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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블랙이글스 싱가포르 사고 원인은 조종사 실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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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국제에어쇼에 참가한 우리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 소속 초음속 항공기 한 대가 활주로 이탈 사고가 났다.[사진 연합뉴스]

싱가포르 국제에어쇼에 참가한 우리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 소속 초음속 항공기 한 대가 활주로 이탈 사고가 났다.[사진 연합뉴스]

지난달 6일 싱가포르 국제에어쇼에 참가한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 소속 항공기 한 대가 활주로를 이탈하는 사고가 있었다. 2일 복수의 군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사고 원인은 조종사 실수라는 중간 조사결과가 나왔다. 이에 대해 군 당국은 “아직 조사중에 있어 확인하기 어렵다”며 신중한 입장을 내놨다.

공군 특수비행팀 항공기 화염 발생 #이륙 실패하며 활주로 옆에 전복 사고 #사고기 조종사 현지에서 과실 인정해

공군 조사단은 현지에 도착한 뒤 이틀만인 지난달 9일 비행 재개를 결정했다. “사고기를 제외한 8대는 비행해서 복귀하는 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며 “14일 한국으로 귀국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앞서 공군은 사고 당일 이성용 참모차장을 본부장으로 대책본부를 구성해 사고 경위와 피해 여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우선 사고 기종과 동일한 T-50A/B 계열 항공기 비행을 전면 금지했고, 싱가포르 에어쇼에서 예정됐던 블랙이글스 곡예비행도 취소했다.

조사단의 비행 재개 결정이 있었지만 사고 항공기는 파손이 심해 기체를 분해한 뒤 포장해 민항 화물기 편으로 국내로 이송했다. 사고 당시 기체가 뒤집힌 채 곧바로 불길에 휩싸였고 화재진압 차량이 출동해 진화했다. 조종사는 사고 직후 탈출에 성공했고 경미한 부상을 입어 현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지난해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 2017(서울 ADEX 2017)'에서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 이글'이 화려한 곡예 비행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 뉴스1]

지난해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 2017(서울 ADEX 2017)'에서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 이글'이 화려한 곡예 비행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 뉴스1]

지난 2012년 11월 15일에도 블랙이글스 T-50B 항공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다. 블랙이글스가 2009년 서울에어쇼부터 기종을 T-50B으로 교체한 뒤 발생한 첫 사고였다. 공군은 사고 보름 뒤인 30일 정비불량이 사고 원인이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하며 12월1일부터 비행을 재개한다 밝혔다. 당시 사고기 조종사는 이륙 직후 상승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조종간을 최대한 당겼으나 고도 약 3000피트(약 900m)에서부터 기수가 급격히 강하하면서 추락했다. 조사단은 사고현장 영상기록과 블랙박스 데이터분석 등을 분석한 결과 정기점검 과정에서 점검 후 뽑아야할 차단선을 뽑지않아 수평날개를 조종할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차단선을 뽑지 않은 상태로 모의실험을 해본 결과 동일한 현상이 발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012년 사례와 비교하면 이번에는 비행 재개가 빨리 이뤄졌다는 분석이다. 사고 직후 사고기 조종사가 비행 조작 실수를 스스로 인정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지적이다. 군 관계자는 “사고기 조종사는 공군 조사단이 도착하자 본인 과실을 인정했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사고가 발생하면 비행 금지 조치를 결정하지만 작전에 차질이 없도록 필요한 점검과 조치를 거쳐 비행을 재개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현역 공군 조종사들도 조작 실수 가능성을 지적했다. A 대령은 “사고 영상만 봐서는 다 알 수 없다”면서도 “활주로 주행 시 발로 작동하는 페달로 브레이크를 작동하거나 이동 방향을 조작하는데 이때 실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B 중령은 “평소 숙달 훈련을 반복해 실수 가능성이 작은데 아마도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실수했을 것”이라며 “페달 조작 실수에 앞서 다른 실수가 있었거나 오작동이 발생해 심리적으로 압박했을 것 같다”며 선행요인 가능성도 지적했다.

사고 당시 영상을 보면 이륙을 시도하던 사고기가 속도를 줄이며 멈추는 듯 보이다가 옆으로 기울어 넘어졌다. 블랙이글스 항공기 3대가 이륙에 성공해 활주로를 떠난 직후였다. B 중령은 “이륙을 시도할 때 애프터 버너 작동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때 이륙을 멈추려면 브레이크를 양쪽 모두 작동시켜야 하는데 한쪽만 작동했다면 이번 사고처럼 항공기가 옆으로 기울어 넘어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애프터 버너(After Burner)는 제트엔진의 터빈 뒤쪽에 설치된 연소 장치로 이륙과 상승 등 추력을 높여 속도를 높일 때 작동시킨다.

지난 2008년 공군 F-5E 전투기가 추락해 소방관이 불을 끄고 있다. [사진 웅앙포토]

지난 2008년 공군 F-5E 전투기가 추락해 소방관이 불을 끄고 있다. [사진 웅앙포토]

조종사 과실에 무게가 실리지만 사고기 조종사가 스스로 과실을 인정한 부분은 용감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C 중령은 “비행 과정에 워낙 많은 절차가 이뤄지다 보니 나중에 ‘기억 못한다’고 변명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실제로 사고 직후 당황하면 본인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비행 조작을 위해 메뉴얼을 모두 암기하지만 실수를 막기 위해 가지고 탑승한다”며 “그래도 사람이다 보니 실수 가능성을 우려해 항상 조심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연히 조사과정에 본인 과실을 인정해야 한다”며 “특별히 높게 평가할 것도 없다”는 반대 목소리도 있었다.

조종사들은 심리적 압박을 크게 받는다고 말한다. 본인 과실이 드러날 경우 진급 제한 등 불이익도 예상되기 때문이다. 또한 사고 발생 자체가 가져오는 불안감도 크다. 지난 2006년 5월 5일에는 어린이날 행사에서 참가했던 블랙이글스 항공기 A-37가 비행장 활주로에 추락해 조종사 1명이 사망했다. 당시 함께 비행했던 동료 조종사는 이때 충격을 받고 바로 전역 한 뒤 민간항공사로 이동했다. 2012년 사고의 경우 해당 정비사의 상관인 D 준위(51)가 후배 실수에 대한 자책감을 견디지 못하고 사고 조사 발표 직전인 그해 11월 27일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A 대령은 “사고조사는 엄격하게 한 뒤 재발 방지를 세워야 한다”면서도 “공군 블랙이글스가 국가 위상을 높이고, T-50 수출에도 기여하는 만큼 비난보다는 격려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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