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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의 서핑 차이나] 500m 앞 행인 행적까지 분석 … ‘마이너리티 리포트’ 현실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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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해 9월 상탕 본사를 방문한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상탕]

지난해 9월 상탕 본사를 방문한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상탕]

“회사 이름은 상(商)왕조의 초대 황제 탕왕(湯王)에서 영감을 받았다. 기원전 1600년 세워진 상나라는 당시 선진화된 농업·수공업·문자(한자)로 세계를 선도했다. 기술 혁신으로 다시 세계를 이끌겠다.”

중국 AI 선두주자 상탕커지를 가다

인공지능(AI) 선도 기업 상탕커지(商湯科技·Sense Time, 이하 상탕) 공동 창업자 탕샤오어우(湯曉鷗) 홍콩중문대 정보공학과 주임교수의 포부다. 미국 시장조사기관인 CB Insight는 창업 3년이 지난 상탕의 기업가치를 14억7000만 달러(1조6000억원)로 추산했다. 주력인 컴퓨터 영상 인식 분야 연구진과 보유 기술은 구글에 필적한다는 평가다.

자체 기술로 퀄컴·혼다와 파트너십 

상탕의 지면 영상 분석 솔루션. [사진 상탕]

상탕의 지면 영상 분석 솔루션. [사진 상탕]

지난달 9일 베이징 칭화(淸華)과기원에 위치한 상탕 본사를 찾았다. 안면 인식 기업답게 얼굴이 곧 ID카드였다. 입구 한쪽에는 근무 중인 직원 얼굴이 디스플레이되고 있었다.

상탕이 자체 기술을 상품화한 동작 캡처 증강현실(AR) 시스템, 양방향 광고 패널인 센스 U, 점포 내 고객 동작 분석 솔루션인 센스 GO, 컴퓨터 시각분석과 AR을 결합한 센스 포토 등 상품 라인업을 홍보팀 직원 안내로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실시간 영상 분석 데이터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센스 비디오는 인상이 깊었다. 창가에 설치된 고해상도 CCTV가 500여m 떨어진 칭화대 정문 로터리의 행인과 차량의 성별·연령·옷색깔·차종·차 번호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냈다. 인물 식별 시스템인 센스 페이스는 특정 인물의 행적을 추출해 보여줬다. 범죄를 예방한다는 SF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도 멀지 않은 느낌이었다.

상탕은 구글 알파고보다 먼저 인간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AI 기술을 보유한 업체다. 상탕엔 글로벌 업체들의 제휴 제안이 쏟아진다. 지난해 7월 마무리된 B라운드에서 스마트폰의 필수품인 메인 칩을 생산하는 통신업체 퀄컴이 4억1000만 달러(4442억원)를 투자했다. 퀄컴이 미래전략인 ‘알고리즘+칩’ 파트너로 상탕을 선택했다. 상탕은 지난 12월 일본 혼다자동차와도 전략 관계를 체결했다. 운전자 개입이 전혀 없는 완전 자율주행차를 공동 개발할 계획이다.

인간 눈 넘어서는 안면 인식 기술

상탕은 홍콩의 일류 연구소가 낳았다. 원천 기술 개발은 10년 전에 이미 시작됐다. 2008년 올림픽을 앞둔 베이징에 스모그가 엄습했다. 선명한 사진이 필요했다. MIT 출신의 탕 교수가 이끄는 홍콩중문대 멀티미디어랩이 긴급 투입됐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이미지 처리와 특수 효과를 연구해 온 미디어랩은 고유의 알고리즘으로 스모그를 감쪽같이 제거한 사진을 내놨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미디어랩은 MIT·스탠퍼드·버클리·토론토대에 버금가는 AI 글로벌 선두 연구소다. 딥러닝, 안면 분석, 시각 감시, 이미지·영상 검색, 기계 학습, 3D 드로잉, 이미지·영상 편집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국제적 권위의 ‘컴퓨터 비전 및 패턴 인식 콘퍼런스(CVPR)’에 매년 수십 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상탕의 산파는 쉬리(徐立·36) 최고경영자(CEO)다. 상하이 자오퉁(交通)대 출신으로 2010년 탕 교수에게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1년 탕 교수팀은 쉬 박사와 딥러닝 연구를 시작했다. 딥러닝을 개척한 최초의 중국연구팀이다. 2013년까지 세계 정상급 학술저널에 실린 관련 AI 논문 29편 중 14편이 탕 교수 랩에서 나왔다. 2014년 글로벌 AI 경연장인 ‘이미지넷 영상인식대회’에 출전해 40.7%의 적중률로 구글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같은 해 페이스북과도 대결했다. 페이스북이 먼저 750만 명의 데이터로 컴퓨터를 훈련했다고 발표했다. 멀티미디어랩의 데이터베이스가 20만 명에 불과했을 때다. 하지만 멀티미디어랩은 독자 개발 알고리즘으로 정확도 98.52%를 기록해 인간의 식별률 97.53%를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상탕은 이때 탄생했다. 쉬 대표가 밝힌 창업 이유는 두 가지. 첫째, 기술의 산업화 시점을 포착해서다. 공학도 출신 쉬 대표는 컴퓨터의 안면 인식 능력이 인간을 넘어서던 시점을 ‘아하 모멘트(aha moment: 문제 해결책이 명료해지는 순간)’로 판단했다. 둘째 학술 성과의 사회 환원이다. 쉬 대표는 “학술 성취를 산업에 응용하는 것은 연구자의 책임”이라고 강조한다. 서구는 중국의 안면 인식 연구가 프라이버시를 침범할 가능성을 우려하지만 상탕은 민생에 유익하다는 입장이다. 상탕은 충칭(重慶)시 공안국과 협력해 40일 만에 69명의 범죄 혐의자를 찾아내 14명을 체포했다. 형사가 맨눈으로 1년에 2명 체포하던 것에 비하면 큰 발전이다.

관련 인재 싹쓸이 … ‘AI 블랙홀’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상탕의 성공 비결은 세 가지, 타이밍과 인재, 탄탄한 수익모델이다.

첫째 타이밍. 탕 교수는 “알파고 2, 알파고 포커는 필요 없다”고 역설한다. 미래 시장은 개척자가 차지하기 때문이다.

둘째 인재 독점 전략이다. 상탕의 현재 연구개발(R&D) 인력은 800명, 그중 150여 명이 세계 AI 일류 대학 박사 출신이다. MIT·스탠퍼드·홍콩대·칭화대 등은 물론 구글·바이두·마이크로소프트(MA)·알리바바에서도 영입했다. 업계는 상탕을 ‘AI 블랙홀’로 부른다.

셋째 탄탄한 수익모델이다. 쉬 대표는 상탕의 비즈니스모델을 ‘1+1+X’로 설명한다. 독자 개발한 기초 연구(1)를 기반으로 제품화(1)한 뒤 분야별로 복수의 파트너(X)를 확보하는 방식이다. 매출 규모를 묻자 “대외비”라면서도 400여 개 파트너사로 답을 대신했다.

상탕은 “도전하라”는 메시지를 한국 공학계에 던진다. 고영화 한국혁신센터 중국 센터장은 “계층 상승을 갈망하는 젊은 층, 막대한 시장, 수많은 성공사례가 중국에서 상탕과 같은 첨단 유니콘을 양산한다”며 “한국 연구실도 도약을 위한 ‘헝그리 정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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