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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호텔] 네덜란드 문화유산이 된 감옥호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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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달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은 하루를 머물러도 예술에 대한 목마름을 충족시키기 좋은 도시다. 반 고흐·램브란트 같은 기라성 같은 화가의 작품을 전시한 미술관·박물관이 도심에 옹기종기 모여 있고, 어디를 가도 감각적인 디자인이 돋보이는 편집숍이나 갤러리가 많다. 개성 넘치는 호텔도 많은데 지난해 여름에 묵은 로이드 호텔(Lloyd hotel & cultural embassy)은 여태 경험해본 잠자리 중 가장 기상천외한 공간으로 기억된다. 감옥을 개조한 호텔이어서다.

암스테르담 로이드호텔 #감옥·소년원으로 쓰이다 2004년 변신 #1~5성급 117개 객실 디자인 제각각

암스테르담 로이드호텔 1층 레스토랑. 음식 맛도 좋지만 세련된 인테리어와 가구, 조명 등을 보는 재미도 남다르다. 식당 뒤편엔 디자인 제품을 파는 편집숍이 있다. 최승표 기자

암스테르담 로이드호텔 1층 레스토랑. 음식 맛도 좋지만 세련된 인테리어와 가구, 조명 등을 보는 재미도 남다르다. 식당 뒤편엔 디자인 제품을 파는 편집숍이 있다. 최승표 기자

인천공항에서 자정에 출발한 KLM 비행기가 스키폴공항에 착륙한 시간은 오전 4시30분. 공항에 내리자마자 두 가지가 놀라웠다. 날이 너무 환해서, 그리고 예약한 택시가 전기차 테슬라 모델S이어서였다. 한국보다 위도가 높은 암스테르담은 하지(夏至) 때, 오전 5시15분 쯤 해가 뜨고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해가 진다. 이날이 하지 즈음이었다. 처음 상경한 시골아이처럼 테슬라 뒷자리에 앉아 고개를 두리번 대다 호텔에 도착했다.

1921년, 이민자를 위한 숙소로 지었다가 난민수용소, 감옥 등으로 쓰이다 2004년에 호텔로 재탄생했다. 최승표 기자

1921년, 이민자를 위한 숙소로 지었다가 난민수용소, 감옥 등으로 쓰이다 2004년에 호텔로 재탄생했다. 최승표 기자

호텔은 프론트데스크부터 독특했다. 사각형 작은 부스 안에 직원이 있었는데 호텔이 아니라 검문소 같은 느낌이었다. 호텔 구경은 미뤄두고 객실로 올라갔다. 온통 노란색 페인트로 칠한 객실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지만 쏟아지는 졸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객실 위쪽에 작은 창의 블라인드를 내렸다. 금방 잠에 들었다.
1시간 뒤 눈을 떴다. 샤워를 하고 1층으로 내려가 아침을 먹었다. 레스토랑은 그 자체로 훌륭한 디자인 카페처럼 보였다. 미술작품과 설치미술이 많았고, 테이블과 의자 모양도 제각각이었다. 다양한 빵과 햄, 치즈가 깔려서 든든히 아침을 먹었다. 개인적으로 호텔 조식을 평가하는 기준이 있다. 잘 구워진 바삭한 크로아상과 사과주스, 풍미 좋은 커피, 이 세 가지만 있으면 나머지가 부실해도 만족한다. 로이드호텔은 90점 이상 줄 만했다.

암스테르담 로이드호텔 1층 레스토랑. 음식 맛도 좋지만 세련된 인테리어와 가구, 조명 등을 보는 재미도 남다르다. 최승표 기자

암스테르담 로이드호텔 1층 레스토랑. 음식 맛도 좋지만 세련된 인테리어와 가구, 조명 등을 보는 재미도 남다르다. 최승표 기자

식사를 마치고 호텔 직원 제냐가 만났다. 호텔을 둘러보며 재미난 역사를 줄줄 들었다. 예전에 감옥이었던 건 알고 있었지만 호텔의 실제 역사는 그보다 훨씬 복잡했다. 호텔이 처음 건립된 건 1921년. 당시만 해도 유럽에서 남미나 아프리카로 배를 타고 이주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들이 장거리 항해를 떠나기 전 잠시 묵을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선사(船社)인 로열 더치 로이드가 항구에 만든 게 로이드 호텔이었다. 한데 호텔은 금세 부도났다. 2차 대전 시기에는 유대인 난민 수용소로 쓰이다가, 나치가 네덜란드를 점령한 뒤에는 감옥으로 용도가 바뀌었다. 종전 후부터 1989년까지 네덜란드 정부는 감옥과 소년원으로 사용했다. 이후 예술가들이 작업공간으로 쓰다가 2004년, 호텔로 재탄생했다. 세계적인 건축그룹 MVRDV를 주축으로 다양한 전공의 디자이너 50여명이 참여해 기상천외한 호텔을 만들었다.

로이드호텔 복도는 영화 촬영소로 쓰여도 될 것 같다. 감옥, 난민수용소 당시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최승표 기자

로이드호텔 복도는 영화 촬영소로 쓰여도 될 것 같다. 감옥, 난민수용소 당시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최승표 기자

이 건물은 2001년 네덜란드 국립유산으로 지정됐다. 그래서일까. 호텔은 객실 내부와 일부 공용공간을 제외하면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객실과 일부 공용공간을 제외하면 개보수를 최소화한 듯하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복도는 부러 옛 모습 그대로 남겨놓았다. 낡은 회색 타일과 다소 어두운 조명이 교도소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다니기에 불편한 구조도 일부러 고치지 않았다.

그랜드 피아노와 대형 테이블이 있는 스위트룸. [사진 로이드호텔]

사진 작품이 전시된 객실. [사진 로이드호텔]
독특한 인테리어의 로이드호텔 객실.[사진 로이드호텔]
독특한 인테리어의 로이드호텔 객실. [사진 로이드호텔]

객실 인테리어는 톡톡 튄다. 117개 객실 디자인이 모두 다르다. 객실 내부 색깔도 제각각이고, 구조도 모두 다르다. 내가 묵은 방처럼 한가운데 욕실이 있는 방이 있는가 하면, 그랜드 피아노가 있는 방, 유명 사진작가의 작품을 전시한 방도 있다. 제냐는 “로이드호텔은 세계 최초로 한 호텔 안에 1~5성급 객실을 모두 갖췄다”고 설명했다. 도미토리처럼 여러 투숙객이 함께 쓰는 방도 있고, 스위트룸도 있다.
8000권의 예술서적이 있는 도서관은 언제든 이용할 수 있다. 4층 도서관부터 1층 레스토랑까지는 중앙부가 뻥 뚫려 있고, 해가 잘 들도록 창을 길게 냈다. 2~3층 복도에는 예술작품도 전시돼 있다. 정확한 호텔 이름이 로이드 호텔 & ‘문화 대사관(Cultural embassy)’인 건 호텔 곳곳에서 다양한 문화, 예술 전시행사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4층 도서관에는 8000권 이상의 예술서적이 있다. 최승표 기자

4층 도서관에는 8000권 이상의 예술서적이 있다. 최승표 기자

그저 재미난 호텔이 아니라 사연 많은 문화유산, 박물관을 둘러본 느낌이었다. 호텔을 나와 해종일 암스테르담을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오후 9시 즈음 호텔로 돌아왔는데 여전히 하늘은 청청했다.
객실로 돌아와 욕조에 물을 받았다. 난생 처음 이용해본 샛노란 욕조에 몸을 담그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하룻밤을 더 묵으며 독특한 디자인 못지않게 호텔의 실용성과 편의성에 감탄했다. 호텔에 있어야 할 것은 다 있었고, 불필요한 건 하나도 없었다. 디자인호텔 답게 책상과 의자 등 모든 가구가 개성 넘치면서도 편리했고, 모두 다른 모양의 조명이 곳곳에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가구와 조명, 심지어 옷걸이와 전기 스위치까지 내로라하는 네덜란드 디자이너들이 손수 만들었단다. 오직 튀기 위해 잔뜩 멋을 부린 요즘의 디자인·부티크호텔과 달리 로이드호텔이 작품처럼 기억되는 건 그래서인 것 같다.
◇여행정보=한국에서 네달란드 암스테르담까지는 KLM네덜란드항공과 대한항공이 직항편을 운항한다. 로이드호텔은 암스테르담 스키폴공항에서 자동차로 약 20분 거리다. 호텔 인근에 리틀랜드(Rietlandpark) 전철역이 있어서 대중교통으로 어디든 다니기 편하다. 객실 요금은 최저 65유로(약 8만6000원) 선이다. lloydhotel.com.

2017년 여름에 묵은 객실. 조명, 가구, 인테리어 모두 기라성 같은 네덜란드 디자이너들이 작업했다. 최승표 기자

2017년 여름에 묵은 객실. 조명, 가구, 인테리어 모두 기라성 같은 네덜란드 디자이너들이 작업했다. 최승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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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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