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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임마누엘 칼럼

한·일, 동중국해 유조선 침몰사고에 함께 대처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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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지구경영연구원 원장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지구경영연구원 원장

지난 1월 동중국해에서 일어난 선박사고는 환경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파나마 선적의 유조선이 중국 화물선 ‘창펑수이징’호와 충돌해 독성 유해 물질인 콘덴세이트(휘발성 액체탄화수소)가 100만 배럴 가까이 유출됐기 때문이다. 이 위험한 화학 물질은 사고 해역인 동중국해를 넘어 이동하면서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8년 전 멕시코만에서 발생해 아직도 문제가 남아 있는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의 딥 워터 호라이즌 원유 시추 시설 붕괴 사건 다음으로 큰 피해를 낼 수 있는 참사다. 생태계 파괴 측면에서 볼 때 동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한 최악의 위험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선박 사고로 독성물질 대량 유출 #한국·일본 해역에 큰 피해 우려 #두 나라는 함께 대응기구 만들고 #다른 사안 협력 모델로 활용해야

이번 사고가 지구 온난화에 따른 해수 온도 상승, 산성화 및 과도한 조업으로 인한 해양 생태계 파괴 등과 맞물리면 우리에게는 대재앙이 될 수 있다. 동중국해와 인접해 있는 한국과 일본이 보다 적극적으로 협력적 대응 체계를 구축하고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처럼 절박한 필요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일본은 역사 문제와 관련한 최근의 대립 양상 때문에 협력에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서둘러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오염된 수산물과 물로 인해 건강상의 심각한 위험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한국 제주도와 일본 후쿠오카 지역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양국은 유출된 독성 물질 제거와 생태계 복원 방법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그 과정은 새로운 기술 개발에 대한 요구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양국 정부는 하나의 팀처럼 일하면서 국민에게 사태의 진행 과정을 정확히 알려야 한다.

우선 한국과 일본은 이번 사고를 처리하기 위한 공동의 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 그렇게 꾸려진 기구는 향후 동아시아 지역 내 또 다른 환경 문제에 대응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양국이 함께 만든 기구는 환경 정책과 관련해 양국의 중앙 및 지방 정부 간 협력을 촉진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임마누엘 칼럼 3/2

임마누엘 칼럼 3/2

두 나라는 위험 예측과 분석에 과학적인 수단을 총동원하고 그 결과를 전 세계에 공유하는 신속하면서도 체계적인 활동을 해나가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다른 나라들의 협력도 중요하다. 딥 워터 호라이즌 사고를 겪은 미국의 경험은 한국과 일본이 복구 계획을 세우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는데, 2010년 미국 대통령 정책자문위원회는 향후 유류 유출이 지역 사회 및 생태계에 미치는 환경 영향에 대응하기 위한 혁신적 방안을 제시했다.

두 나라는 정부와 민간의 연구자와 산업체의 전문가들을 이번 사고 대응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 작업은 차후에 유류 운반선 운항에 대한 국제적 규제 강화나 항해 위험 해역 예측 프로그램 개발과 같은 보다 큰 그림의 공조로 이어질 수 있다. 또 수질 및 대기질 평가와 장기적 생물 모니터링을 위한 환경 평가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제안처럼 한·일 두 나라가 공동의 대응 프로그램을 만들면 이는 대기 오염을 비롯한 동북아 지역의 다른 환경 문제에 대한 협력으로 확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양국 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협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특히 두 나라는 점차 증가하고 있는 해양 사고 위험성에 대한 예측과 그에 따른 항해 통제 방법 개선으로 논의를 확대하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한다.

양국의 대학·연구기관·비정부기구(NGO)·시민 간의 협력을 강화하고 조직화해 이러한 대규모 해양 사고 대응에 필요한 장기 과제들을 함께 해결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한 피해에 노출될 우려가 큰 후쿠오카와 제주도 사이의 긴밀한 교류관계 구축도 고려해 볼 수 있다.

피해 지역을 재건하고, 생태계가 파괴된 지역의 어부를 돕는 노력도 따라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예산은 물론이고 도덕적 용기와 손해 감수의 정신도 요구된다. 이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한국과 일본이 적극적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 이번 동아시아 지역 생태계 복원을 위한 싸움에서 두 나라가 함께 보여주는 용기는 다른 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칠지 모를 일이다.

양국 협력은 동북아 안보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도록 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우리는 군사적 안보 못지않게 환경 안보, 식품 안보도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번에 불거진 환경 문제에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얼마만큼 공조하는 태도를 보이느냐는 양국의 잠재적 협력 가능성을 가늠해 볼 잣대가 될 것이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지구경영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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