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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의 Mr. 밀리터리] 평창올림픽 끝났지만 … 북핵 딜레마 빠진 문 대통령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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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전 세계의 관심과 주목을 끌며 혹한을 녹였던 평창 겨울올림픽 열풍은 지나갔다. 올림픽 폐막식에 참석하며 한국 사회에 남-남 갈등을 부추긴 북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도 북으로 돌아갔다. 이제 남은 숙제는 북한 핵문제를 어떻게 푸느냐다. 문재인 정부가 올림픽을 활용해 미국의 대북 군사공격 분위기를 차단하며 미·북 대화를 중재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해법이 묘연하기 때문이다.

북, 핵 인정과 핵군축회담 #미, 북 비핵화가 대화조건 #대북 해상차단 조만간 실시 예정 #북, 시리아에 화학무기 수출 정황 #미·북 대화 선택지 제한 #핵 있는 가짜 평화 막아야

문재인 대통령의 딜레마는 북한이 결코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데 있다. 문 대통령의 목표는 북한의 비핵화인데 북한은 뜻이 없다는 점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잡고 물어봐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서울과 평창을 오갔던 김 부위원장은 비핵화와 관련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북한이 조금이라도 진정성이 있으면 그가 엇비슷한 얘기라도 꺼냈을 법도 하다. 김영철의 방남이 탐색전이었다 치더라도 문 대통령의 노력에 조금이나마 보답할 마음이 있었다면 최소한의 성의는 보였을 것이다. 사실 이번 올림픽 동안 김영철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의 방남은 정부 입장에서 성과이기도 하지만 부담도 컸다. 김여정과 현송월 단장에 대한 정부의 저자세, 천안함 폭침을 주도한 김영철 옹호에 국민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렇더라도 미·북 사이에 작은 접점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하지만 문 정부가 비집고 들어갈 틈바구니가 바늘구멍보다 작다는 게 문제다. 미·북 간 명확한 입장 차이가 있어서다. 북한은 미국과 핵군축회담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북한의 핵 보유 인정은 전제조건이다. 따라서 북한 비핵화가 아니라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잠정 중단하는 모라토리엄 선언 정도가 북한의 마지노선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판단이다. 이와 함께 북한은 한국을 활용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풀고 경제적 지원을 얻어내겠는 속셈도 있다. 한국이 중재하는 동안 핵무기 생산·배치 시간을 벌고 경제적 이득도 취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가 대화의 조건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우리는 오직 적절한 조건 아래서만 대화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마크 네프 주한 미 대리대사는 지난달 28일 기자 간담회에서 “비핵화라고 명시된 목표가 없는 대화는 원치 않는다”고 말해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 조건이 북한의 비핵화임을 분명히 했다. 북한이 원하는 핵군축회담은 결코 없다는 얘기로도 해석된다. 정부가 갖고 있는 ‘입구는 북핵 동결, 출구는 비핵화’라는 해법이 파고들 여지가 별로 없는 것이다.

미국이 이처럼 완고한 입장을 갖는 것은 그동안 북한에 속은 게 한두 번이 아니어서다. 북한은 낚싯바늘을 물었지만 막판에는 낚싯줄을 번번이 끊어버린 전력을 갖고 있다. 1차 북핵 위기 때 제네바합의(1994년)로 북한의 핵 시설을 완전히 해체하는 대가로 북한에 경수로를 지어주고 중유 제공을 약속했다. 그러나 북한은 그 과정에서도 핵 개발을 계속했고 나중엔 밥상까지 엎어버렸다. 200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으로 벌어진 2차 북핵 위기 때도 마찬가지다. 국제사회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6자회담을 통해 2005년 9.19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에 북한은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답했다. 오히려 핵무기 재료인 고농축우라늄을 생산했다. 9.19 합의는 북한이 핵무기와 핵 계획을 포기하는 대신 북한에 경수로 건설을 마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의한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국제사회는 북한에 식량과 중유를 제공했다. 한국도 2차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북한을 도와줬다. 이런 북한을 겪은 미국은 북한의 ‘판 뒤엎기’ 행태가 이번에도 반복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정부가 미·북 대화 중재에 성공하더라도 미국은 북한에 확실한 핵 폐기 절차를 요구할 것이다. 이른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CVID)’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될까. 우선 한국이 미·북 대화에 중매 역할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한동대 김준형 교수(국제어문학부)는 지난달 28일 세종연구소가 서울 서머셋팰리스에서 개최한 정책포럼에서 “협상에 주어진 시간은 짧게는 4월 중순, 길게는 9월 9일까지”라고 내다봤다. 북한이 4월부터 시작하는 한·미연합훈련에 반발해 도발하거나 북한 정권 창건일(9.9)에 핵무기 도면이나 모형을 공개할 수 있다는 게 이유다. 북한의 도발적 행위는 협상 분위기를 망친다. 미국 여론도 만만치 않다. 북한에 대한 압박과 봉쇄를 거쳐 과거 소련처럼 붕괴시키자는 여론이 현재 미국에서 다수를 점하고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얘기다. 심지어 세종연구소 박지광 연구위원은 “워싱턴 조야는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와 남북대화 제의를 한·미 관계 이간질로 보고 있다”며 “북한에 대한 어떠한 보상도 없다는 게 트럼프 정부의 정책”이라고 했다. 앞날이 순탄치 않다는 예고다.

이와 함께 미국은 북한에 대한 더 강력한 제재인 2.23조치에 따라 조만간 북한에 대한 해상차단을 실시할 전망이다. 해상차단은 의심선박에 대해 압수·수색하는 것이다. 미국의 대북 해상차단 작전에는 일본은 물론, 영국과 캐나다, 호주와 싱가포르 등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해상차단을 위해 해안경비대(Coast Guard)를 파견한다고 했고, 캐나다 해군 디젤잠수함 치쿠티미함(2500t)은 이미 한반도 해역에 도착했다는 보도도 있다. 앞서 지난달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미국 주도의 20개국 외교장관회의에서 해상차단에 관한 논의가 이뤄졌다. 여기에다 북한이 시리아에 대량살상무기를 수출한 정황도 드러났다.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타임즈(2월 27일)에 따르면 북한은 2012∼2017년 사이 40차례에 걸쳐 50t의 화학무기와 탄도미사일 부품을 수출하고 기술자도 보냈다는 것이다. 대량살상무기 수출은 해상차단 등 제재의 최우선 대상이다. 이에 대해 북한은 지난달 25일 외무성 담화를 통해 “그 어떤 봉쇄도 전쟁 행위로 간주하고 대응할 것”이라고 나왔다. 따라서 미국의 대북 해상차단이 본격화되면 북한과의 충돌이 불가피하다. 충돌이 확대되면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을 원포인트식으로 공격하는 코피작전이 아니라 북한 핵·미사일을 완전히 제거하는 안면마비작전을 실시할 수도 있다.

북한이 핵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상태에서의 미·북 대화는 더 큰 문제를 낳는다. 그때 선택지는 미국의 핵우산 강화 또는 북한이 원하는 미·북 평화협정 또는 주한미군 철수라는 최악의 상황으로도 갈 수 있다. 북핵이 있는 가짜 평화체제가 형성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 정부의 역할에 기대는 하지만 감상적인 의지로는 한반도에 평화가 결코 구축되지 않는다는 점이 우려된다.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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