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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임문영의 호모디지쿠스

인터넷 달군 평창 인면조·컬링, 신비하고 모호한 놀이 코드로 통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인터넷에서는 모든 것이 놀이 소재다. 게임, 연예, 스포츠는 물론이고 진지한 영역이라고 할 정치, 역사, 과학도 놀이감이 된다. 네티즌들은 늘 새롭고 기발한 놀이감을 찾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관심있는 것은  ‘모호하고 환상적인 어떤 것’이다.

모호하다는 점에서는 ‘거시기’라는 전통적인 말이 있다. 거시기를 설명하라고 하면 참으로 거시기 하다. 국어사전에는 ‘이름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 곤란한 사람 또는 사물을 가르키는 대명사’라고 되어 있다. 그야말로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인터넷에서는 거시기라는 단어보다 ‘아햏햏’라는 말이 한동안 시대를 풍미했다.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보았을 때의 감탄사’라고 사전에 설명돼 있지만 그야말로 글자모양도 이상하고, 그 느낌 자체도 설명이 애매하다. ‘아햏햏’는 이 의미를 깨닫기 위해 수행하는 ‘햏자’부터 이를 깨닫는 행위인 ‘득햏’까지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했고 ‘뷁’이라는 관련어까지 탄생시킨 대표적인 인터넷 놀이가 됐다.

뭔가 이상하고 신비하면서도 설명하기 모호한 그 이미지를 네티즌들이 이번 평창올림픽에서도 찾아냈다. 바로 인면조다. 개막식에서 등장한 많은 캐릭터 중에서 인면조는 하얗고 무표정한 얼굴에 커다란 새모양의 몸, 머리에 두건까지 쓴 색다른 이미지로 유독 화제가 됐다. 인터넷 용어로 이를 표현하는 것은 ‘아스트랄하다’가 적당할 것 같다. 4차원의 신비롭고 이상한 느낌을 뜻하는 이 말 역시 참 인터넷 세상다운 표현이다.

인면조는 그 ‘아스트랄’한  표정을 통해 평창 올림픽의 신 스틸러(어떤 화면속에서 느껴지는 존재감)가 됐다. 새로 만든 캐릭터가 아니라 우리 역사에서도 여러번 등장한다는 사실에 놀란 사람이 많았다. 인터넷에서는 순식간에 인면조를 다양한 이모티콘으로 변형한 제안이 나오는가 하면 인면조와 수호랑, 반다비를 등장시킨 환상적인 팬픽(팬심으로 그린 그림)도 인기를 얻었다.

네티즌들은 “인면조가 88올림픽때 성화에 불타죽은 비둘기의 복수를 하러 왔다”면서 괴기스러움을 갖고 놀리면서도 마치 선비모습과 비슷하다며 ‘유교드래곤’이라는 애칭을 붙여주기도 했다. 이낙연총리의 새해 연하장 이미지에 등장하기도 했다.

사실 원래 평창올림픽의 마스코트는 수호랑이고 패러랠올림픽의 마스코트는 반다비이다. 하지만 인면조가 이들을 넘어서 인기를 끌자 섭섭해 하는 수호랑과 반다비 그림이 장난스럽게 등장하기도 했다.  대신 네티즌들은 수호랑의 귀여운 춤사위를 찾아냈다. 인터넷에는 범상치않은 수호랑의 춤추는 모습이 직캠(직접찍은 영상)으로 수없이 돌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모호하고 신기한 백미는 바로 컬링이었다. 열심히 바닥을 닦는 낯선 모습, 사뭇진지한 선수들의 클로즈업된 표정이 역시 ‘신기하고 이상’해 관심을 끌기 시작하더니 선수들의 외롭고 힘겨운 훈련 사실과 끈끈한 팀웍이 알려지며 최고의 화제가 됐다. 김영미선수 이름을 딴 ‘영미야!’ 움짤(움직이는 그림)이 회자됐고 네티즌 감탄사 용어인 ‘헐~’이 컬링에서 ‘허리(hurry)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동질감까지 얻어 인기는 더욱 치솟았다.

모호함을 즐기고 이상함에 빠져드는 이런 인터넷 문화코드는 엽기, 괴짜, 사이버펑크라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그 역동적인 힘은 새로움과 신기함을 찾아내 더욱 다양한 표현방식, 한계를 뛰어넘는 주제, 독창적인 시각을 발전시키는 아방가르드 역할을 해왔다. 그래서 호모 디지쿠스는 본질적으로 호모 루덴스(Homo Ludens : 유희의 인간)이다.

임문영 인터넷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