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논설위원이 간다

전가의 보도 야권 연대 … 6·13 지방선거서도 이뤄질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최상연
최상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최상연의 정치 속으로

안철수 서울시장 도전 가시권
정치권 시계는 100일 남짓 앞으로 다가온 6·13 지방선거에 맞춰져 있다. 내 고장 일꾼을 뽑는다는 게 본래 취지다. 하지만 전국 단위 선거여서 중앙 정치 연장이란 의미가 덧칠돼 있다. 동시에 치러지는 국회의원 재보선도 현재 7개에서 10개 이상으로 늘어날 게 확실하다. 큰 판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선 정계 개편의 회오리바람이 불가피하다. 출범 1년의 문재인 정권이 정국 주도권을 확실하게 쥘 수 있을지 여부도 선거 결과에 달려 있다.

서울 안철수, 경기·인천 한국당 단일화 #현실화땐 민주당 수도권 압승 차질 #지방 선거엔 야당간 대결 의미도 있어 #야권연대 어렵고 성사되도 막판에나

최대 승부처는 물론 서울시장과 경기지사다. 현재로선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 고공 행진에 힘입어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을 예상하는 목소리가 많다. 예선이 본선이라고 보는 민주당에선 경선전이 뜨겁다.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박영선·민병두·우상호·전현희 의원과 정봉주 전 의원 등이 도전장을 냈다. 경기지사 후보를 놓고선 이재명 성남시장과 전해철 의원이 다투는 와중에 양기대 광명시장도 출사표를 던졌다.

반대로 야당은 서울에 뚜렷한 후보가 없고 경기 수성은 힘겹다. 자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론 황교안 전 국무총리와 나경원·김용태 의원 정도가 하마평에 오를 뿐이다. 경기지사엔 남경필 지사 외에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 박종희 전 의원 등이 거론되지만 민주당의 높은 지지율이 부담이다. 그런 탓에 안철수 전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와 야권 후보 단일화는 지방선거 최대 이슈다.

맹비난하던 홍준표·남경필 서로 치켜세워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20일 오전. 수원시 경기도청 상황실. 남경필 경기지사와 함께 공동 입장한 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경기 안전 및 생활점검회의’를 주재했다. 남 지사는 “홍 대표가 대한민국의 근본 문제에 대한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것에 대해 존경한다”고 추켜세웠다. 곧이어 홍 대표는 이재명 성남시장의 앞마당인 판교를 찾아 “남 지사가 제2·3의 판교 테크노벨리를 잘 추진하고 있다. 당 차원에서도 돕겠다”고 화답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배신자’ ‘반 박자 늦추면 훌륭한 지도자’ 등의 원색적 비난으로 남 지사를 깎아내렸던 홍 대표다. 바른정당에 있던 남 지사는 ‘복당 불가자’로 꼽혔다. 하지만 이날 문재인 정부를 맹공하는 두 사람의 목소리엔 높낮이가 없었다. 함께 사진 포즈를 연출하는 등 분위기도 따뜻했다. 경기지사 후보에 최중경 전 장관을 전략 공천하는 쪽이던 홍 대표가 ‘남경필 카드’로 선회하는 제스처란 관측이 나왔다.

남 지사에게 물었다.

경기지사 공천과 관련해 홍 대표의 약속이 있었나.
“전혀 없었다. 선거와 관련해선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다’는 게 전부였다.”
실제로 분위기가 좋아졌나.
“지금 선거하면 지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상황은 계속 바뀐다. 4년 전 선거 때도 1%p 내의 박빙으로 이겼다. 선거란 아무도 모른다.”
야권 선거연대가 되면 도움이 될 텐데 가능성이 있나. 걸림돌은 뭔가.
“선수로 뛰고 있어 말할 입장이 아니다.”
안철수 전 대표는 서울시장에 출마할까.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안철수 측근들 “안 서울 출마는 확실”

안철수 전 대표가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면 한국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않고 경기지사와 인천시장 후보엔 바른미래당이 무공천을 약속한다는 게 야권 연대론의 골자다. 한국당 입장에선 유력한 출마 후보가 없는 서울시장 선거에 매달리기보다 현재 단체장인 남경필 경기지사, 유정복 인천시장 당선에 힘을 쏟는 게 효율적이란 계산이 배경이다. 실제로 그럴 경우 민주당이 수도권 전승을 장담하긴 어렵다.

그러자면 전제 조건이 있다. 우선 안 전 대표가 서울시장에 도전해야 한다. 안 전 대표는 현재 잠행 중이다. 그의 비서실장에게 출마 여부를 물었더니 “아직은 미정”이라고 얼버무렸다. 하지만 당에선 출마 쪽 목소리가 압도적이었다. 박주선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는 “가능성이 50%를 넘었다”고 말했다. 이태규 사무총장은 “당의 요구가 강하고 야권 주자가 없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했다.

그의 측근 그룹에선 한 걸음 더 나아가 출마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였다. 다만 이런저런 준비 때문에 ‘출마 선언’은 다음 달 하순쯤이 될 거라고들 했다. 무엇보다 당 지지율이 급락하는 상황에서 ‘안철수 서울시장 출마’ 외엔 다른 활로가 없고 안 전 대표 역시 도전 의지가 강하다고 한다. 바른미래당 지지율은 창당 후 오히려 꺾여 이젠 7%대로 내려앉았다.

선거연대 가능성은 양당 단호하게 부인

안 전 대표를 넘어서는 대중 인지도를 가진 후보를 야권 전체에서 찾긴 어렵다. 7년 전 박원순 시장에 대한 ‘양보의 기억’도 있다. 안 전 대표로서도 이기면 화려한 부활이고 져도 나쁘지 않은 좋은 기회다. 하지만 한국당이 서울을 포기하는 건 전혀 다른 얘기다. 우선 바른미래당이 경기와 인천을 돕는다고 해서 두 곳에서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느냐의 문제가 있다. 현재로선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많다.

더 큰 문제는 명분이 약하다는 점이다. 홍준표 대표는 그동안 ‘미니정당과의 연대는 없다’고 바른미래당과의 제휴를 여러 차례 일축했다. 박주선 바른미래당 공동대표 역시 ‘한국당은 극복의 대상이지 연대 대상이 아니다’라고 거부감을 밝혔다. 어차피 여당의 압승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전국 정당의 면모를 유지하고 차기 총선에 대비하려면 전국적으로 독자 후보를 내야 한다는 명분론이 아직은 강하다.

그러니 양당에선 연대설을 부인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당 홍문표 사무총장은 “116명(한국당 의석)과 30명(바른미래당 의석)이 같이 하는 게 어디 있느냐. 선거 연대란 생각해 본 일도 없고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바른미래당 이태규 사무총장은 “여당이 압승할 가능성이 매우 큰 선거판에서 바른미래당으로선 제1 야당을 바꾸거나 바꿀 잠재력을 보여주는 게 첫번째 과제”라며 “연대 보다 한국당을 이기는 게 목표”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은 야권 선거연대가 여권에 도움이 될 뿐이라고 했다. 왜 그런 것인가. “적폐 대 개혁으로 선거 구도를 몰고 가려면 여당 입장에선 1대 1 구도가 유리하다. ‘보수 야합’ 프레임으로 바른미래당까지 적폐로 몰고 가려는 여당의 전략이 숨어있다.” (바른미래당 이 총장) “민주당과의 연대 명분을 만들려는 민평당과 박지원 의원이 야권 연대설이란 마타도어를 확산시킨 진앙이다.” (한국당 홍 총장)

야권 연대, 수도권 민심 향배에 달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럼에도 지방선거 승리로 문재인 정권을 견제하고 흩어진 보수와 중도를 결집해야 하는 과제는 야권의 제 1 목표다. 그러자면 압도적 지지를 받는 여당과 분열된 야당 대결 구도를 깨는 게 손쉬운 방법이다. 지금처럼 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도가 높은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그러니 두 당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연대설은 끊이지 않는다. 물론 쉬운 일도 아니다.

무엇보다 두 당은 ‘대표 야당’을 자처하며 보수 주도권을 놓고 감정싸움을 벌이고 있다. 게다가 야권 리더들이 스스로 주자로 나서고 선거연대를 했는데도 진다면 책임 문제가 따른다. 어쩌면 설 땅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어차피 지방선거 후 벌어질 이합집산을 생각하면 당장은 문 정부에 맞설 대안 세력으로서의 존재감을 키우는 게 우선이란 주장이 양당 내부엔 모두 강하다.

한국당은 일단 바른미래당 견제에 나섰다. 안보 문제로 보수층을 파고들기 시작한 바른미래당의 초반 기세를 꺾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한국당 내에서도 연대를 고민하자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만약 수도권서 참패하고 부산·경남(PK) 중 한 곳에서라도 한국당의 독점 구조가 무너지면 야권발 정계 개편엔 힘이 실릴 게 틀림없다.

역대 지방선거 사실상 정권 심판 중간평가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전략적 제휴에 나선다면 ‘문재인 정부 심판론’이 매개가 될 수밖에 없다. 사실상 그동안의 지방선거는 모두 정권을 심판하는 중간평가 성격의 선거였다. 결과적으론 여당의 무덤이었고 대체로 선거 연대가 승인으로 작용했다.

단 한 번의 예외가 1998년 치러진 2회 지방선거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 100일 만에 치러진 탓에 ‘안정적 국정운영’을 명분으로 새정치국민회의와 자유민주연합의 공동 여당이 승리했다.

이번 지방선거가 문재인 정권에 대한 심판이 될지, 여권이 정국 주도권을 확실하게 쥐는 기회가 될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야권의 수도권 싸움이 지지부진할 경우 보수 유권자들은 선거 연대에 대한 요구와 압력을 높여갈 게 틀림없다. 당 차원의 적극적 연대가 아니라도 후보 간 암묵적 연대가 될 수도 있다. 4년 전 지방선거 때 분열된 야권이 시도한 방식이다.

최상연 논설위원