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희의 맛따라기]일본서 온 하얀 짬뽕은 언제 빨개졌을까…나의 짬뽕 자서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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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후 서교동 ‘진진 가연’에서 열린 ‘동아시아 짬뽕을 말하다’ 간담회에 앞서 점심때 ‘진진 야연’에서 일본 나가사키현 오바마 마을 짬뽕 시식회가 열렸다. 한국·중국을 대표하는 왕육성 ‘진진’ 오너 셰프(왼쪽)와 오바마 마을 짬뽕집 ‘코코로(心)’ 오너 셰프 모리타 테스오(오른쪽)가 각자 만든 짬뽕을 들고 취재진에게 포즈를 취했다. 가운데는 오바마 ‘짬뽕 반장’ 하야시타 마사아키.

지난 21일 오후 서교동 ‘진진 가연’에서 열린 ‘동아시아 짬뽕을 말하다’ 간담회에 앞서 점심때 ‘진진 야연’에서 일본 나가사키현 오바마 마을 짬뽕 시식회가 열렸다. 한국·중국을 대표하는 왕육성 ‘진진’ 오너 셰프(왼쪽)와 오바마 마을 짬뽕집 ‘코코로(心)’ 오너 셰프 모리타 테스오(오른쪽)가 각자 만든 짬뽕을 들고 취재진에게 포즈를 취했다. 가운데는 오바마 ‘짬뽕 반장’ 하야시타 마사아키.

일상 음식에 얽힌 사연이나 추억 몇 자락 없는 사람이 있으랴만, 짬뽕과 나의 인연은 특별하다. 이 음식은 숟가락 놓고 돌아앉으면 배가 고프던 청소년기에 인생의 진로를 흔들었다. 라면·냉면·칼국수·막국수 가리지 않고 면(麵)을 워낙 좋아하지만 지금도 밖에서 식사할 때 가장 자주 먹는 음식은 짬뽕이다.

외식할 때 가장 자주 고르는 음식이 짬뽕 
1973년 초봄 금산읍내 농협 앞, 분식집 비슷한 중국집에서 짬뽕을 처음 만났다. 한국인이 주인 겸 주방장이었다. 기름이 뜨는 빨간 국물은 김에 가려 내용물이 희미할 만큼 뜨거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즉석에서 볶은 짬뽕이다. 면 위로 한 포기를 반으로 가른 시금치가 탄 듯 데친 듯 걸쳐 있었다. 돼지고기와 배추도 몇 가닥 들어 있었다. 국수에 시금치가 들어가는 걸 보기는 처음이라 45년 넘게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 광경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두 번째는 그해 가을 금산읍내 ‘큰다리’ 북단 중국집이었다. 화상(華商) 음식과 첫 대면이었다. 자장면을 시킨 나는 매형의 짬뽕을 탐내 조금 얻어먹었다. 채 친 돼지고기로 맛을 낸 빨간 육사(肉絲) 짬뽕이었다. 고소하고 시원한 국물에, 세로로 길게 채 썬 배추 대가 탄 듯 설익은 듯 달금하고 아삭했다. 한식에서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신기한 맛이었다. 면은 어찌나 부드럽고 부피감이 있던지. 나는 짬뽕에 빠졌다. 다음에 커서 짬뽕을 맛있게 하는 중국 음식점 주인이 되고 싶었다.

금산에는 6·25 이전에 화상 중국집이 있던 거로 보인다. 동탄의 유명한 중국 음식점 ‘상해루’ 대표 곡금초(66) 사부는 1952년 금산의 요정 스타일 청요릿집 아들로 태어났다. 크지 않은 읍내에 1970년대 초에도 2곳의 화상 중국집이 있었다.

10대 후반 짬뽕에 빠져 중국집 주인 될 꿈
1975년에는 대전 삼성동(현재 솔랑길)에 있는,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중국집 짬뽕에 꽂혔다.  키조개 날개, 갑오징어 같은 약간의 해산물과 양파·배추·당근 채가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장이 가까이 있고, 냉장고가 조금씩 보급될 때라 그랬던 것 같다. 중국집 주인을 향한 꿈이 더 단단해졌다.

대학 진학을 준비하던 1976~7년에는 대전 가양동(현재 대성길) ‘영광반점’을 잊을 수 없다. 아직 상호를 기억한다. 집으로 배달 주문을 하기도 했다. 주인 겸 주방장은 전남 영광 사람이었다. 고향을 떠나 고생 끝에 자기 음식점을 일궈 조리도 하고 배달도 하며 동분서주하던 30대 후반의 성실한 사람이었다. 이 집 짬뽕은 채 친 돼지고기를 듬뿍 넣고 양파·애호박·당근 채, 시금치로 기억되는 푸른 잎 채소가 약간 들어갔다. 요즘 흔한 청경채는 그때 없었다. 고춧가루 알갱이가 느껴질 정도로 국물은 탁하고 기름기가 표면을 덮었다. 지금은 싫어할 스타일이지만, 객지 생활이 길어진 농촌 출신 도시 유학생이자 피 끓는 10대 후반 청소년 입에는 더할 나위 없는 맛이었다.

이 무렵, 어느 대학 무슨 학과에 갈까 골몰하는 사이 중국집 주인의 꿈은 슬그머니 증발하고, 대학생이 돼 복잡한 서울살이에 적응하다가 아예 잊고 말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18년 2월 26일이 서울 상륙 만 40년이다.

1973년 처음 맛본 짬뽕부터 빨갛고 매워 
신문사에 근무하던 1988년 어느 날 무교동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옛날 짜장’과 ‘굴 짬뽕’이라는 메뉴를 봤다. 2층에 있던 음식점 직원이 굴 짬뽕은 하얗다고 설명했다. 동석한 누군가가 “옛날에는 짬뽕이 다 하얬다”고 말했다. 빨갛지 않은 짬뽕에 대해 처음 인식한 기억이다.

지난 21일 낮 일본 나가사키현 오바마 마을 짬뽕 시식과 ‘동아시아 짬뽕을 말하다’ 간담회가 서교동 중국 음식점 ‘진진 가연’에서 열렸다.

지난 21일 낮 일본 나가사키현 오바마 마을 짬뽕 시식과 ‘동아시아 짬뽕을 말하다’ 간담회가 서교동 중국 음식점 ‘진진 가연’에서 열렸다.

내 사연을 이리 길게 쓰는 이유는, 일본 나가사키에서 화교가 만든 뽀얀 국물의 음식이 한국에 전파돼 언제부터 빨갛게 변했는지 설왕설래한 모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짬뽕에 집착이 있는 사람으로서 그 자리에 참석해 나눈 얘기를 정리해 보려고 지난날을 돌이켜봤다. 개인의 시간도 역사의 일부니까.

개인사를 고백한 김에 개인의 취향도 공개하고 본론으로 가겠다. 최근에 짬뽕이 먹고 싶으면 찾아가는 세 곳을 먼저 소개한다. 맛은 물론이고 주인과 교분이 두터운 ▷진진 가연(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1길 60/전화 010-8688-3880), 회사에서 가깝고 짬뽕의 격식을 갖춘 ▷금정(서울 중구 통일로4길 16 용진빌딩 2층/전화 02-756-5418) ▷황금성(서울 중구 세종대로14길 6-2/전화 02-773-0436)이다.

‘진진’ 하얀 짬뽕

‘진진’ 하얀 짬뽕

단골집 3선은 '진진' '금정' '황금성'
한국 중화 요리계의 명인 왕육성(64) 사부의 ‘진진 가연’은 2017, 2018년 연속 미슐랭 1스타를 받은 서울의 대표 중국 음식점이다. 돼지 뼈, 노계(老鷄), 꽃게, 새우 머리와 껍질 국물을 섞어서 쓰는 하얀 해물짬뽕이 인기다. 국물이 구수하면서 시원하다. 이율배반적인 말이지만 먹어보면 정말 그렇다. (※왕 사부는 짬뽕 간담회에서 “구수하면서 시원한 짬뽕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들어간 해물을 보면 여느 중국집과 수준이 다르다. 굵직한 새우가 두 마리 들어가고, 굴·오징어·위소라·바지락·청경채·배추·목이버섯 등이 면을 푸짐하게 덮고 있다. 왕 사부는 “처음엔 매운 짬뽕을 했다. 손님이 많았지만, 주변 중국집에 피해를 줄 것 같아 다른 집이 하지 않는 하얀 짬뽕으로 바꿨다”고 한다. 4호점까지 성업 중인 ‘진진’이 짜장면을 하지 않고, 4호점 말고는 낮 영업을 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금정’ 삼선짬뽕.

‘금정’ 삼선짬뽕.

‘금정’ 능이탕면.

‘금정’ 능이탕면.

경찰청 맞은편에 있는 ‘금정’은 일찍이 회현동에서 전가복으로 이름을 날리던 그 집이다. 이곳으로 옮긴 지 5년 됐지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다. 중화 요리계의 또 다른 명인 여경래(58)·경옥(55) 사부 형제와 가까운 인척인 주인 겸 조리사 진상풍(陳常豐)씨도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해물짬뽕은 닭 뼈 국물을 베이스로, 마른 고추를 뚝뚝 잘라 넣고 타기 직전까지 볶아 깊은 매운맛을 냈다. 간은 약간 세지만 재료를 다양하게 써서 맛의 균형이 잘 잡혔다. 채 친 돼지고기와 능이를 넣은 하얀 짬뽕(이 집에서 이름은 ‘능이탕면’)도 서울에서 찾기 쉽잖은 별미다. 음식이 상에 나오면 진한 능이 향이 아찔하게 따라온다.

‘황금성’ 삼선짬뽕.

‘황금성’ 삼선짬뽕.

북창동 ‘황금성’ 주인 겸 주방장 이광노씨는 중화요리 경력이 반세기가 넘었다. 삼선짬뽕은 양이 푸짐하고 맛도 좋다.  닭 뼈 육수가 중심인 국물은 16~17가지 부재료에서 우러난 맛과 어우러져 시원하며 그윽하고, 간도 적당하다. 얼큰하지만 맵지 않게, 고소하지만 느끼하지 않게, 경계를 다룰 줄 아는 요리사의 숙련된 솜씨가 느껴진다. 한국인인 그는 어린 시절 북창동에 몰려있던 중국집 화교 요리사들에게 중화요리를 배웠다. 언젠가 삼선짬뽕에 들어간 부재료들을 살펴보니 저민 복어 살, 오징어, 낙지, 주꾸미, 홍합, 위소라, 소라, 피조개 살, 오만둥이, 브로콜리, 청경채, 얼갈이배추, 표고버섯, 양송이버섯, 양파, 청·홍 파프리카, 청·홍 매운 고추 등 17가지였다.

오바마 마을에서 짬뽕집 ‘코코로(心)’를 3대째 운영하는 모리타 테스오가 서교동 ‘진진 야연’ 주방에서 짬뽕을 조리하고 있다.

오바마 마을에서 짬뽕집 ‘코코로(心)’를 3대째 운영하는 모리타 테스오가 서교동 ‘진진 야연’ 주방에서 짬뽕을 조리하고 있다.

짬뽕에 대한 논의는 지난달 21일 오후 3시~4시 30분 서교동 ‘진진 가연’에서 ‘동아시아 짬뽕을 말하다’라는 주제의 간담회 형식으로 열렸다. 행사는 박찬일 요리사 겸 작가가 기획했고, 박정배 음식문화사 연구가 겸 작가는 이번 행사를 위해 일본 현지를 답사하고 간담회 발제문을 썼으며 사회까지 맡았다. 한·중 측 패널은 왕육성(64) ‘진진’ 오너 셰프, 일본 측은 하야시다 마사아키(林田眞明·50) 일본 나가사키(長崎)현 운젠(雲仙)시청 관광물산과 과장 보좌역.

오바마 짬뽕 첫 맛은 너무 짜고 느끼해
간담회에 앞서 짬뽕 마을로 유명한 운젠시 오바마[小浜] 마을에서 짬뽕집 ‘코코로[心]’를 3대째 운영하는 모리타 테스오(森田哲生·50)가 만든 일본식 짬뽕(8000원)을 먹었다. 첫술에 두 마디 말이 나왔다. “짜다.” “한국 사람들이 왜 고춧가루를 넣었는지 알겠다.” 동석한 2명의 전문가도 공감했다. 한마디로 짜고(많이) 느끼했다. 내 입에는 당기는 맛이 아니었다.

국물은 레시피를 주고 공장에서 만든 것을 가지고 왔고, 국수는 농심에서 만든 짜장면용 냉동 숙면을 썼다. 중간 굵기의 둥근 국수다. 오바마 지역 짬뽕 국물은 돼지와 닭 뼈 국물에 멸칫국물을 섞어서 만든다. 부재료는 얇게 저민 삼겹살, 작은 오징어 다리, 작은 새우 살, 양배추·양파·숙주와 골패 썰기 한 분홍색 가마보코(蒲鉾; 어묵), 치쿠와(竹輪)라는 구멍 뚫린 대롱 모양의 어묵이 들어갔다. 부재료도 한국 짬뽕보다 빈약했다.

모리타 테스오가 말아낸 오바마 짬뽕. 국물은 ‘코코로(心)’의 레시피대로 공장에서 만들어 가지고 왔고, 면은 농심의 짜장면용 냉동 숙면을 썼다. 오마바 짬뽕에는 분홍색 가마보코(어묵)가 들어가는 게 특징이다.

모리타 테스오가 말아낸 오바마 짬뽕. 국물은 ‘코코로(心)’의 레시피대로 공장에서 만들어 가지고 왔고, 면은 농심의 짜장면용 냉동 숙면을 썼다. 오마바 짬뽕에는 분홍색 가마보코(어묵)가 들어가는 게 특징이다.

오바마 짬뽕에는 저민 삼겹살을 쓴다. 작은 오징어 다리, 작은 새우, 양배추와 숙주 등도 들어갔다.

오바마 짬뽕에는 저민 삼겹살을 쓴다. 작은 오징어 다리, 작은 새우, 양배추와 숙주 등도 들어갔다.

짬뽕의 유래에 대해서는 대체로 수긍하는 설이 있다. 5층 건물 전체가 중국 음식점인 나가사키 짬뽕의 원조 ‘사카이로(四海樓)’에 있는 ‘잔폰박물관’의 설명문에 근거한다. “나가사키 짬뽕은 중국에서 나가사키로 이주한 푸젠성(福建省) 출신 천핑순(陳平順)이 1899년 처음 만들어 팔았다. 사카이로를 창업해 운영하던 그는 가난한 중국인 유학생과 노동자들을 위해 값싼 음식 개발에 나서 돼지 뼈 국물과 해산물·채소를 이용한 국수를 창안했다. 이것이 인기를 끌고 유명해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나가사키 화교, 1899년 처음 만들어 팔아
천핑순(1873~1939)은 푸젠성 푸저우(福州)에서 태어나 19세 되던 1892년 무역상에서 일하러 나가사키로 왔다. 행상을 전전하는 고생 끝에 타고난 상재(商才)를 발휘해 1899년 당인촌(唐人村; 차이나타운) 입구, 현재의 사카이로 자리에 숙식을 겸하는 객점(客店)을 차렸다. 상호에 사해(四海)를 쓴 것은 온 세상 사람이 다 오라는 기대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인구 6만인 나가사키에는 화교와 중국 유학생이 1만 명이 넘었다. 본인도 나가사키에서 어렵게 자리 잡은 그는 가난한 화교들을 위해 싸지만, 양은 많고 영양도 풍부한 요리를 고민했다. 나가사키 앞바다에 풍부한 작은 새우, 작은 오징어 다리, 작은 굴, 해산물로 만든 어묵, 자투리 양배추와 파·숙주나물을 기름에 볶고, 돼지 뼈를 고아 뽀얀 국물을 더한 다음 삶은 국수에 부어서 새로운 음식을 만들었다. 사카이로에서는 푸젠 음식인 탕러우쓰몐(湯肉絲麵)·차오러우쓰몐(炒肉絲麵)이 나가사키 식재료와 만나 만들어진 음식이라고 설명한다. 탕러우쓰몐은 채 친 돼지고기와 표고버섯·죽순·파 등을 넣고 끓인 국물에 국수를 만 음식이다. 처음 이름은 시나우동(支那饂飩)이었다. ‘시나’는 차이나를 음역(音譯)한 말이다. 오늘날 짬뽕의 탄생이다.

시나우동을 일본 사람들이 ‘잔폰’이라고 부르게 된 과정에 대해서는 정설은 없다. 우세한 설은 “밥 먹었냐(吃飯)”는 중국 인사말이 시나우동을 처음 만들어 판 천핑순의 고향 푸젠 말로 ‘츠판’ 혹은 ‘차폰’으로 발음하는 것에서 왔다는 얘기다. 사카이로에서 그렇게 설명한다. 중국인들끼리 쓰는 ‘츠판(차폰)’이 기존 일본어 ‘잔폰’과 발음이 비슷하고, 음식 내용도 여러 가지 재료가 섞였으니까 ‘시나우동’이라는 긴 이름을 밀어내고 ‘잔폰’이 득세한 게 아닐까 하는 유추가 가능하다. 잔폰(ちゃんぽん)은 ‘한데 섞다’라는 뜻의 일본말이다.

지난 21일 오후 3시 서교동 ‘진진 가연’에서 열린 ‘동아시아 짬뽕을 말하다’ 간담회에서 행사를 기획한 박찬일 요리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른쪽으로 간담회 발제문을 쓰고 사회를 맡은 박정배 작가, 왕육성 사부, 하야시다 마사아키 오바마 마을 ‘짬뽕 반장’, 통역하러 나가사키에서 온 한국인 한진씨.

지난 21일 오후 3시 서교동 ‘진진 가연’에서 열린 ‘동아시아 짬뽕을 말하다’ 간담회에서 행사를 기획한 박찬일 요리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른쪽으로 간담회 발제문을 쓰고 사회를 맡은 박정배 작가, 왕육성 사부, 하야시다 마사아키 오바마 마을 ‘짬뽕 반장’, 통역하러 나가사키에서 온 한국인 한진씨.

발상지 일본보다 한국인이 더 좋아해

간담회 주인공 4명의 발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박찬일 요리사 겸 작가
한국과 일본 짬뽕은 보기에 다른데 왜 이름이 같을까. 어려서 아버지가 “술을 짬뽕했더니 머리가 아프다”는 말을 했다. 짬뽕이라는 음식과 연관 짓지 않아도 뜻이 바로 이해됐다. 짬뽕은 1800년대 말 중국인이 일본 나가사키에서 만든 음식인데 먹기는 한국인이 가장 많이 먹고 오리지널은 중국이다. 그 관계가 궁금해 오래 찾아다녔고, 지난가을부터 이 행사를 준비했다. 왕육성 사부에게 짬뽕 변천에 대한 증언을 요청했다. 요새 짬뽕의 ‘불맛’을 많이 얘기한다. 그게 있으면 잘 만든 음식인가. 언제부터 그걸 찾았나. 일본도 그런 게 있나 궁금하다.

▷박정배 음식문화사 연구가 겸 작가
7년 전(2011년) 나가사키 지역을 한 달 동안 취재했다. 짬뽕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딱 부러지는 게 없었다. 일주일 전에 다시 다녀왔다. 짬뽕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된 일본어 ‘잔폰’은 에도 시대인 1822년에 나온 책 『사토카가미(花街鑑)』에 처음 등장한다. 이때는 서로 다른 술이나 의약품을 혼합한다는 뜻으로 썼다. 1900년대 초 사카이로 메뉴에 ‘잔폰’이 들어가고 1905년 나가사키 지역 신문에도 등장한다.

이후 급속히 퍼져 나가사키에는 현재 110여 개 중국집과 1000여 개 음식점에서 ‘잔폰’을 판다. 인구 2만9000여 명의 오바마에도 짬뽕 식당이 15곳, 오바마 마을이 있는 시마바라[島原] 반도에는 60여 곳이나 된다. 우리나라도 신문기사를 검색해보면 짬뽕은 음식 이름보다 ‘섞이다’라는 뜻으로 먼저 등장한다. 동아일보 1963년 12월 2일 자에 ‘짬뽕 내각’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잔폰'은 원래 약품이나 술을 섞는다는 말 
원래 중국요리 육수는 닭이다. 돼지 뼈 국물을 넣는 것은 나가사키의 특징이다. 오바마 앞에 있는 아마쿠사[天草] 섬에서는 닭 육수만 쓰고, 다른 곳이 둥근 중면을 쓰는 데 비해 4각 면을 쓴다. 아마쿠사는 오바마·나가사키와 함께 일본 3대 짬뽕으로 꼽힌다. 일본 열도 4개 섬 중 가장 작은 시코쿠[四國] 지역에서 간장 베이스로 만드는 특이한 짬뽕에도 4각 면을 쓴다.

빨갛고 매운 한국식 짬뽕이 탄생한 건 1970년대 이후다. 일본의 한 논문을 보면 “한국의 매운 짬뽕은 1970년대 중·후반 인천에서 처음 만들었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국 짬뽕의 원형을 중국의 차오마멘(炒碼麵)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1983년 문교부가 짬뽕이 일본말이라는 이유로 초마면으로 순화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음식문화 중 재미있는 게 짬뽕밥이다. 1980~90년대 학번은 술안주로 많이 먹은 짬뽕 국물에 대한 추억이 강하다. 그 힘이 짬뽕이라는 음식을 한국사회 중심으로 끌어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중국·일본으로부터 전파와 영향 관계도 중요하고, 일본에서 전래한 것을 전제로 한다 해도, 독특하게 매운 짬뽕으로 발전한 한국 안에서의 변화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 작가 발제문에는 재미있는 내용이 훨씬 풍성하지만, 통째로 베낄 수는 없어 그의 저서 출판을 기다린다.)

지난주 오바마 마을에 갔을 때 모리타의 가게 ‘코코로[心]’에서 먹은 짬뽕과 비교하면, 이 분이 오늘 ‘진진’에서 만든 짬뽕이 더 맛있다. 일본 국물과 한국 국수가 합작한 효과라고 생각한다. ‘진진’의 하얀 짬뽕 맛은 나가사키 짬뽕과 비슷하다.

‘진진 야연’에서 열린 오바마 짬뽕 시식회 때 사용한 농심의 짜장면용 냉동 숙면.

‘진진 야연’에서 열린 오바마 짬뽕 시식회 때 사용한 농심의 짜장면용 냉동 숙면.

서울에서 열리는 오바마 짬뽕 시식회에 쓰기 위해 일본에서 만들어 온 국물. ‘코코로(心)’에서 보낸 레시피대로 공장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오바마 짬뽕 국물은 돼지·닭 뼈, 멸치를 이용한다.

서울에서 열리는 오바마 짬뽕 시식회에 쓰기 위해 일본에서 만들어 온 국물. ‘코코로(心)’에서 보낸 레시피대로 공장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오바마 짬뽕 국물은 돼지·닭 뼈, 멸치를 이용한다.

일본에서 만들어 온 오바마 짬뽕 국물의 상품 정보 표시.

일본에서 만들어 온 오바마 짬뽕 국물의 상품 정보 표시.

하야시다 마사아키 별명이 ‘짬뽕 반장’인 오바마 짬뽕 홍보대사

오바마마치 관광과에 근무하던 2000년부터 관광객이 줄어 활성화 대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묘안이 없을까 하고 나섰다. TV에 오바마 짬뽕이 나오기 전에 ‘짬뽕지도’를 만들어서 관광객이 묵는 호텔·여관마다 비치했다. 오바마는 나가사키에서 배로 1시간 걸린다. 100년 전에는 배가 가장 빠른 교통편이었다. 관광객과 목치객(沐治客)들이 많이 왔다. 나가사키에 유행하던 짬뽕도 손님을 따라와 1910년대부터 오바마에서 팔기 시작했다.

분홍색 가마보코(어묵) 넣고 고명으로 올린 날계란에 뜨거운 국물을 부어 겉만 살짝 익혀 상에 내는 오바마 스타일도 생겼다. 이것을 잘 섞어서 먹으면 영양도 충실해졌다. (※’우동 달인’ 박상현씨에 따르면 일본 음식에서 츠키미[月見; 음력 8, 9월 보름달 구경]라 하여 현재는 우동 토핑으로도 많이 쓴다.) 관광객들은 스시를 먹고 입가심으로 짬뽕을 먹는 경우도 많았다.

나가사키 짬뽕에 오바마선 멸칫국물 더해
나가사키 짬뽕은 돼지 뼈(豚骨; 돈코츠) 국물이 중심이지만, 오바마 짬뽕에는 멸칫국물이 더 들어간다. 한국 짬뽕 먹어봤다. 매운 걸 좋아해서 아주 즐겨 먹는다. 짬뽕을 연구하러 한국에 20여 차례 왔는데 올 때마다 먹는다. 매운맛, 해산물의 개운함, 시원함이 특징이다. 일본에도 매운 짬뽕을 파는 가게가 있다. 오바마에 ‘신라면’도 있다. 짬뽕도 그런 교류의 시대가 왔다.

나가사키는 탄력은 적고 부드러운 중국 남방계 국수가 주류다. 쫄깃한 북방 면과 간수가 다르다. 나가사키 면은 일찍이 반죽에 토아쿠(唐灰汁; 탄산나트륨이 주성분인 중국 잿물)를 첨가해 연한 갈색이 돌고 알칼리 특유의 쓴맛이 있었다. 이런 특징이 모여서 나가사키 면의 독특한 풍미를 만들었다. 씁쓸한 맛 때문에 어려서는 짬뽕을 안 먹었다. 토아쿠가 간수로 바뀌면서 쓴맛이 없어져 먹게 됐다. 사카이로는 중력분·박력분을 반씩 섞고 간수(주성분 탄산칼륨)를 써서 반죽해 면에 탄력이 없다. 간수를 쓰면 탄력이 적지만 부드럽다. 그런 측면에서 타이완 면과 비슷하다. 탄력보다 부드러운 느낌을 우선한다. 오늘 ‘진진’에서 만든 오바마 짬뽕에는 쫄깃함이 특징인 한국 국수를 썼다.

지난 21일 낮 오바마 마을 짬뽕 시식회가 열린 ‘진진 야연’ 입구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왕육성(왼쪽) 오너 셰프와 오바마 ‘짬뽕 반장’ 하야시다 마사아키.

지난 21일 낮 오바마 마을 짬뽕 시식회가 열린 ‘진진 야연’ 입구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왕육성(왼쪽) 오너 셰프와 오바마 ‘짬뽕 반장’ 하야시다 마사아키.

나가사키도 탄력 있는 면이 시작됐다. 짬뽕집이 많아 분업화하면서 대부분 소면 공장 면을 쓴다. (운젠시가 있는) 시마바라 반도에는 소면 공장이 많다. 공장 면을 쓰면서 수타면은 사라졌다. 최근에는 우동의 영향을 받아서 수타(手打)를 하는 곳도 생기고 있다.

오바마 짬뽕 국물의 단맛은 돼지고기·새우·멸치·우엉·양파·대파·표고에서 나온다. 설탕은 전혀 안 쓴다. 마늘도 안 들어간다. 이렇게 만든 짬뽕 국물이 초밥과 잘 어울린다고 하여 오바마에 온천 하러 오는 사람들이 후식으로 즐긴다. 닭 뼈 육수만 쓰는 가게도 있다. 추측이지만, 잔 새우를 쓰는 이유는 작은 새우 깐 껍질을 많이 써서 국물을 진하게 내려고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 짬뽕은 나가사키 요리의 한 계열" 
한국 사람은 짬뽕을 중국 면 요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일본이 생각하는 한국 짬뽕은 나가사키 요리의 한 계열이다. 일본에서 짬뽕 인지도가 라면보다 낮은 게 사실이다. 도쿄 이북에선 짬뽕이라는 말을 별로 안 쓰고 지금도 중화탕면이라고 부른다. 혼슈 가장 북쪽인 아오모리[靑森]에서 짬뽕 판매 이벤트를 연 적이 있는데 노인들은 국물 빼고 건더기만 달라고 하는 경우도 많았다. 볶음면 정도로 생각하는 듯했다.

짬뽕과 라멘의 차이는 채소 같은 재료가 여러 가지 들어가면 짬뽕이고 채소가 거의 들어가지 않으면 라면이다. 일본에서 짬뽕 메뉴에는 ‘구다쿠상(具沢山)’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구(具)는 재료, 타쿠상(沢山)은 많다는 뜻이다. 부재료를 듬뿍 넣는다는 말이다. 짬뽕은 역사가 120년이지만 라멘은 길어야 100년이다. 나가사키 짬뽕이 퍼져나가다가 후쿠오카 하카타 지역에서 국물을 너무 오래 끓여 졸았는데 거기에 면을 말아 먹으니 맛있어서 그 방식으로 발전한 게 라면의 출발이 됐다는 설이 있다. 맛있는 짬뽕은 너무 진하거나 묽지 않은 중간 맛의 국물에, 적당한 탄력이 있는 중간 굵기의 면을 말면 된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국수 반죽에 강력분을 많이 써서 탄력이 있다. 그런 면을 만드는 것은 우동의 영향으로 보인다. 나가사키가 위치한 규슈 이웃 시코쿠의 가가와현 사누키 우동의 특징이 그렇다. 우동은 굵은 면을 쓰고, 라면·짬뽕은 간수가 들어가는 중간 굵기 중화 면을 쓴다. 그게 가장 큰 차이다. 오바마 짬뽕이 대부분 공장 면을 쓰지만, 요즘은 점포용 제면기도 일부 이용한다.

▷왕육성 ‘진진’ 오너 셰프
어려서는 짬뽕을 안 먹었다. 널리 알려진 음식이 아니었다. 짜장면·우동이 대세였다. 1960년대 말 짬뽕은 국물이 많지 않았다. 볶음면보다 국물이 약간 더 들어갔다. 짬뽕엔 해산물이 많이 들어가 핵산이 풍부해서 맛이 진한데 화학조미료까지 넣으니까 애들 입맛에는 안 맞았다. 전주에 살던 열 살 때(1963년), 음식점 하는 화교 친구의 어머니가 맛있는 음식이라며 하얀 짬뽕을 해줬는데 먹지 못했다. 그 친구의 화학조미료 들어간 반찬도 못 먹었다. 자라면서 조금씩 익숙해져 14~16세부터 먹을 수 있게 됐다. 짬뽕이 값도 약간 비싸서 우동·짜장면을 많이 먹었다.

‘금정’ 삼선짬뽕에 들어간 마른 고추. 일본에서 온 하얀 짬뽕이 빨갛고 맵게 변하는 과정에 고춧가루가 아니라 마른 고추를 잘라서 볶아 매운맛을 내던 방식이 있었다. ‘금정’ 짬뽕은 그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금정’ 삼선짬뽕에 들어간 마른 고추. 일본에서 온 하얀 짬뽕이 빨갛고 맵게 변하는 과정에 고춧가루가 아니라 마른 고추를 잘라서 볶아 매운맛을 내던 방식이 있었다. ‘금정’ 짬뽕은 그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1960년대엔 해산물 아닌 채 친 돼지고기
1960년대에 짬뽕이라는 말은 들어봤지만 드물었다. 신선한 해산물 보관이 어려워 채 썬 돼지고기로 하는 육사(肉絲) 짬뽕을 주로 했다. 말린 새우도 썼다. 새우 완자나 어묵을 쓰기도 했다. 빨간 짬뽕은 없었다. 중화 간장을 살짝 넣었다. 어느 날 주방장이 짬뽕에 실고추를 올렸다. 보기는 좋은데 향은 썩 좋지 않았다. 실고추를 볶아서 쓰면 어떨까 하여 한동안 볶아서 올렸다. 고춧가루를 찾는 손님이 가끔 있었다. 그래도 고춧가루를 넣을 생각은 못 했고 마른 고추를 잘라서 재료와 함께 볶았다. 한동안 ‘고추 짬뽕’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1970년대 초 중화요리 집에 근무할 때도 그 집에 매운 짬뽕은 없었다. 명절에 외출해 시내에 나가보니 바지락이 잔뜩 들어간 매운 짬뽕이 있었다. 그때 중국집은 명절 아니면 쉬는 날이 없어 외출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신기해서 ‘매운탕면’이라고 이름을 지은 적이 있다.

우리는 짬뽕이 중국 음식이려니 생각하고 있었다. 야사(野史)지만, 나가사키에 유학 간 가난한 중국인 자취생들이 각자 남은 음식이나 재료를 이것저것 한두 가지씩 가지고 한 곳에 모여 다 합쳐서 끓여 먹던 데서 짬뽕이 유래했다는 얘기도 있다. 오바마 짬뽕은 국물이 진하고 구수한 맛이 좋다. 이건(일본) 이것대로 맛이 있고, 우린(한국) 우리 대로 시원한 맛이 있다.

"불맛은 재료 가열 때 나오는 총체적 향"
나가사키 면은 동글동글한데 탄력이 적고 툭툭 끊어진다. 산둥성을 중심으로 한 중국 북방에서는 면을 힘으로 두드려 빼고, 반죽에 가성소다(수산화나트륨) 녹인 물을 바른다. 그러면 면이 탄력 있고 쫄깃하다. 소금만 넣고 반죽하면 면이 매끈하고 부드럽다. 기계로 뽑는 면은 반죽에 식소다(탄산수소나트륨)를 넣는다. 그러면 면에 누런빛이 돈다. 더 노란 면은 배달 음식에 쓰려고 ‘면파워(주성분 탄산수소나트륨에 전분·글루텐 등 첨가)’를 넣은 것이다. 중국 남방 면은 달걀흰자와 소금만 넣고 다른 것은 넣지 않는다. 면이 끈기가 없고 설익은 느낌이다. 타이완에 가서 그런 면이 나오기에 더 삶아 달라고 했더니 이상하다는 듯 바라봤다. 한국의 우육탕면에 쓰는 면이 그런 면이다.

왕육성 ‘진진’ 오너 셰프가 고추기름을 내서 만든 한국식 짬뽕. 국물은 돼지 뼈, 노계, 새우·게 등 갑각류에서 낸 3가지 육수를 섞어 쓴다.

왕육성 ‘진진’ 오너 셰프가 고추기름을 내서 만든 한국식 짬뽕. 국물은 돼지 뼈, 노계, 새우·게 등 갑각류에서 낸 3가지 육수를 섞어 쓴다.

저온저장 기술이 없을 때 중국 음식의 기본 재료가 채 친 돼지고기, 육사(肉絲)였다. 그걸로 맛을 내는 게 불맛이다. 중국 가정요리는 대부분 기름에 볶는다. 불이 너무 세면 불맛이 아닌 탄 맛이 된다. 그을음 맛이다. 엄격히 따지면 기름에 중심재료 넣고 장류·향신료 넣고 가열할 때 발생하는 총체적 향이 불맛이다. 그건 타이밍의 예술이다. 가열 시간을 잘 맞춰 주재료의 향을 끌어올리는 기술이다. 토치로 쏴서 내는 태운 맛은 권장할 수 없다.

일본 사람들 짬뽕 볶는 것 보니까 우리와 다르더라. 우리는 고기·향신료·채소 볶다가 해산물 넣는데, 일본은 삼겹살·오징어·새우 먼저 넣고 센 불에서 탄 듯한 향이 나오게 달달 볶은 다음 나중에 채소를 넣더라. 국물의 단맛이 채소에서 나오니까 우리는 채소를 볶는데 일본은 채소는 거의 안 볶는다.

요즘 사람들의 짬뽕 기호가 구수한 맛과 시원한 맛으로 갈린다. 구수한 맛은 국물을 진하게 뽑고, 볶을 때 기름 더 넣고 오래 가열해 국물이 하얗게 뒤집히도록 하면 된다. 시원한 맛은 닭 육수만 쓰고, 채소를 볶다가 조개류·생선만 넣으면 된다. 두 맛의 중간은 불가능하다. 중국 육수는 생 햄인 훠투이(火腿), 노계(老鷄), 돼지가 들어가면 최고로 친다.

중국 음식에 기원을 두고 일본의 화교가 120년 전에 만든 짬뽕은 일본에서는 하얀 국물에 진한 맛으로 발전했고, 한국에 와서는 빨갛고 시원한 맛으로 달라졌다. 한국 짬뽕이 짜다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일본 짬뽕은 더 짰다.

중국 음식에 기원을 두고 일본의 화교가 120년 전에 만든 짬뽕은 일본에서는 하얀 국물에 진한 맛으로 발전했고, 한국에 와서는 빨갛고 시원한 맛으로 달라졌다. 한국 짬뽕이 짜다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일본 짬뽕은 더 짰다.

"매운 짬뽕 1970년대 이전에도 있었을 것"
얘기를 듣던 양용진 제주음식문화연구원장이 새로운 의견을 내놨다. 그는 이 행사에 관심이 커 준비 과정을 주목했고, 지난달 15일에는 박정배 작가의 나가사키 우동 여행에 동행했다. “제주 돼지국수는 일본 짬뽕과 비슷한 남방 요리다. 제주도에서 국수를 먹기 시작한 것은 100년 정도밖에 안 된다. 그 전에는 국수가 없었다. 반면 제주에 화교가 일찍 많이 들어와 중국 음식 유입은 빨랐다. 3대째 이어오는 서귀포 덕성원(제주 서귀포시 태평로401번길 4/전화 064-762-2402)의 매운 꽃게짬뽕은 1970년대에 제주에서 유명했다. 매운 짬뽕 역사가 알려진 것보다 깊을 것으로 본다.”

한적한 시골 소읍에서 1973년 초에 빨갛고 매운 짬뽕을 먹은 내 기억에 대한 자신감을 북돋는 증언이다. 금산~대전 32㎞ 국도는 포장도 안 됐던 그 시절, 음식 유행이 진원지에서 기술을 전수해 그 시골까지 들어오자면 2~3년은 더 걸린다. 그래서 한국 짬뽕에 고춧가루가 들어가기 시작한 시기가 1970년대 이후라는 의견에 동의하기 어렵다. 1960년대에 매운 짬뽕을 만들거나 먹었다는 사람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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