 능력을 갖춰야 하고 품질을 엄격하게 관리해야 해 비용이 많이 든다. 더블스타가 금호타이어를 인수하면 이익이 크게 나지 않는 방산사업을 떼어낼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그래서 나온다. 정부 입장에서는 다른 국내 업체를 주요 방산업체로 대체 지정해도 되지만, 생산 라인 확보 등을 고려할 때 당장 납품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채권단 측은 금호타이어 전체 매출에서 방산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이 0.2% 내외에 불과해 기술 유출 우려가 크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쌍용차나 한국GM처럼 더블스타도 인수 후에 기술을 확보하고 나면 손을 뺄 가능성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이른바 ‘먹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한다. 자금 회수까지 마치고 나면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거나 인건비 비중이 높아 수익률이 낮은 국내 공장을 폐쇄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얘기다. 금호타이어 노조도 이를 해외 매각에 반대하는 중요한 근거로 든다.

그러나 채권단의 생각은 좀 다르다. 강력한 노조가 있는 기업을 인수하겠다고 나설 회사가 없으니 더블스타가 의향이 있을 때 파는 게 현명하다는 것이다. ‘먹튀’ 논란도 회사가 정상화 된 이후의 일인데 지금은 회사를 살리는 것 자체가 더 급하다는 얘기다.

노조 반대 땐 ‘법정 관리 → 청산’ 가능성

농성 중인 노조가 해외매각에 끝까지 반대할 경우엔 어떻께 될까. 이 경우 금호타이어의 운명은 법정관리라는 외길 수순을 밟게 된다. 법정관리에 들어서는 순간 이 회사는 기업을 살리는게 이익일지, 청산하는게 나을 지 따지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산은 관계자는 “실사 결과 계속기업가치가 4600억원에 불과해 청산가치(1조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전했다. ‘법정관리=기업청산’이라는 의미다.

채권단은 “더블스타는 노조가 매각을 반대할 경우 인수에 나설 뜻이 없다”며 노조를 압박하고 있지만 노조는 “해외매각은 용납할 수 없다”며 요지부동이다.

고임금 저생산성의 구조적 위기, 위기 징후를 미리 포착 못한 경영 부실의 결과가 시험대 올랐다. 금호타이어(5000여명)와 협력업체까지 1만3000여명 근로자의 일자리 운명도 시험대 위에 올랐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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