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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면서도 낯선 … 세상 풍경이 달리 보이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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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풍경화는 우리 마음이 꿈꾸는 것들을 돌아보게 한다. 설종보 ‘첫눈’(27×27㎝). [사진 선화랑]

풍경화는 우리 마음이 꿈꾸는 것들을 돌아보게 한다. 설종보 ‘첫눈’(27×27㎝). [사진 선화랑]

이것은 누군가의 꿈일까, 아니면 추억의 한 장면일까. 작은 마당이 보이는 기와집 마루 끝에 네 가족이 서서 눈 내리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마당의 장독대 항아리 뚜껑에도, 작은 꽃나무에도 소복하게 눈이 쌓이고 있다. 설종보(53) 작가가 화폭에 담아낸 ‘첫눈’(2017) 풍경이다. 흰 눈이 솜이불처럼 세상을 덮는 순간, 화폭에서 따스한 사연이 새어 나올 분위기다. 작가는 그림을 통해 그 풍요로웠던 시간을 기억하느냐고 묻는 듯하다.

선화랑 ‘2018 예감전’ 10일까지 #설종보·홍푸르메·김민주 3인3색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2018 예감전’이 열리고 있다. 설종보(53), 홍푸르메(52), 김민주(36) 등 이름이 낯선 작가들의 흥미로운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자리다. 선화랑은 앞으로 활동이 주목되는 작가들을 선정해 소개하는 ‘예감전’을 열어 왔다.

올해 전시의 주제는 ‘재해석된 풍경’. 풍경이라는 주제 아래 각기 자신만의 화풍과 이야기를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작가들을 내세웠다. 올해는 작가의 나이를 제한하지 않고, 전시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작가 수를 3명으로 제한한 것이 특징이다.

이중 전시장 1층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작품이 바로 설종보 작가가 그린 회화 20여 점이다. 친근하고 푸근한 풍경이 단숨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장독대·마당·빨랫줄·꽃·가족·눈·자전거·나무·강아지 등 어린 시절 썼던 일기장에서 건져 올린 듯한 디테일이 눈에 띈다.

언뜻 보면 사실적인 듯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판타지’에 가까운 풍경이다. 부산 출신인 설 작가는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옛 공간에 대한 기억과, 지난 10여년간 강원도·제주도 등을 오가며 스케치한 풍경을 파랑과 초록, 노랑 등 대담한 색채로 재현했다. 파란 하늘의 보름달과 뭉게구름은 더욱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설 작가는 “내 그림의 출발점은 나 자신과 주변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풍경의 공간은 시간이 지나며 변하지만, 공간에 대한 기억은 잊히지 않고 남아 있다”고 말하는 그는 “그곳에서 지속되는 삶의 이야기를 그려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원혜경 선화랑 대표는 “설 작가의 풍경에서 가장 중요한 디테일은 사람”이라며 “사람에 무게를 실은 만큼 찬찬히 볼수록 빠져들게 하는 감성의 힘이 크다”고 말했다.

홍푸르메 ‘At This Moment’(71×140㎝). [사진 선화랑]

홍푸르메 ‘At This Moment’(71×140㎝). [사진 선화랑]

2층 전시장에서 만나는 작품은 홍푸르메 작가의 산수화다. 2012년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포스터로도 친숙한 그는 ‘빛의 화가’로 불린다. “빛이 없으면 볼 수 없다. 어둠이 없으면 빛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작가는 대담한 먹선의 농담(濃淡) 조절로 무엇보다 ‘빛’을 드러내는 작업에 몰두해왔다.

김민주 ‘휴가’ (休家, 130×157㎝). [사진 선화랑]

김민주 ‘휴가’ (休家, 130×157㎝). [사진 선화랑]

3층에서 작품을 선보인 김민주 작가는 선화랑 원 대표가 작가의 졸업전(서울대 동양화과 학·석사)때부터 눈여겨 봐왔다고 한다. 책상과 책꽂이가 있는 서재를 풍경화를 펼쳐놓는 시각적 공간으로 재구성한 점이 눈에 띈다. 김 작가는 “일상의 세계와 상상의 세계를 섞으며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에 흥미를 느낀다”고 말했다. 선화랑 원 대표는 “세 작가의 풍경화는 실제 풍경의 재현보다는 작가 내면의 풍경을 함축해 보여준다”며 “이번 예감전이 작가와 관람객의 거리를 좁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시는 3월 10일까지.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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