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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자료 잔뜩, 김영철은 메모 한장…기선 제압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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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큐 최소 150일 듯"…북한 대남실세 확인된 철ㆍ권 라인

 지난 25일 오전 10시 15분 경기 파주시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를 통해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김 부위원장 뒤를 따랐다.

한국 인기드라마 ‘이산’ 거론하며 개성공단 폐쇄 비판도

두 사람은 두 줄로 단추가 늘어선 검은색 재킷을 똑같이 입었다. 성큼성큼 걷는 모습도 비슷했다. 북한의 대남 정책을 주도하는 실세인 이른바 ‘철ㆍ권(김영철ㆍ이선권) 라인’의 등장이었다.

평창동계올림픽 폐회식 참석차 방문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북한 고위급대표단이 25일 오전 파주 남북출입사무소(CIQ)에 도착해 이동하고 있다. [중앙포토]

평창동계올림픽 폐회식 참석차 방문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북한 고위급대표단이 25일 오전 파주 남북출입사무소(CIQ)에 도착해 이동하고 있다. [중앙포토]

천안함 폭침의 주범으로 지목됐던 김영철은 대남 전문가이기도 하다. 1990년대 초부터 남북 협상에 참여했다. 1991년 12월 서울에서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됐을 당시 북측 대표단 7명 중 1명이 김영철이었다. 가장 최근인 2014년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도 김영철이 북측 협상대표였다.

과거 김영철을 상대했던 정부 고위 당국자는 “회담장에 들어서면 우리는 자료를 잔뜩 들고 들어가는데 김영철은 메모지 한 장 가지고 들어온다”며 “시작부터 기선을 제압하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능수능란하게 협상하는 모습을 보면 김영철은 아이큐가 최소 150은 될 것”이라며 “머리가 좋다”고 말했다.

김영철은 북한 내에선 '자본주의 날라리풍'으로 비판받는 한국 드라마도 서슴없이 인용했다. 2008년 12월 국방위원회 정책실 국장 자격으로 개성공단에 내려왔던 김영철은 남측 입주 기업인들을 모아 놓고 당시 한국에서 인기몰이를 했던 드라마 ‘이산’의 대사를 언급했다. 그는 “ ‘이산’에 ‘백성은 물이고 임금은 물 위에 뜬 배’라는 대사가 있는데 민심이 흔들리면 배는 뒤집힌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인원 축소를 결정한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면서 남한 드라마의 대사를 인용했다.

이선권은 북한 내에서 김영철의 오른팔로 평가받는 인물로 정부 당국은 판단하고 있다. 회담 스타일도 김영철을 빼닮았다고 한다. 이선권은 지난달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고위급 회담을 지켜보는 내외의 이목이 강렬하고 기대도 크다”며 “우리 측에서는 (회담을) 공개해서 실황이 온 민족에게 전달되면 어떻겠나”라고 깜짝 제안했다. 이에 남측 수석대표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일리가 있지만, 통상 관례대로 비공개로 하고 필요하다면 중간에 공개회의를 하는 것이 도움될 것”이라고 막았다.

이선권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고 한다. 이선권과 회담에 나선 경험이 있는 정부 당국자는 “이선권이 차석대표 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북측 수석 대표가 발언하는 도중에 끼어들어 자신의 의견을 말하곤 했다”며 “그 정도로 김영철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5일 평창에서 김영철을 접견했을 때 북측에선 이선권이 유일하게 배석했다. 두 사람은 25일 조명균 통일부 장관 주최 만찬부터 26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주최 오찬, 27일 조명균 장관·서훈 국정원장 주최 조찬까지 나란히 함께했다. 위문희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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