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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 교수의 마지막 강의 "좋은 건축이 뭐냐 묻기 전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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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8일 정년퇴임한 서울대 건축학과 김광현 교수. "건축은 본래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라고 강조하는 그는 "단순하고 소박하다는 것은 그만큼 근본적이라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장진영 기자

지난 2월 28일 정년퇴임한 서울대 건축학과 김광현 교수. "건축은 본래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라고 강조하는 그는 "단순하고 소박하다는 것은 그만큼 근본적이라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장진영 기자

 지난달 22일 오후 5시. 서울대 미술관(MoA) 오라토리엄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정년퇴임을 앞둔 서울대 건축학과 김광현 교수의 마지막 강의였다. "대학 연구실이야말로 내 인생 최고의 사치"라고 말해온 그에게 마지막 강의는 그의 제자들이 마련한 자리였다. 그는 이 자리에서 "제자들과 함께 보낸 41년 8개월 24일이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41년 8개월 24일 강단생활 마무리하며 12권의 책 #『건축강의』,『건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 # 그의 마지막 강의 핵심 메시지

2월 28일  퇴임한 그는 최근 어느 때보다도 분주했다. 10권짜리 『건축강의』(안그라픽스)와 『건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뜨인돌)을 함께 펴낸 것. 40여년간 건축과 함께 씨름하며 배우고 질문하고 생각해온 것들을 12권의 책(출간 예정 포함)에 정리했다.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가 정년퇴임하며 "건축학에서 반드시 다뤄야 할 내용을 담고 싶다"며 집필한 10권짜리 건축강의(안그라픽스). [사진 안그라픽스]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가 정년퇴임하며 "건축학에서 반드시 다뤄야 할 내용을 담고 싶다"며 집필한 10권짜리 건축강의(안그라픽스). [사진 안그라픽스]

『건축강의』는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염두에 두고 20년 전에 기획한 것이다. "건축학에 기본이 되는 서적, 교재랄 게 별로 없는 게 늘 아쉬웠다. 그리고 가르치는 교수로서 점점 미안해지기 시작했다"는 그는 "건축학에서 반드시 다뤄야 하는 것들을 다루고 싶었다. 할 수 있다면 건축학 전체를 꿰뚫고, 건축학의 대계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으로 썼다"고 말했다.

 김광현 교수가 '국민건축교과서'를 소망하며 쓴 『건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뜨인돌).

김광현 교수가 '국민건축교과서'를 소망하며 쓴 『건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뜨인돌).

반면 『건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은 건축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국민건축교과서'로 쓴 두 권의 책 중 첫 권이다. 퇴임을 앞둔 그를 만난 기자가 그가 마지막 강의와 인터뷰에서 들려준 이야기를 정리했다. 『건축강의』와 『건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도 참고했다

좋은 건축이 뭐냐고 묻지 마라. 좋은 학교가 무엇인지 질문하라

"좋은 건축이 뭐냐고요? 우리는 이제 이 질문을 바꿨으면 해요. 좋은 건축을 묻지 말고, 질문을 좁혀서 좋은 학교가 무엇이냐고 질문했으면 해요. 그러면 좋은 건축이 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거든요. 아이들이 태어나서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보내는 곳이 학교입니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을 합치면 12년이에요. 평균 나이 84세로 계산하면 인생의 1/7을 학교에서 보내는 거죠. 여기에다가 어린이와 십대 청소년의 '감성'을 고려하면 그 시간의 중요성은 어마어마합니다. 그런데 학교처럼 늘 똑같은 방식으로 지어지는 건물도 없습니다. 모두 '판박이'처럼 획일적이고 경직돼 있어요."

"교실만 늘어놓는 게 학교 건축의 전부일 수는 없죠. 그렇게 중요한 공간을 지금처럼 내버려 두고 추상적으로 좋은 건축을 논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학교 건축에 대해 진지하게 돌아보지 않았다는 사실은 굉장히 부끄러운 일입니다. 교육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뒤따를 때 건축은 비로소 달라질 겁니다."   

학교 건축은 왜 바뀌지 않는 것일까?

 "우리가 공간을 통해 삶을 보고 이해하는 훈련이 안 돼 있어서 그래요. 공간이라는 게 '내 것'이라는 인식이 부족해요. 공간은 나와 관계없는 것, 남의 것인 줄 알아요. 공간이 왜 좋은지, 무엇이 좋은지 그런 생각을 해야 하거든요. 내 집 창문에 예쁜 블라인드나 커튼만 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그 창으로 밖에 무엇이 보이는지, 무엇이 있는지,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보아야 하거든요. 지금이라도 학교 교육에서 공간에 대해 배웠으면 합니다. 공간을 통해서 우리 삶을 들여다보는 법을요."

한국의 많은 공공건축물은 왜 재미없게 지어졌을까?

"치안센터, 주민센터, 경로당, 도서관, 어린이집, 소방서, 경찰서, 학교…. 많은 공공건물이 딱딱하고 재미없게 지어진 게 사실입니다. 공공부문에 투자되는 건축 공사비 연간 20조 원이나 드는데 그 중요성은 간과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는 좋은 공공건축물을 지으려 하기보다는 가장 싼 예산으로 만들려고만 해왔죠. 어떤 수준으로 지어야 한다는 분명한 목표가 부족했고, 공무원들이 국민을 대신한 건축주로서 책임을 방기하거나 외면한 겁니다."

 "작은 공공건축물을 짓는 데 몹시 나쁜 제도가 있어요. 전자입찰이라는 겁니다. 컴퓨터 상에서 정말 임의로 선택된 건축가에게 그 건물 설계를 맡기는 방식입니다. 작은 공공건축물의  80%가 설계안도 받아 보지 않고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임의로 설계자를 선정하죠. 주민들을 늘 가까이 대하는 작은 공공건축물은 그저 '저비용'과 허울좋은 ‘공정’에만 초점을 맞춰 지어져 왔죠." 

"2011년 '대한민국 공공건축상'을 받은 작은 건물이 하나 있어요. 부산 문현동의 '푸른솔 경로당'이에요. 소방도로 개설공사를 하고 남은 구유지의 자투리땅 65㎡에 지은 정말로 작은 경로당입니다. 심사를 위해 제가 직접 현장 방문을 해보니 꽤 높은 산동네였고, 재료도 고만고만한 건물이었어요. 그런데 주민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 작은 땅을 어떻게든 살려내려 동분서주했던 공무원의 의지가 없었다면 절대 가능하지 않을 집이었습니다. 이 조그만 집을 정감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던 건축가의 마음이 보였죠."

"반드시 값비싼 재료를 써서 비례를 잘 맞추고 정교한 시공을 해야만 좋은 건축물이 되는 게 아닙니다. 지역민들의 생활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파악하고 그 속에 숨어 있는 문제를 풍경 속에서 풀어낼 때 그 건물은 아름다워집니다."

건축은 모두의 기쁨이다

"가장 소중한 건축의 본질은 기쁨이예요. 기쁨이야말로 건축물을 사용하거나 보는 사람들과 건축가를 이어주는 접점입니다. 저는 건축이 주는 깊이와 매력은 바로 이 기쁨에 있다고 생각해요. 건축에서 기쁨은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의 반복되는 일상 속에 있어요. 지속해서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김광현 교수가 설계한 '농심어린이집'. 그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체험하는 기쁨이야말로 건축물을 사용하거나 보는 사람들과 건축가를 이어주는 접점"이라고 말한다. [사진 김광현]

김광현 교수가 설계한 '농심어린이집'. 그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체험하는 기쁨이야말로 건축물을 사용하거나 보는 사람들과 건축가를 이어주는 접점"이라고 말한다. [사진 김광현]

김광현 교수가 설계한 농심어린이집의 내부. [사진 농심닷컴 블로그]

김광현 교수가 설계한 농심어린이집의 내부. [사진 농심닷컴 블로그]

농심어린이집 [사진 김광현]

농심어린이집 [사진 김광현]

"몇 년 전 '농심 어린이집'을 설계했습니다. 직원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집인데요, 설계자로서 특히 보람 있었던 것은 이 집에 대한 직원들의 자부심이 아주 높다는 것이었어요. 원장 선생님 말씀으로는, 아이를 맡긴 직원들이 아이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셔다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어린이집'이라고 자랑을 한다고 해요. 이 말이 중요해요. 직원들의 자랑이 맞건 틀리건, 실제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해준다면 이 집은 일단 성공한 것이거든요. 건축가로서 가장 듣고 싶고 들어야 할 말은 자기가 설계한 집을 통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아주 행복해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공동의 기쁨을 담는 그릇이 건축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건축의 기쁨은 많은 사람이 나누게 돼 있죠. 어떤 건물에 사는 사람이나 그곳에 찾아오는 사람에게 그 건물이 조용한 기쁨을 준다면 그 건물은 모두의 건물이 되는 거예요. 만약 '건축은 예술'이라고 말한다면, 그 예술은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사회적 예술'이라는 뜻입니다."

신석기시대의 가장 유명한 기념비 중 하나인 영국의 스톤헨지. 김광현 교수는 "사람이 이 땅에 구조물을 세우는 이유를 생각할 때 스톤헨지를 떠올린다"고 말한다. 스톤헨지는 건축이 지닌 공동의 가치(공동성)를 실현한 최초의 공공건물이라는 점에서다. [사진 김광현]

신석기시대의 가장 유명한 기념비 중 하나인 영국의 스톤헨지. 김광현 교수는 "사람이 이 땅에 구조물을 세우는 이유를 생각할 때 스톤헨지를 떠올린다"고 말한다. 스톤헨지는 건축이 지닌 공동의 가치(공동성)를 실현한 최초의 공공건물이라는 점에서다. [사진 김광현]

누구나 건축가다  

 "'누구나 건축가다. 모든 것이 건축이다.' 이 말은 오스트리아 건축가 한스 홀라인이 1968년에 한 말입니다. 대학 때 이 말을 듣고 놀랐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정말 이 말이 맞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건축은 따로 배우지 않더라도 인간의 DNA에 새겨져 있거든요. 건축가라는 직업이 따로 생기기 이전부터, 인간은 이미 그 존재의 본질에서 건축가라는 뜻입니다. 건축주, 건축가, 시공자, 소유자, 이용자 등 저마다 건축에 관여하는 사람도 많고 각기 건축에 대한 생각도 다릅니다. 만약 건축가만이 건축에 대해 생각하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는 아파트를 '상품'으로만 보았다

" 이상하게도 우리나라는 이제까지 아파트 단지의 계획과 설계에서 한 번도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정체를 제대로 물은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수많은 아파트를 지었으면서도 우리나라가 앞으로 어떤 공동체의 모습을 가질 것인가를 진지하게, 실효성 있게 물어본 예를 찾기 힘듭니다. 전국의 아파트가 똑같은 이유가 있어요. 아파트를 매매용 상품으로 간주했기 때문입니다. '집=부동산'이라는 인식만 있었던 거예요. "

진실한 건축은 있다 

노르웨이 헤드마르크 박물관에 있는 농가의 와인병. 김광현 교수는 "창가의 이 빈 병이 건축에 관한 모든 것들을 말해준다"고 말한다. 이 병은 혼자 있지 않고 사물들과의 관계와 풍경 안에 존재한다는 점에서다.

노르웨이 헤드마르크 박물관에 있는 농가의 와인병. 김광현 교수는 "창가의 이 빈 병이 건축에 관한 모든 것들을 말해준다"고 말한다. 이 병은 혼자 있지 않고 사물들과의 관계와 풍경 안에 존재한다는 점에서다.

 "저는 진실한 건축이 분명히 있다고 믿어요. 진정성이 중요한 이유죠. 그런데 그 진정성은 대단한 게 아니에요. 의외로 삶의 아주 작은 부분에 표현된 게 많죠. 그런 것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몰두해야 합니다. 건축은 물질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동시에 다뤄요. 건축에서 다루는 물질은 대단한 것이 아니에요. 흙, 나무, 벽돌, 돌, 철골, 콘크리트, 유리, 타일, 철판과 같은 것들이에요. 흙은 어떻게 바를까, 나무를 어떻게 이을까, 벽돌을 어떻게 쌓을까…. 이런 걸 고민합니다. 바로 이것, 어떤 물질과 함께 생활을 어떻게 성실하게 다루느냐에 건축의 진정성이 있죠."

케냐 마히가 고등학교가 보여준 건축의 힘   

케냐 마히가 호프 스쿨에서 명물이 된 빗물 코트. 농구장 위에 지어진 지붕이 빗물을 받아 정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지역 주민의 삶을 배려한 건축가의 뜻이 이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사진 노빌리티 프로젝트]

케냐 마히가 호프 스쿨에서 명물이 된 빗물 코트. 농구장 위에 지어진 지붕이 빗물을 받아 정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지역 주민의 삶을 배려한 건축가의 뜻이 이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사진 노빌리티 프로젝트]

"아프리카 케냐의 산간지역에 '마히가 호프'라는 고등학교가 있어요. 1500명의 주민이 사는 작은 마을인데, 이곳 학교에는 물이 귀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2010년 국제 비영리기구인 노블리티 프로젝트에서 해결책을 제안했어요. 지붕을 따라 설치한 홈통을 한곳으로 모아 거기 고인 물에 자외선 처리를 해서 깨끗한 물을 얻는다는 구상이었죠. 농구장에 지붕과 빗물 저장고를 교사, 지역, 주민 그리고 건축가가 함께 만들었죠. 이 물이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그 결과 전국 600개 학교 중 가장 성적이 낮던 이 학교가 1년 반만에 가장 우수한 학교가 되었다고 합니다. 비가 내리던 날 아이들이 환호하며 모인 사진을 보면 정말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마히가 고등학교를 바꿔놓은 건축가가 그렇게 했듯이 가까운 곳을 눈여겨봐야 해결책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건축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건축가 100명 중 95명은 바로 이런 건축을 해야 해요. 건축의 요소 하나하나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성찰을 했으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그게 진정성이죠. 그런 성찰 없이 오직 아름다움과 실용성만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은 바뀌어야 해요."

건축학도여, 관찰하고 해석하라

"카메라를 들고 먼 곳을 찾아가거나 책을 줄 치며 공부하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그 전에 주변을 관찰하고 자신의 눈으로 해석해야 해요.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눈으로 봐야 합니다. 마히가 고등학교를 바꿔놓은 건축가가 그렇게 했듯이 눈으로 봐야 해결책이 보이는 겁니다. 자기 눈으로 관찰하고 해석하는 것, 이것보다 더 중요한 공부는 없습니다. 대학 1학년 때는 아무리 보려고 해도 잘 안 보일 거에요. 그래도 꾸준히, 20년~30년 해야 합니다."

건축은 감상하는 게 아니라 체험하는 것

"사진만 보고 '예쁘다, 멋지다'하는 것은 건축 공부가 아닙니다. 건축을 알려면  먼저 몸을 그 안에 둘 줄 알아야 합니다. 몸이 먼저 알아차리는 거죠. 그래서 내가 몸을 움직이는 범위 안에서 일상생활을 관찰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건축은 생활 속에서 체험되는 것이거든요. 그러면 종이, 나무, 벽돌, 빛, 콘크리트 등 이런 요소들도 이전과 다르게 느껴집니다. 건축은 우리 삶의 전체적인 모습이에요. 궁극적으로 건축을 배우는 것은 인간이 어떻게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건축을 통해 생각하는 것입니다."

'환상의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를 있게 한 것은?

"많은 사람이 가우디를 '환상의 건축가'로 알고 있습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가우디가 만들기 이전에 사회가 그 가치를 먼저 알아주고 만든 것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이 건축물은 개인의 환상을 실현해주려고 만든 게 아니라 사회가 그가 그 건축을 만들 수 있게 해줬다는 거죠. 우리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지은 건축가는 잘 알면서도 그의 건축에 도시의 미래를 걸었던 그들의 안목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우디의 계획안을 보며 미래를 생각하고, 바로셀로나라는 도시를 생각한 사람들입니다. 건축은 짓는 게 아닙니다. 건축은 사회 모두가 자라게 하는 것이에요. "

내가 존경하는 건축가, 루이스 칸 

 "제가 가장 존경하는 건축가가 루이스 칸(1901~1974)입니다. 건축의 진실성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죠. 칸은 모든 사람에게 속하는 가치를 드러내는 일, 그게 건축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시설(Institution)'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했죠. 한마디로 현대건축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주택이나 학교, 창고 등 인간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만든 모든 시설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본 거죠. 칸은 "정부 시설이건 가정 시설이건 배움의 시설이건 인간의 시설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감각 이상으로 건축가가 전문가로서 할 수 있는 더 큰 일은 없다"고 했어요."

건축은 우리의 삶 그 자체다

"건축이 가르치는 바는 참 많아요. 건축에는 문화, 공학, 예술, 산업, 기술, 환경, 경제, 생활, 여가, 전통, 공동체, 법과 제도, 공공성 등 여러 문제가 얽혀 있어요.  어떤 공학도 이렇게 광범위하게 국민의 삶에 관여하고 있지 못하죠. 이 정도라면 건축은 우리의 삶 그 자체라고 할 만합니다. 건축을 배우는 이유는 단지 편리한 집을 짓는 방법을 익히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건축을 통해 세상을 보기 위해서죠."

앞으로의  계획을 그에게 물었더니 "지금까지 건축학자로서 쌓아온 지식을 30대의 건축가들과 나누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제자들과 만나 이야기해보니 대학을 졸업하고 건축 설계사무소에서 일하며 '진짜 공부'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는 30대 젊은 건축가들이 적잖아요. 고민도 많고 욕심도 많은 30대들에게 건축을 가르치며 또 그들에게 배우고 싶습니다. 그러면 우리 사회 건축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이제  숨을 고르고 '나무처럼 자라는 건축'을 위해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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