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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차거부·불친절 신고해도 10명 중 9명은 증거불충분

중앙일보

입력

지난 달 14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뒷골목에 ‘빈차’ 표시등을 끈 택시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는 모습. 택시가 장시간 ‘빈차’ 표시를 끈 채 대기하고 있으면 과태료를 받을 수 있다. 김민상 기자

지난 달 14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뒷골목에 ‘빈차’ 표시등을 끈 택시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는 모습. 택시가 장시간 ‘빈차’ 표시를 끈 채 대기하고 있으면 과태료를 받을 수 있다. 김민상 기자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고모씨(28)는 지난 2월 12일 서울시로부터 “교통 불편 민원신고가 (불문)으로 처분됐습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택시 승차거부를 신고한 지 넉 달 만에 받은 결과다. ‘불문’은 택시기사에게 승차거부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의미다. 고씨가 "승차거부가 분명했다"며 담당 공무원에게 이유를 물었지만 “구체적 증거가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서울시가 5년 만에 택시요금 인상을 앞두고 택시기사 승차거부 뿌리 뽑기에나섰지만, 민원 신고가 행정처분으로 제대로 이어지지 않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2017년 택시 관련 교통 불편 민원 접수는 1만8651건이다. 이중 승차거부로 인한 민원은 5121건으로 불친절(7133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이 같은 민원신고의 90%는 ‘증거불충분’으로 행정처분을 받지 않았다. 박병성 서울시 택시정책팀장은 “행정처분을 위해서는 스마트폰으로 기사와의 대화 내용을 녹취하거나 택시 안, 택시 주변 상황을 영상 촬영해 증거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승차거부 신고는 120 다산콜센터를 통해 할 수 있다. 신고인 인적사항, 위반 일시ㆍ장소, 차량 번호, 회사명, 운전자 성명과 위반내용 등이 필요하다. 고씨는 “주로 밤에 승차거부가 많은데 택시가 급출발하면 차량번호를 기억하기도 어렵고 사진 찍을 수도 없다. 녹취나 동영상 촬영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긴 민원처리 기간도 문제로 지적된다. 접수된 민원은 택시 차고지가 위치한 자치구로 이관돼 자치구 교통위원회가 처리한다. 택시기사가 위반행위를 인정하면 10일 내 민원처리가 끝나지만 인정하지 않는 경우 자치구 심의위원회를 거쳐야 한다. 자치구 심의위원회는 한 달에서 두 달 정도 시간이 걸린다. 한 택시기사는 “승객이 한두 명도 아니고, 몇 달 전 승차거부 상황을 기억해내 진술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공학과 교수는 "승차거부나 불친절 같은 서비스 문제를 소비자에게 직접 증명하라는 건 행정 편의주의"라며 "승차거부나 불친절 문제를 일으키는 택시 기사들이 어쩌다 한 번 그러는 경우는 드물다. 같은 기사가 일정 기간에 동일한 이유로 신고가 누적된다면 시민이 증거자료를 제출하지 않아도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는 지난달 26일 ‘원 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도입해 승차를 한 번이라도 거부하면 최소 10일 이상 자격을 정지하겠다고 밝혔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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