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조영태의 퍼스펙티브

청년 인구 줄어들어도 청년 실업 해소되지 않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인구학으로 읽는 대한민국

청년 일자리 문제가 심상찮다. 문재인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청년 일자리 문제를 최우선 국정 과제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2017년 15~29세 청년 실업률이 10%를 넘었고, 체감 청년 실업률은 25%에 달할 만큼 상황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기업 대졸자 수요 30만명인데 #매년 50만명 넘게 배출되니 #20만명 이상이 취업 재수·삼수 #2026년부터 대졸 30만명 나와도 #누적된 구직 인구로 청년 실업은 #2030년에야 해소될 수 있으나 #고령화가 일자리 문제 악화 가능 #정부는 청년 해외 취업 내실화하고 #창업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도록 #일자리 대책 근본적으로 바꿔야

일자리 상황은 일을 찾는 사람 수와 일자리 수에 따라 결정된다. 일자리 문제의 중심에 있는 청년은 25~29세 연령대이다. 2000년 이후 이 연령대 인구가 가장 많은 때가 2008년으로 400만 명이 넘었다. 최근 소설을 통해 구조적으로 모순된 성 역할을 지적한 『82년생 김지영』이 당시 이 연령대에 있었다. 이때는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를 휩쓸 때였다. 우리는 IMF 위기 이후 노동시장 구조조정을 경험할 때였다.

공급은 주는데 수요가 급증하니 ‘82년생 김지영’이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직장을 갖기 불가능했다. 후속 세대인 ‘88 호돌이’들이 이 연령대에 들어가 있는 때가 2014년인데, 2008년에 비해 25~29세 인구가 70만 명이나 줄었다. 일자리 수요가 급감했으니 ‘88 호돌이’들이 직장을 구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워졌어야 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러지 못했다. 아직 일을 찾지 못한 ‘82년생 김지영’들에게 밀렸기 때문이다. 이후 이 연령대 인구는 다시 커지기 시작해 2021년까지 370만 명이 될 예정이다. 김지영에게 밀린 호돌이들이 아직도 분전(奮戰) 중인데 뒤따라오는 ‘94년 개띠’들의 수가 늘어났다. ‘94년 개띠’들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될 가능성이 크다.

갈수록 나빠지는 미스 매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일자리는 인구 크기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어떤 인구가 어떤 일자리를 원하는지에 따라서도 영향받는다. 일자리 수는 많은데 젊은이들이 원하는 일자리가 부족하면, 한쪽에서는 일할 사람을 못 구해 난리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일자리가 없어 난리인 ‘미스 매치’가 발생한다.

과거 1980년대 20대 연령대 인구는 약 90만 명이었고, 대학 진학률은 30%대였다. 이때 30만 명 정도가 대학에 갔다. 이런 상황은 90년대 중반까지 지속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부터 상황이 급변했다. ‘82년생 김지영’이 대학에 들어갈 때다. 당시 80만 명이 넘는 김지영들이 있었고, 80%가 대학에 진학했다. 갑자기 60만 명의 대졸자가 생겼다. 대학에 들어가면 성공할 것이라고 믿었기에 모든 이들이 대학 가기를 원했던 결과다.

이후 청년 인구는 줄었지만 모두 대학 진학을 원했고 매년 50만 명대의 대졸자가 신규 노동시장에 공급됐다. 60~70년대 생들은 경제가 크게 성장하던 80~90년대에 한 해 30만 개 정도의 대졸자 노동시장을 만들었다. 이들이 한창 일할 나이(30~40대)인 2000년대 후반 기업들은 신입사원을 예전보다 더 많이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일자리를 찾는 대졸자가 매년 50만 명 넘게 공급된 것이다. 경제 성장 여력이 쪼그라들며 기업의 대졸 신규인력 채용은 오히려 줄었다.

반면 ‘82년생 김지영’과 이후 세대는 대입 경쟁률이 더 높아지면서 집안의 모든 자원을 동원하고, 사교육 투자를 해서라도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에서도 더 나은 경쟁력을 만들기 위해 ‘스펙’을 쌓아야 했다. 이들이 졸업 후 윗세대처럼 근사한 직장을 찾으려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많아야 30만 명만 필요한 대졸 노동시장에 50만 명이 공급되니 대졸자 일자리는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매년 20만 명이 넘는 대졸 청년이 취업 재수· 삼수를 한다. 반대로 고졸 학력이면 충분한 일자리에는 젊은 인력이 거의 없다. 노동시장의 심각한 ‘미스 매치’ 현상이다. 전 국민이 대학 졸업, 그것도 좋은 대학을 원하는 경향이 커지면서 ‘미스 매치’는 악화 일로를 걷게 됐다.

청년 일자리 호전은 언제

25~29세 청년 인구는 2021년 약 370만 명으로 증가하다가 2022년부터 빠르게 줄어들 예정이다. 2002년에 태어난 ‘월드컵둥이’들이 이 연령대에 들어가 있는 2027년 청년 인구는 약 300만 명으로 준다. 그럼 ‘월드컵둥이’들은 두 다리를 좀 펼 수 있을까.

‘월드컵둥이’가 태어난 2002년부터 초저출산(출산율 1.3 미만)이 시작됐다. 그때부터 매년 40만 명대의 아이들이 태어났다. 이들이 2021년부터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현재 대학 진학률 70%가 유지된다면 매년 30만 명 정도가 대학에 간다. 이들이 4~5년 뒤 졸업할 테니 2026년부터 한 해 30만 명대 대졸자가 노동시장에 진입한다. 부모세대가 만들어 놓은 대졸자 30만 명대 노동시장에 딱 맞는 대졸자 규모다. 그렇게 되면 청년 일자리 문제는 180도 역전돼 사람을 뽑지 못해 기업이 어려워지는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

통계상으론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82년생 김지영’으로부터 시작된 구직 인구의 누적은 ‘88 호돌이’로, 다시 ‘94년 개띠’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분전하는 ‘94년 개띠’들의 누적으로 청년 일자리의 인구 압박은 2030년이 돼야 해소될 예정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2030년까지도 연간 30만 개 대졸 일자리가 유지돼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2030년이 되면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고령자가 된다. 인구 고령화는 경제 성장을 둔화시킨다. 과연 대졸 신규 인력 30만 명이 그때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일본은 청년 구인난이 심각하다. 일자리는 많은데 뽑을 젊은이가 부족하다는 말이다.

일본 같은 일자리 풍년 힘들어

일본은 90년부터 대학 진학률이 갑자기 상승했다. 90년 28%에 불과하던 대학 진학률은 2000년 42%로, 2010년 54%로 증가했다. 대학 진학률이 우리와 같이 높아진 것은 아니지만, 청년 일자리의 미스 매치 현상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프리타’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고 일하는 ‘프리랜서’와 시간제 비정규직 ‘아르바이트’가 합쳐진 말이다. 2000년대 들어 미스 매치 현상으로 인해 자발적인 아르바이트를 선택한 일본 청년들을 부르던 말이다. 일본 총무성 노동력 조사에 따르면 2000년 이후 매년 180만~200만 명의 청년 프리타가 있었다.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우리 청년들의 상황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2015년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구직난을 겪던 상황이 이제는 구인난으로 바뀌면서 청년 일자리 상황이 호전됐다. 물론 프리타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비자발적 프리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일본 청년 일자리 상황의 변화는 세 가지 이유에 기인하다. 먼저 인구학적 원인이다. 91년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19세 인구는 202만 명에 달했다. 이 수가 2009년 122만 명, 2016년 119만 명으로 줄었다. 절반 수준으로 청소년 인구가 줄면서 대학 진학률이 높아졌어도 2010년 이후 대졸자 수가 줄기 시작했다. 인구 압박이 사라진 것이다.

둘째, 모든 청년이 대기업·공기업·공무원을 선호하는 우리와 달리 일본 청년들은 중소기업 취업을 꺼리지 않는다. 우리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차가 두 배가량 나는 반면, 일본은 80% 선이다. 셋째, 다른 나라가 따라올 수 없는 원천기술과 경쟁력 있는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일본 경제력이 튼튼하다는 점이다. 일본은 인구의 4분의 1이 고령자임에도 경제력이 유지되고 있다. 2013년 이후 일본은 매년 1.5~2.0%의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청년 일자리 문제 해법은

인구학에서 볼 때 가장 안정적 인구구조는 모든 연령이 비슷하게 분포된 모습이다. 인구 크기만이 아니라 대졸자와 같은 질적 측면도 고려해 인구가 연령별로 고르게 분포되면 인구가 주는 압박이 사라진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졸 인구가 매년 30만 명 정도가 되면 최소한 인구가 노동시장에 주는 압박은 사라지게 된다. 인구 압박이 사라지지 않으면 경제가 살아나더라도 청년 일자리 상황이 호전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이미 50만 명씩 배출되는 대졸 인구를 물릴 수도 없다.

청년을 위한 80만 개의 공공 일자리는 청년에게 숨 쉴 공간을 제공하고, 후속 세대에게 주어질 인구 압박을 제거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인구학적으로만 보면 해볼 만한 정책이다. 그런데 이 일자리는 반드시 한시적이어야 한다. 공공 일자리에 한 번 들어온 청년이 몇 년 뒤 다른 직장을 찾기보다 평생 남으려 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이들이 은퇴할 때까지 후속 세대에게 공공 일자리는 하늘의 별 따기가 된다. 공공 일자리 시장의 인구구조가 왜곡되기 때문이다.

그 사이 정부는 청년들이 해외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해외 일자리 사업이 있었지만, 없느니만 못했다. 청년들이 해외에 취업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과 자격을 높이는 교육·훈련을 내실화할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 취업할 때 리스크가 100이라면 정부가 제공하는 해외 일자리 리스크는 그보다 낮아야 한다. 청년 창업 지원도 더 현실적이 돼야 한다. 지금도 제도가 있지만 한 번 실패하면 신용불량자가 되고 만다. 창업한 청년이 실패해도 신용불량자가 아니라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단시간에 청년 일자리의 인구 압박이 제거될 수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청년 일자리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처방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2020년대 중·후반부터는 일본이 경험하는 일자리 호황의 시대를 우리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